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 출품되는 진귀한 전시회가 열려도 관람객들은 단 두 페이지만을 볼 뿐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훈민정음 해례본'의 앞부분인 어제서문을 크게 확대해 벽에 설치했다. 해례본의 아름다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한 시도다. 또 반대편 벽에는 한글 28자의 자모의 원리와 내용을 현대적으로 구성해서 펼쳐놓아 관람객들의 이해를 도왔다.
1446년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의 이유와 용법·해설 등을 담아 펴낸 서적, '훈민정음 해례본'이 일반인에게 선보여 화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올 10월 12일까지 열리는 전시 <훈민정음·난중일기 展 : 다시, 바라보다>가 바로 그 곳….

이번 전시는 '훈민정음 해례본'과 '난중일기' 등 우리민족의 귀중한 보물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전시로 크게 화제를 모았고 여기에 현대 미술 작가들의 협업을 통한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주요 전시물로는 '훈민정음 해례본'·'난중일기'·'동국정운'·'임진장초'·'사패교지'·'정경부인교지'·'충무공 장검' 등 국보급 유물과 함께 현대미술가 김기라·한글 디자이너 정병규·김형규 감독·설치미술가 빠키·미디어 아티스트 차동훈·김세랑 작가·클래식 베이시스트 성민제·역사 강사 설민석 등이 함께 참여해 설치·영상·회화작품 등 20여점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전시 컨셉트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과거 우리의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간 역사와 처절한 어려움의 국난을 극복한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는 역사를 담고 있는 문화재들을 단순히 설명하고 관람하는 예전 시선에서 벗어나 지금 이 시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관점에서 두 인물을 다시 바라보며 생각하는 기회를 갖고자 구성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의 주제이자 하이라이트는 지혜를 상징하는 성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과 용기를 상징하는 장군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다.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는 국보 70호 '훈민정음 해례본'과 국보 76호 '난중일기'…. 조선 문명의 창조적 역량을 그대로 증명하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우리나라 문자문화의 최고봉이며,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국난을 목숨을 걸고 극복하려 했던 의인의 심중이 반영된 일곱 권의 '난중일기'는 선조들의 의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문화재다.

이번 전시는 문화재를 감상하는 일반적인 학술 전시회를 넘어서 대중과의 직접적인 대화와 호흡을 시도한 것이 특징이다. 설치미술의 요소가 가미돼 대규모로 확대된 훈민정음의 지면이 관객을 인도하고, 클래식 음악이 '휴식의 방'에서 과거 사람들과 우리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또 전시장의 각 공간은 기록의 아카이브와 설치미술의 조화를 시도한다.

 

▲ 값을 매길 수 없어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 불리는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이다.
현대미술 작가들의 협업으로 이뤄진 전시장

먼저 30년간 한글 타이포그래피을 연구해왔던 정병규 작가는 한글예찬에 관한 그간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발현, '정병규의 한글 꼴짓기'를 보여준다. 소장 설치미술가 김기라 작가는 중세 국어로 보이는 자음과 모음들을 LED 패널로 나열하는 작업을 해 한글 고유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응축시켜 보여준다.

또 김형규 감독은 랩 뮤직비디오 작업으로 힙합문화를 통한 '훈민정음'과 세종대왕이 우리에게 남긴 진정한 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혁신과 저항의 정신', 단지 어제보다 더 좋은 오늘, 오늘보다 더 좋은 내일을 꿈꾸고 실천하는 삶, 이에 대한 근본이 둘의 궤를 같이 한다는것을 작가는 말한다.

여기에 일정한 패턴·색채의 은밀한 배열로 환상적 시각효과를 연출하는 작가로 알려진 설치미술가 빠키의 '한글이 지닌 조형적 아름다움'을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로 선보인 작품도 눈길을 끈다.

