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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7 06:00 (토)
김원희 세계성악회 참관기

김원희 세계성악회 참관기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3.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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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한 크기의 국토에 인구 1,200만이 채 되지 않는 그리고 미국의 마이애미와 불과 서울-대구간의 거리 정도 떨어져 있는 쿠바의 3월 중순 날씨는 너무나 좋았다.
이제 정말 몇 남지 않은 공산국가 중의 하나인 이 나라는 그러나 1959년 혁명 이전에는 우리와 외교적으로 가까운 나라였다. 6,25 전쟁 때는 우리에게 280만 달러의 원조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와의 교역이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도 아바나의 거리를 한국의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모습을 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굴러다니는 차들의 70퍼센트가 20년도 넘은 골동품 같은 것들이어서 그런지 우리 현대, 대우 등은 모두 신차 같았다.

물자부족에 허덕이는 쿠바에서는 40~50년대에 생산된 차가 흔한 실정이다.
이번 여행 길은 제 16차 세계성학회 참석이 그 목적이었다.

지난 3월 10일 LA의 큰 딸 집에 잠깐 들렸던 나는 브래들리 터미널에서 서울 CareKorea 클리닉의 이이경 선생과 관동대학교 간호학과의 김혜원 교수를 각각 만나 이들과 멕시카나 항공편으로 멕시코시티를 경유해서 같은 날 오후 2시경에 아바나 '호세 마르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체 게바라의 얼굴 포스터가 붙은 대형 입간판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헌데 공항에서 이 선생의 짐이 도착되지 않아서 이를 신고하는데 이곳 저곳을 헤매야 했고, 이어서 예약한 호텔이 취소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계속 기다리라는 공항 안내원 때문에 한 시간 여를 다시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결국 그들을 뿌리치고 짐을 모두 택시에 싣고 학회장인 컨벤션센터까지 가서 따졌지만 호텔은 다시 배정 받아야 했고, 그럭저럭 2시간 여를 더 기다려야 하는 짜증나는 시간이 흘렀다. 정말 시간을 물 쓰듯 하는 이들을 보면서 공산국가에 온 것을 몇 번이고 실감했다. 역시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기부여(motivation)가 없으면 일을 하지 않는 것을 여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긴 얘기를 줄여 이렇게 우리 세 사람이 여행 짐을 든 채 개회식이 거행되고 있는 홀에 들어섰을 때는 식은 거의 반 이상 진행되고 있었고, 마침 학회 회장이면서 피델 카스트로의 조카인 마리엘라 카스트로의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을 비난하는 정치적 발언이 한참 계속되고 있었다.

세계성학회 회장인 마리엘라 카스트로는 쿠바의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의 조카다.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쳤고, 나를 포함한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앉아 있어 참석자들이 완전히 두 편으로 갈라진 형편이 되었다. 왜 학술대회에까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짜증이 났다.

마리엘라는 현재 피델 카스트로의 후계자로 지목되고 있는 그의 동생의 딸이라고도 했다. 개회식이 끝나고 이어 칵테일 파티에 가도록 버스를 타라고 했지만 우리는 짐 때문에 포기하고 택시로 그들이 정해준 리비에라(Riviera) 호텔로 가서 여장을 풀었다. 호텔은 100년 가까이 된 비교적 시설이 좋은 곳이었다.

이번 학회에는 수십 개국에서 1,300명 이상이 등록을 했다고 들었지만 약 반 정도는 쿠바 현지인들이었다. 그밖에 중남미에서 온 참가자들이 많았고 동양에서는 일본인 10명, 한국인 4명 그리고 인도인 몇 명 정도였다. 매일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16개 방에서 많은 연제발표가 계속 이어졌고 물론 몇 몇 연자들의 결석도 있었지만 접수된 논문 수가 1,300개가 넘는 꽤 큰 학회였다.

3월 11일 아침 준비된 셔틀버스로 잔잔하고 푸른 카리브해를 내다보며 약 12킬로미터의 거리를 지나 학회장인 Palacio de les Convenciones de la Habana에 도착했다. 정말 듣고 싶은 내용들이 많았지만 나는 이날 세계정신과협회(WPA) 심포지엄인 '성 건강의 진단과 치료', '성과 인간관계의 의학적 진전', '여성의 성 치료', '시공과 문화에 따른 인간의 성', '종교와 성', '성과 노화' 등의 제목하의 plenary session 또는 심포지엄을 들었다.

