박사과정 졸업과 긴 당직이 끝났다. 서머타임이 끝난 이곳은 오후 3시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습도가 낮고 영상 25도의 쾌적한 카나리아 고향으로 긴 주말을 즐기러 놀러와 스페인 음식과 레드와인을 마시면서 컬럼을 쓰려고 하니, writer's block 때문인지 아무 주제가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에 있는 의사친구들에게 대서양과 파란 하늘 그리고 상그리아 사진과 셀카를 보내면서 도움을 청했다. 다행히도 나는 지구 반대편에 있어서 물건이 날아오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바로 내가 즐기고 있는 휴가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이 칼럼을 쓰기 위해 공부하면서 유럽인들의 유급휴가 제도가 아시아나 아메리카와 얼마나 다른지 알게 됐다.

대한민국은 해마다 16일의 공휴일이 있다. 한국은 인도와 콜롬비아 다음으로 많은 공휴일을 가진 국가 중 하나다. 영국은 8일밖에 안된다. 크리스마스(12월 25일), Boxing day(12월26일)와 새해(1월 1일) 빼고는 나머지 5일은 날짜보다 요일로 정해져 있다. 부활절 주말 금요일과 그 다음 월요일, 5월 첫번째와 마지막 월요일, 그리고 8월 마지막 월요일이다. 유럽에서 공휴일이 가장 적은 나라다.

스페인은 공휴일이 14일이다. 10일은 나라 전체가 쉬고, 4일은 지역마다 날이 다르다(예를 들면 전라남도의 날). 내가 자란 곳에서는 5월 30일이 카나리아 제도의 날이라 공휴일이었다.

어렸을 때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에서는 8월 15일이 성모마리아가 승천한 날이라 공휴일이었지만, 나는 애국자이신 한국 부모님을 둔 덕에 그 날은 스페인 대서양 한 복판 섬에 있는 한인학교에서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다.

영국 공휴일은 대부분 주말이 포함되기 때문에 병원에서 공휴일이 낀 하루 긴 주말에는 의사들도 당직팀만 남게 된다. 병동 간호사들은 공휴일과 상관 없이 하루 3교대로 365일 동일하다. 일반 병실(level 1)은 환자 4명에 간호사 한 명, High Dependency Unit(HDU·level 2)에는 환자 2명에 간호사 한 명, 그리고 Intensive Care Unit(ICU·level 3)에는 환자 한 명에 간호사 한 명이다.

그 외에 병동 마다 charge nurse가 따로 있고, health care assistant도 있다. 영국 National Health Service 의사들은 주48시간을 일하지만 간호사들은 주 37.5시간을 일한다. 영국 대부분의 근로자의 주 40시간과 비슷하다. 하루 13시간, 8시간, 6시간으로 근무형태가 다양하게 있다.

가족 사정에 따라 밤 당직만 선호 하는 간호사나 13시간씩 일주일에 3일만 일하고도 풀 타임을 채우는 간호사와는 달리, 수련 의사들은 당직근무 시간은 13시간, 정상 근무는 대부분 9시간이다. 병원에서 꼭 있어야 하지 않은 과(비뇨기과·피부과) 교수들은 당직을 13시간 이상을 설 수 있다(e.g. 72hrs weekend on call).

내가 일 했던 17 ICU침대와 15 Surgical HDU를 운영해야 하는 한 영국 병원은 Critical Care team 정규직 간호사가 300명이 넘었다. 주 37.5시간, 하루에 3팀 교대, 유급휴가, 교육을 계속 받기 위해 주어지는 study leave까지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Critical care 간호사들이 사정상 당일 부족하게 되면(아파서 못 나오고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을 구할 수 없다면) ICU나 HDU 자리 하나를 아예 없앤다. Level of care는 의사 수로 정해지지 않고 전문 간호사 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내과 환자들이 호흡기 질환때문에 critical care bed를 더 많이 차지한다. 그러기에 수용 가능한 인원수가 줄어들고 외과의 정규 수술 환자들의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밤에 들어온 인공호흡기가 필요한 환자나 외상 환자가 우선으로 critical care bed를 차지하기 때문에 그 다음날 아침 정규 수술 환자의 critical care bed가 없다는 이유로 취소될 때도 간혹 있다.

ICU 입원 필요한 응급환자들이 자리보다 더 많아지면, 다른 병원 ICU로 보내진다. 수술 전 평가에서 수술 환자가 동반질환 때문에 수술 후 critical care bed가 필요하다고 마취과에서 결정하면, critical care bed 확신 없이는 마취는 시작도 안 한다.