한편 실제 전장 현장에서 그려진 그림으로 알려진 명나라 작품 '정왜기공도권'(작자 미상의 이 작품은 명 황실 종군 화가가 그려진것으로 전해진다)을 장재록 작가가 현대적 기법으로 차용해 '신정왜기공도권'를 재 탄생시켰다.

▲ 장재록 작가가 현대적 기법으로 차용해 새롭게 재 탄생시킨 '신정왜기공도권' 작품.

▲ 홀로그램 영상으로 새롭게 해석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모습.
피규어 아티스트 김세랑은 이순신 장군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되살려냈다. 리어스크린에 투사된 장군의 모습은 역사 기록물과 이순신 장군 후손의 초상화를 고증 및 상상력을 종합해 복원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1953년 월전 장우성 선생이 그린 영정이다. 이 영정의 근거는 "순신의 사람됨엔 대담한 기운이 있고 용모가 단아하고 정갈했으며, 일신을 잊고 나라를 위해 갔으니 본래부터 수양해 온 까닭이라 하겠다."고 서애 유성룡이 '징비록'에 묘사해 단아한 선비처럼 그려진 그 근거가 됐다.

반면 김 작가는 이순신 장군과 같은 해에 무과에 합격한 고상안이 1594년 남긴 글을 주목했다. 그는 "그 언론과 지모는 실로 난리를 평정할 만한 재주였으나, 생김이 풍만하지도 후덕하지도 않고 관상도 입술이 뒤집혀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복 있는 장수가 아닌 듯했다."고 전한다.

또 이순신 장군 사위의 동생 윤휴는 '백호전서'라는 문집에서 "공은 체구가 크고 용맹이 뛰어나며 붉은 수염에 담력 있는 사람이었다."고 묘사했다. 김세랑 작가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어떨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도 재미난 관전 포인트다.

미디어 아티스트 차동훈은 게임 그래픽을 연상시키는 화면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전투 상황을 고증했다. 특히 '난중일기'의 내용을 가독성 있게 편집 전달하고자, 이미지로 재구성해서 3D 모션 그래픽으로 재현했다.

작가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싸움의 현장이지만 디자인적인 아름다움을 부각시키고 신비로운 그루브가 느껴지도록 노력했다. 또 당시 상황을 최대한 과학적이고 실증적으로 재현시키려고 사료를 연구했다고 한다.

관객들은 이렇게 우리시대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본 두 위인의 삶과 업적을 관람한 후 끝으로 젊은 음악가 베이시스트 성민제의 작품 'Going to'를 감상한다. 이곳에서 선 굵은 선율에 따라 조용히 지금까지 본 작품들을 되새기며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두 위인의 유물들을 만나러 마지막 방으로 나아간다.
 

 

'난중일기' 영인본 전시 안타까워

'유물의 방'. 이곳에서는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과 '난중일기' 영인본을 만나 볼 수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은 문자 사용법에 관한 책이다. 한글이 왜 만들어졌으며 어떠한 원리와 근거로 만들어졌는지 예시를 들어가면서 상세하게 설명하는 국보급 보물이다.

이 책은 모두 33장 3부로 구성됐으며, 유려한 글씨로 정교하게 새긴 목판으로 인쇄됐고 사용된 종이나 먹도 우수해 세종때 출판문화의 우수함을 알 수 있다. 세종이 창제한 새 글자는 오늘날까지 자형이 조금씩 변화돼 왔으나 이 책의 자형이 가장 초기의 모습이다.

또 '난중일기'(국보 제76호)는 임진왜란 7년 동안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서 치른 전투와 진중에서 겪은 일과 사람들에 대해 적은 친필일기로 총 7책이다.

안타까운점은 전시 오픈에 앞서 밝힌 '난중일기 진품 공개'라는 간송미술관의 전시 취지와는 달리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와 '난중일기' 소유자인 충무공 15대 종부와의 갈등으로 이번 전시에 진품공개가 불발되고 말았다. 다만 전시장에는 '난중일기' 영인본(원본을 토대로 복제한 책)이 전시돼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