참석자들은 의사들이 약 반정도 되는 것 같았고 그 외 간호사, 심리학자, 성 치료사, 인류학자, 교사, 예술가, 체육인 등 다양했는데 동시 통역 시설이 잘되어 있기는 했지만 영어와 스페인어로 갈라진 강연 내용 때문에 이 방 저 방으로 방황하는 참가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 좀은 특이했다. 학회장에서 호주에서 온 홍성묵 교수를 만났다.

웨스턴 시드니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그는 어느 쿠바인 집에 민박을 한다고 했다.
저녁 때 김 교수, 이 선생과 함께 이곳 특유의 꼬마 삼륜차인 코코(Co Co) 택시를 타고 번화가라고 할 수 있는 구 시가지 쪽으로 갔다.

말이 중심가지 7시가 지나 어둑어둑해진 아바나의 거리는 삭막하기만 했다. 그런데 마침 그 곳 Menor 대성당에서 바하의 '두개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연주되고 있었는데 그 곳 관리인이 그냥 들어가도 괜찮다고 해서 뒷부분이지만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1575년에 지어진 아름다운 성당이지만 지금은 박물관과 실내악연주장으로 쓰이고 있었다. Cafe Tebeana라는 이곳 최고의 식당을 찾았으나 예약을 안 했다고 못 들어가고 그 맞은 편에 있는 그만 좀 못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꿩 대신 닭'이었지만 그 곳에서 말만 듣던 칵테일 Cuba Libra를 처음으로 맛보았다. 럼과, 콜라 그리고 쿠바의 유명한 술인 모히야를 섞은 이 칵테일은 카스트로가 즐겨 마셨다해서 '자유 쿠바'라는 이름이 붙은 것인데 비교적 괜찮았다.

국제성학회에 다니기 시작한지 20년이 넘었어 아직 배우는 것이 많았다. 어떤 필리핀 의사 한 사람이 성교육에 관한 한 심포지엄에서, "그렇게 성교육을 시행하면 과연 미혼 여성의 임신율이나 성병, 성 범죄율이 얼마나 감소하는지?"'를 묻다가 무안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탈리아인 여자 연사가 말했다. "청소년 성교육을 무슨 예방 주사쯤으로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남녀 평등, 성 건강, 성 권리, 성 자유, 성 정의를 배우고 인간관계의 올바른 방식을 배우며, 좀더 즐거운 성생활, 가치 있는 성생활을 영위하여 행복한 부부,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도록 하는 교육이지 여기에 유산율 같은 것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무 교육을 안 받은 사람도 안전한 섹스를 위하여 콘돔은 다 쓰는 세상이 아닙니까?"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이런 얘기도 있었다. 오르가즘 때 잠시 경험하는 '의식의 변질'이야말로 참 의미의 엑스타시이다. 즉 정상적인 의식 수준을 벗어나는 순간으로 오로지 오르가즘 때만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Tantra sex에서 얘기하는 '우리가 신이 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떠면 육감일 수도 있고 일본인들이 얘기하는 공(空)과도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나는 몇 안 되는 동양 사람 중의 하나였지만 아무 추가 설명도 못하고 듣고만 있었고 이를 좀 수치스럽게 느끼기도 했다.

둘째 날은 '성 치료 기법', '성 교육 방식', '성 교육과 정부 정책', '조루' 등 오전 것만 듣고 오후에는 아바나 시내 구경을 나섰다. 헤밍웨이가 자주 다녔다는 식당, 찻집 등을 거쳐 16세기에 지어진 그대로 방치된 듯한 구 시가지엘 갔었다. 이 곳은 공산국가라 모든 건물이 국가 소유인데다가 나라가 어렵다보니 전혀 수리나 재건축 같은 것을 못해서 도시의 많은 부분들이 흉물스럽게 낡아빠져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구 대통령 궁을 지나 지금의 정부청사가 있는 곳에서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자유의 광장이라는 곳으로 갔다. 체 게바라의 동상, 사진, 그림 등은 아무데서나 볼 수 있었지만 카스트로의 것은 별로 없어 대조가 되었다. 이 자유의 광장은 베를린 광장에서 히틀러가 했던 것처럼 50년 전 카스트로가 그의 특유의 긴 연설로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라고 한다.

다시 벼룩 시장 같은 곳으로 갔다.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고 나는 그림 두 점과 목각 두 개를 샀다.

오늘(3월 12일)은 내 65번째 생일날이다. 이제 드디어 노년기에 들어서는 의미 있는 날인데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는 객지에서 무얼 할까 생각했다. 마침 유명한 쇼가 있다고 해서 보기로 했다. 호텔 로비에서 리도, 라스베가스와 함께 세계 3대 쇼 중의 하나라고 한다는 Tropicana show 표를 세 장 샀다.