내가 하는 colorectal surgery에서 anterior resection이 필요한 환자는 그 전날 bowel prep까지 복용하고, 화장실을 왔다 갔다 밤새도록 하고 아침에 수술을 받으러 가족들과 병원에 도착하고도 critical bed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상황도 간혹 발생한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와 가족은 실망한 얼굴로 다음 주에 새로운 날짜를 받고, 새로운 bowel prep bottle을 들고 집에 간다. 그래도 환자나 환자 가족들이 목소리 한 번 커지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환자는 '매우 유감입니다'란 말만 하고, 의사들은 '우리는 매우 죄송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수술 후 안전이 더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응급이 아닌 정규 수술은 암이라고 해도 일주일 더 기다린다 해서 큰 변화는 없다고 환자한테 설명하고 보낸다. 될 수 있는 한 비암 수술(non cancer surgery)을 먼저 취소하고, 암 수술을 마지막으로 취소한다.

내가 응급환자를 진료할 때 오늘 수술할 수 있으면 하겠지만 만일 대형 외상 사고가 일어나면 당신의 맹장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면, 환자들은 당연하다고 대답한다.

정규 수술 취소 건수와 수술 후 합병증 발생 및 사망 건을 포함한 모든 통계는 영국 내 모든 병원들이 감사를 받는다. 그 데이터는 국민에게 미디어를 통해 알린다. 대부분의 경우 의사들보다는 정부에게 화살이 날아간다. 이런 상황은 환자뿐만 아니라 병원이나 의사들도 원치 않는다.

하지만, 이런 정규 수술이 취소된다고 해도 유급휴가로 병원에 없는 critical care 간호사를 불러들이는 일은 없다.

영국은 법으로 모든 근로자들에게는 일년에 28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그리고 회사마다 그 수에 더 많은 날들을 줄 수 있다(National Health Service처럼). 8일의 공휴일이 28일에 포함이 안 돼도 된다. 그러기에 최소 20+8일이다. 스페인은 일년에 한달(주말 포함한 한달이기에 22일이다), 그리고 공휴일이 추가로 주어진다.

한국은 유급휴가가 15일이고, 미국은 유급휴가를 법적으로 받을 권리가 없다. 미국 근로자의 25%는 유급휴가를 하루도 못 받는다고 하니, 나의 턱은 놀라서 땅에 닿을 뻔 했다.

영국 NHS에서 유급휴가는 첫 5년동안 일년에 27일+공휴일 8일이고, 5년에서 10년 사이는 29일+8일, 그리고 나같이 10년 이상 근무한 근로자들은 일년에 주말을 제외한 33일+공휴일 8일이다. 공휴일에 당직을 서면, 내가 필요한 다른 날에 대체휴가를 받는다.

이런 유급휴가는 영국 NHS에서 근무하는 170만명에게 모두 적용한다. 파트타임으로 50%를 근무하게 되면, 유급휴가도 50% 받는다.

수련의사들은 유급휴가 외 외부연구휴가 14일을 따로 받는다. 우리의 계속적인 교육을 위해 주말을 포함해 거의 3주를 더 받는다. 이래서 병원의사들은 일년에 유급휴가 6주, 공휴일 1주 반, 외부연구휴가 3주를 보태면 52주 중 근무 기간은 42주도 안 된다.

이에 맞춰 수술과 외래 스케줄이 결정 된다. 환자들과 남아있는 팀이 균형을 맞추기를 위해 어느 휴가이든 적어도 6주 전부터 요청해야 한다. 의사 수가 바뀌면 안 되는 응급의학과나 4개월마다 과를 교대 하는 전공의 경우 4개월안에 10일씩 유급휴가를 써야 하기에 교대를 위해 정해진 날짜에 휴가를 써야할 경우도 있다.

나는 인턴 후 응급의학과 6개월 수련 중 유급휴가 2주가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끼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고, 작년에는 2주 연속 당직이 똑같이 크리스마스와 새해에 끼어 환자들과 함께 병원에서 당직 팀과 맛없는 칠면조와 브랜디 한잔을 먹었다.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영국은 휴가가 많지만, 유럽에서는 근무 시간이 가장 많다. 남유럽 의사들이 연수를 오면,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하는지 이해를 못 한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나의 스페인 소꿉 친구들은 영국에서 주 48시간 일을 하는 나를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한다.

법적으로 쓰여진 게 48시간이지, 대부분의 의사들은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영국 병원에서는 비교적 많은 근무 시간과 스트레스로 인한 burn out을 대비해 resilience training, burnt out prevention 그리고 휴가를 챙기는데 갈수록 더 많이 노력한다. 근로자의 정신건강 예방활동이 치료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일했던 외과팀 주말 당직에 전공의 의사가 모자라는 상황이 일어났었다. 주말 당직이 아닌 후배에게 따로 돈을 받고 일을 할 생각이 없냐고 물으니, 벌써 친구들과 파티에 가기로 약속돼 있어서 안 나오겠다고 해서, 병원 밖에서 의사를 구해야 했다. 영국은 개인적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다.

영국의 의료인들의 월급은 한국의 의사나 간호사 평균 월급보다 낮고, 미국보다는 훨씬 낮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따라갈 나라가 없고, 스페인에서 자란 나의 성향 때문인지, 나에게는 휴가 날짜 수가 월급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개개인의 우선순위가 다르다는 것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