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린 원장(서울 서초·아름다운피부과의원)

촉촉한 봄비에 일제히 피어난 꽃들이 마치 "야, 드디어 봄이다! 봄!"이라고 합창을 하는 것 같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떠나고 싶은 이 설렘은 먼 길에서 돌아오는 이를 기다리는 마음과도 맞닿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떠나고 싶거나 떠난 사람을 기다리거나 혹은 떠날 준비를 하는, 그 사이의 어느 지점에서 인생을 지내게 된다.

특히 터미널이나 공항에 가면 그런 생각이 든다. 공항은 떠날 사람을 배웅하거나 돌아올 사람을 기다리는 곳, 모습과 언어가 다른 낯선 이방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나는 공항에서 느낄 수 있는 쓸쓸함과 홀가분한 정서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곳이 내게 안겨주는 가벼운 흥분이 싫지 않다.

때로는 습관과 관성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설렘으로,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행복감으로, 어쩌면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리운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소설 같은 기대감으로 나는 무거운 짐을 끌고 넓은 공간에서도 피로감을 잊어버린다.

설령 배웅하는 이가 없이 홀연히 떠나는 여행일지라도 날개를 단 듯 자유롭고 마음 가벼울는지 모른다. 공항에 오면 나는 낯선 사람들에게서도 동병상련의 친밀감을 느낀다. 그곳에서는 평소에 어색했던 포옹이나 입맞춤도 그리 어색해 보이지 않고, 소리를 내며 펑펑 우는 이를 보아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서 문이 열릴 때마다 자동적으로 입구 쪽을 바라보거나 일분이 멀다하고 시계를 들여다 본 적이 있는가?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기다리는 순간들이 더 길고 초조할 것이다.

때로는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이 있고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그가 나타나지 않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동안의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혼자 이별 의식을 치르듯 몇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생각보다는 그리 슬프지는 않았지만 귀에 물이 들어간 듯, 세상에서 멀리 동떨어진 것처럼 먹먹한 느낌이었다. 예고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버리듯이 언젠가 나의 추억에서 떠나갈 그를 위해 나름의 예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서로의 추억에 대한 정중한 예의이기도 하고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마지막 노력이기도 했으니까.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기다린다. 아침에는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전철을 기다리고 점심시간에는 주문한 음식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린다. 예약한 환자를 기다리고, 그의 경과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좋아지기를 기다린다.

적금의 만기가 어서 돌아오기를, 어렵게 계획한 기념일의 이벤트가 성공하기를 기다린다. 어느 멋진 사람이 나에게 사랑을 고백해 주기를 기다리고,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또 태어난 아기가 훌륭하게 잘 자라서 내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린다.

저녁이면 가족들이 아무 탈없이 귀가하기를 기다리고 주말이면 다음 주에는 보다 좋은 소식이 들리기를 기다린다.

호기심이 많았던 딸 아이를 기르면서 "혹시 사람이 많은 곳에 엄마를 잃어버리면 아무데도 가지 말고 엄마를 잃어버린 그곳에 가만히 있어야 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백화점에서도 한 번, 큰 식당에서도 한 번 딸 아이는 내 손을 놓쳤었다. 그러더니 더 큰 세상이 궁금해서 나의 손을 놓고 혼자 미국으로 가버렸다. 몇 년 전 아이를 미국에 두고 돌아오던 미네아폴리스 공항, 그 생소한 공간의 바쁘게 움직이는 인파 속에서 나는 얼마나 외롭고 막막했던가? 그 넓은 땅에 내 딸을 두고 혼자 오던 날,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던 그 곳에서 나는 두 눈이 퉁퉁 붓도록 마음 놓고 소리내어 울었다. 그리고 아이가 방학이 되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어떤 시간보다 길었다.

오늘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보고픈 친구에게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가. 벚꽃이 진 자리에 연초록 잎이 무성히 피어나기를 기다리는가. 혹시 내가 기다리고 있는 대상에만 집중하다가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생각해보지 않은 채 평생이 지나가고 있지는 않은지. 오늘은 아무런 이유없이 오래 된 친구에게 안부를 물어보자.

별일 없느냐고,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고, 나는 잘 있다고. 어쩌면 그는 나의 소식을 지금 목이 빠지게 기다릴지도 모른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소식이 있고 받고 싶지 않지만 너무 일찍 찾아와서 나를 힘들게 하는 소식도 있다. 나는 이 봄 누구에겐가 좋은 소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다렸던 봄이다. 장미가 활짝 피기를 기다리지 말고 땅에 떨어진 벚꽃 잎의 처량함에 먼저 젖어보자.

이제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다리기보다는 이미 나를 찾아온 것들과의 만남을 더 기쁘고 소중하게 꾸려가야겠다. 그리고 내 곁에서 조용히 나와 동행하고 있는 것들에게 안부를 물어야겠다.

부디 지금 이 시간이 더디더디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