두 여 선생들과 함께 갔다. 식사 포함해서 미화로 1인당 85달러씩이었다. 쇼는 밤 10시에 시작해서 12시까지 계속되었다. 화려함이 리도 쇼에 뒤지지 않았다. 다만 야외에서 하는 것이 다른 데와 달랐다. 비가 오는 날은 쉬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여하튼 무대, 의상, 조명 등이 참으로 화려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어떻게 이런 화려한 쇼를 하는가 의심스러울 정도였지만 종업원들 이외에 이 나라 국민은 한 사람도 없어 보였다. 여기 뿐 아니라 보통 외국인이 묵는 호텔에 이 나라 내국인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것 같았다.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밤의 Malecon 거리는 어둡고 쓸쓸하기만 했다. 쿠바 북쪽 카리브 해변가의 유명한 이 거리에 있는 건물들 중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버려진 듯 유령의 집 같아 보이는 것들도 많았다. 볼수록 아까운 일이었다.

우리 나라의 복부인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 한 구석을 스쳤다. 들은 얘기로 이 거리는 창녀들 때문에 저녁나절에는 혼자 걷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했는데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홍 교수 말로는 국제학회가 있기 때문에 모두 쫓아 버린 것 같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셋째 날은 '여성 성기 수술', 'AIDS', '발기장애', '세계성학회의 25년 역사', '폐경과 성'에 관한 내용들을 들었다. 나는 국제성학회에 올 때마다 될 수 있는 대로 non-MD들의 발표를 많이 듣는다. 왜냐하면 이 분야들이야말로 우리가 의학을 공부하면서 한 번도 접할 기회가 없었던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의사와 성 치료사들이 따로 분리되어 있는 많은 나라에서 한 환자가 치료사에게 6개월 정도 치료를 받다가 효과가 없어서 의사를 찾아가서 불과 며칠만에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허다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게다가 최근 비아그라 등의 덕으로 대부분의 남성발기부전의 문제가 해결됨에 따라 이제 여성의 욕구장애 등이 크게 부각되고 있는데 여자는 남자와 달리 과거의 정신 심리적 문제들이 깊이 자리잡고 있어 성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부분이 많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날은 낮에 이이경 선생과 내가 만든 포스터를 전시하는 날이었는데 moderated poster session이라며 다른 방으로 가서 설명을 하도록 되어 있어 좀은 특이했다. '동아시아의 18~19세기 춘화의 비교'라는 제목의 포스터였는데 전시된 것들 중 가장 인기가 있어 그 앞은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포스터는 그 날 저녁 쿠바 TV에도 소개되었고 일간신문에도 기사가 나왔다고 했다. 다음날 만난 쿠바 여의사 한사람이 "당신들 어제 오후에 왜 여기에 안 왔었어요? 신문 기자들이 인터뷰하겠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했다.

이 날 오후 대의원총회가 있었는데 우리 나라는 성 학회가 결성되어 있지 않아 의결권도 없고 그냥 옵서버로 앉아 있을 수는 있었지만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참석하지 않았는데, 2007년 학회를 시드니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체코와 스웨덴 그리고 호주가 심한 경합을 했었는데 호주가 이긴 것이다. 이 학회는 매 2년마다 열리고 있는데 2005년에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열린다.

우리 대한민국은 현재 전 세계에서 성학회가 없는 유일한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이 때문에 세계 학회에서의 활동과 참여 기회의 제약이 큰 것은 물론 국내의 산적한 성 문제들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성범죄 및 임신중절률이 인구비례로 보아 각각 세계 1위이며, 인터넷을 통한 음란물의 범람이나 청소년 성 매매 등도 실로 심각한 경지에 이르고 있다. 성인 남녀의 성 기능 장애와 이에 따른 이혼율의 급증 또한 큰 사회적 문제인데도 어찌된 셈인지 성 문제를 총괄적으로 연구하고 학문적으로 자문할 수 있는 학술단체가 없다.

