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퇴근 길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에 마음까지 서늘해진다. 문득 쇼 윈도우 유리창에 비친 중년의 여인이 낯설다. 나는 그 모습에서 엄마의 얼굴을 본다. 아이 키우랴 일하랴 일인 다역으로 늘 바빴던 엄마. 엄마를 생각하면서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 지는 것을 보니 이제야 겨우 철이 드나보다.

중학교 2학년 무렵, 사춘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는지 엄마가 직장에 다니는 것이 갑자기 불만스러웠다. 내가 엄마가 되면 하교하는 아이에게 간식거리를 준비해놓고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 역시 평생을 주부로만 살고 싶지는 않았고 자아 성취를 하면서 좋은 엄마가 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됐다.

결국은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일보다는 아이를 먼저 생각하는 엄마가 되겠다는 애매한 결심으로 고민을 끝냈다. 나는 그때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어떤 엄마보다도 바쁜 엄마가 되고야 말았다.

첫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나는 계획에 없었던 개원을 갑자기 하게 됐다. 아이와 함께 긴장된 상태로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두 세계에 대해 학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침마다 출전하는 병사처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면서 출근하곤 했다. 3월말 처음 만난 아이의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가끔 준비물을 잊고 와서 엄마가 일하시는 줄 알았어요"라고 웃으면서 말씀하셨고, 나는 부끄러워서 숨고 싶었다.

얼마 전 뉴스에서 모 구청에 장애아를 둔 어머니들이 찾아가서 장애아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지어 달라고 무릎을 꿇고 사정하는 장면을 보았다. 서울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가 없어서 두 시간씩 차를 타고 통학을 한다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 일인당 국민 소득이 2만 5000달러가 넘고 OECD국가에 진입한 지 20년이 되었는데 우리의 실제 모습은 한심스럽다.

지역주민들은 집값이 떨어질까 봐 농성을 하고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하기에 급급하고 아픈 아이들의 엄마는 무릎을 꿇고 울 수밖에 없는 이런 정황은 겉포장이 잘된 나라의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 기형적이고 아픈 현실이다.

문득 첫 아이를 낳았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제왕 절개로 태어난 아이는 호흡 곤란과 복부 팽만으로 태어나자마자 중환자실에 입원하게 됐다. 면허를 딴 지 3년도 안 된 초보 의사였던 나는 온갖 병명을 떠올리며 마취가 덜 깬 무거운 몸을 이끌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아기를 보러 갔다.

수많은 줄을 달고 인큐베이터에 누워 있었던 아가. 나는 의사이기 전 엄마였지만 너무나 어리고 경험도 없었다. 모든 가능성을 떠올리면서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기에게 영구적인 장애가 생기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었다.

아가는 여러 고비를 거쳐서 의학적으로 기대하지 못했던 극적인 회복의 경과를 보였다. 그리고 한 달 만에 내 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낙엽처럼 가볍고 앙상해진 아가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기고 나는 눈물을 삼키며 수련의를 마치기 위해 바로 출근해야만 했다. 어쩌면 잃을지도 몰랐던 소중한 나의 생명을 직접 돌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간혹 나를 힘들게 한다.

많은 이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아기는 정상적으로 자랐지만 나는 가끔 아기가 잘못되는 악몽에 시달리곤 했다. 아이가 건강을 회복한 것은 분명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기적이었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였으며, 나의 사람됨이나 선행과는 관계없는 결과였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빚을 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큰 복을 받을 만큼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건만 나는 그런 복을 받았고, 또 다른 어떤 엄마는 왜 별 잘못도 없이 장애인 아이를 키우게 되는 것인가? 그 질문은 지금까지 내 마음 속에 숙제처럼 남아 있는 질문이며 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가 초등학교 시절 자원해서 자폐아와 짝이 됐다고 했을 때 한편으로는 기특한 마음이 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이 됐다. 말로는 쉽게 나눔의 삶이 필요하다고 하면서도 정작 좋은 기회가 오면 절대로 남에게 빼앗기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남을 배려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성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내 이중성을 무엇이라고 설명할 것인가.

아마도 우리 마음속의 이러한 이중성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는 이 사회가 점점 더 조급해지고 여유가 없는 경쟁의 사회,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분노를 폭발하는 사회, 모순으로 뒤얽힌 불안한 사회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해야 하고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을 속으로는 잘 알면서도 실천하는 데에 인색하다. 내가 먼저 바뀌어야 아이들이 바뀔 것인데 나는 바뀌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교육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부모이자 인생의 선배인 우리들이 먼저 상처받은 이 세상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내민 우리들의 손에 진심이 담겨 있다면 처음은 더딜지라도 차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은 저 엄마들, 이제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