이번 쿠바 학회에서 성학 교육의 목적이 이런 성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다는 20세기 초보적이 사고가 아니라 이제는 진보된 사고 즉 성 건강, 성 권리, 성 만족, 이성에 대한 존중, 인간평등, 최상의 인간관계, 행복한 삶에 있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 나라의 성 전문가들이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음은 물론 이들의 침묵이 결국 사회에 대한 무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도 하루 빨리 성 학회를 결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최측은 그 날 저녁 참가자들 전원을 그 곳 국립극장으로 데리고 가서 우리로 치면 일종의 행위예술 같은 나체 쇼를 보여주었다. 완전 나체의 임산부까지 등장했는데 몸에 보디페인팅을 하고 율동적인 춤을 추니 참으로 장관이었고 일찍이 본 일이 없는 새로운 감각의 장르라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큰 유방을 중간에 하나 더 그려 넣어 세 개를 만들고 있었는데 어쩌면 모계사회 시대의 '생식, 풍요의 여신'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 예술적인 의미를 알기는 어려웠고 다만 유럽과 아프리카의 예술이 섞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우리 나라에서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공연을 어떻게 아이러니컬하게도 공산국가에 와서 보게 되다니.

주최측이 마련한 누스 공연의 한 장면. 우리 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누드 공연이 그것도 쿠바 국립극장에서 펼쳐졌다.

3월 14일. 학회 마지막 날이다. '성 건강에 대한 각국 정부의 정책', '성 교육의 장애요소', '발기장애의 약물치료', '성 기능 장애' 등을 들었다.

한국에서 온 두 여 선생들은 일찍 발표를 마치고 이날 오후 멕시코시티, LA를 거쳐 귀국했다. 오후에 거행된 폐회식에도 많은 참가자들이 자리를 메웠다. 아직 대부분 돌아가지 않은 모양이다. 마리엘라와 그의 어머니, 보건장관, 학회 간부들 등 개회식 때 본 얼굴들이 거의 다 나왔고, Silvio Rodriguez라는 중년의 가수가 기타를 들고 나와 노래를 부르는데 모두 이만저만 열광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누군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쿠바 인들은 물론 유럽에서 온 참가자들도 모두 일어나서 열광을 하는 것을 보면 유명한 '오빠'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폐회식이 끝나고 칵테일 파티가 있었지만 나는 두어 잔만 마시고 택시로 호텔로 왔다. 오후에 회의장에서 겨우 인터넷을 열어볼 수 있었지만 내 e-mail은 연결이 되지 않는지 아무 것도 없는 것으로 떴다.

저녁에는 홍 교수가 묵고 있는 쿠바인 민박집엘 갔다. 홍 교수는 워낙 여행에 달인이어서 나는 이번에 다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는 떠나오기 전 인터넷에서 소위 bed and breakfast list를 프린트해 와서 그 중의 한 곳에 묵고 있었다.

하루 밤 자고 아침 밥 먹는데 미화 20달러만 주면 된다고 했다. 그 집주인은 전직 교수라고 하는데 나이 70정도로 비교적 큰 아파트에 살고 있었고 딸은 고고학 전공의 대학원생이라는데 꽤 똑똑하고 미인이었다. 헌데 그 집안의 가구들이 모두 1950년대 쿠바혁명 이전 때 것들이어서 정말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찌들었지만 이들은 모두 이렇게 산다고 했다.

카스트로가 들어올 때 돈 많은 사람들은 다 도망을 갔기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었던 사람들에게는 그런대로 자기 집에 계속 살수 있도록 해 주었고 그래서 이런 민박이나마 가능하다고 했다. 말이 20달러이지 이것은 쿠바 의사들의 1개월 봉급 수준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정말 큰 돈일 것이다.

공항에서조차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쿠바 화폐를 환전해 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곤 미국이나 유로 달러 그것도 현금만 쓰게 했다. 쿠바를 여행할 때 여행자 수표나 카드만 믿고 현금을 안 가져갔다가는 낭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본 돈도 받지 않았다. 이곳 현지 인들은 미화로 쳐서 20센트면 시내 아무 곳이나 택시를 탈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약 10킬로 정도 가면 20달러 정도를 줘야 했으니 관광객들에게 쿠바 돈 안 바꿔 주려는 것도 이해가 되었다. 일반 국민들이 정말 어려운 살림을 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눈에 보였다. 민박집은 Casa 000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홍 교수가 묵고 있는 집에는 또 다른 젊은 남녀가 묵고 있었다.

이 곳에 와 있던 어느 프랑스 남자가 쿠바 여인과 연애를 해서 결혼을 했는데 쿠바 정부에서 그녀를 출국시키지 않아 할 수 없이 이 남자는 가끔 이 나라로 들어 와서 같이 지내다가 가는데 같이 잘 방이 없어서 이 집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 작은 아파트에 부모 자식 내외가 같이 또는 한 방에 같이 살기 때문에 부부가 성 관계를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아바나의 인구는 두 배로 늘었는데도 새로 지은 집이라곤 약 5천 채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정부에선 젊은 부부를 위해서 러브호텔 같은 것을 여러 개 지었다고 한다. 이곳을 3시간 사용하는데 5페소(1달러가 25페소임)인데 젊은 부부들이 그 앞에 몇 시간씩이고 줄을 서서 기다린다고 한다.

홍 교수는 또 민박집 주인의 안내로 그 곳 결혼식을 두 군데나 가 보았다고 한다. 식은 그저 시청에 가서 서류 상으로 하는 것이고 피로연을 가 본 것인데 나오는 음식이라곤 독한 술 밖에 없더라고 했다.

또 아바나에는 Paledora라는 일반인이 관광객을 위하여 식사를 제공하는 비교적 싼 식당 같은 곳이 있다고 해서 뒷골목 길을 둘이서 한동안 헤맸지만 저녁 5시가 넘으면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할 수 없이 호텔로 와서 식사를 했다.

다음 날은 마음놓고 관광을 할 수 있는 날이어서 Vinale라는 곳으로 투어관광을 떠나기로 했다. 아바나에서 약 200킬로미터쯤 되는 곳인데 아침 8시쯤 떠나서 저녁 6시쯤 돌아왔다. 그들이 얘기하는 하이웨이 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차를 잡겠다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여기는 정기 시외버스가 별로 없는 듯 지나가는 차 중에서 번호판이 흰색인 것과 푸른색의 것은 이렇게 손을 들면 무료로 태워주게 되어 있단다. 관용 차나 정보기관의 차들이다. 그리고 이들을 Jello people이라고 부르는데 오렌지족이라는 뜻이란다. 우리 나라의 오렌지족과 관계가 없겠으나 하여튼 재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늘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인지 가끔 길 위에 다리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Vinale는 이 나라 말로 소나무란 뜻이라고 했는데 사실 가는 길에 소나무가 많이 눈에 띄었다. 아열대 지방으로서는 좀 특이한 일일 것이다. 경치는 주로 돌산을 보는 것이었고 중국의 계림과 비슷한 경관이었지만 그만 훨씬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 산 밑으로는 큰 동굴과 호수, 폭포 같은 것들이 있어 배를 타고 이를 즐기기도 했다

필자의 뒤에 보이는 것이 돌 산을 깍아 그림을 그려 놓은 Vinale의 벽화다.
가는 도중에 담배 농장과 시가공장에도 들렸다. 이 곳 쿠바는 원래 시가로 유명한 곳이다. 어느 독일 친구가 Cohiba라는 시가를 사다 달래서 호텔에서 비교적 비싼 값을 주고 샀었는데 농장에 와보니 아주 싸게 살 수 있었다.

여기 시가는 Cohiba 외에 Monte-Cristo와 Romeo & Juliet이 있는데 어느 것이 더 좋다기 보다는 이들을 각각 카스트로, 체 게바라 그리고 처칠이 즐겨 피웠다 해서 맛보다는 누구를 더 좋아하느냐에 따라 종류를 결정하기도 한다고 하니 좀 이상했다. 하긴 여기서도 정식 가격이 시가 한 개에 10달러가 넘는 정도이니 서민들이 늘 피우기는 어려운 노릇이고 보면 멋으로라도 그렇게 기호를 결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쿠바산 시가를 재배하고 있는 담배밭. 인기가 높은 Cohiba는 카스트로가 즐겨 피웠다고 해서 가격이 비싸다.

쿠바는 정말 아름다운 천연의 섬나라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어렵게 그것도 가난 때문에 어렵게 살고 있어 보기에 언짢았다. 빈민촌이라는 곳도 지나가 보았는데 공산국가에서 의아한 일이었지만 이들이 거주지 이전의 자유가 없어 몰래 대도시로 들어와 살다보면 이렇게 정말 어렵게 살게된다고 했다.

순수 백인과 흑인은 각각 1퍼센트 정도고 흑인과 백인의 혼혈들 즉 mulatto가 거의 다였는데 대부분 다양한 색깔의 인종들이었고 사람들은 대부분 멋있게 생겼고 친절했었기에 더욱 잊혀지지 않을 나라 같았다. 인종차별은 전혀 없지만 결혼할 때는 그래도 자기보다 덜 검은 배우자를 얻으려고 한단다. Mulatto도 약 16종류로 다시 구분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가서 멕시카나 320 항공기를 타는 것으로 나의 처음 쿠바 여행을 마쳤다. 언제고 꼭 다시 올 것만 같은 예감을 안고 멕시코시티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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