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7년 3월 21일. 의권옹호·의도앙양·의료문화발전·의정쇄신을 사시로, 창의발휘·책임완수·신속정확·인화단결을 사훈으로 내걸고 <의협신보>는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창간호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인술보국>, 이효상 국회의장의 <수도춘회> 등 축하휘호와 박목월 시인의 <난초를 생각한다> 축시가 게재될 정도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단체로서 대한의학협회와 <의협신보>의 대내외적인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복잡다단한 대내외적인 제반여건에 처해서 본지는 명실상부한 의협의 대변지이기에 앞서 보다 공정한 위치에서 우리의 지상목표인 의도앙양과 의권신장을 위해 대내적으로는 회원의 결속과 단결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는 의협의 지로와 정책을 뒷받침하면서 범보건의료계의 공론을 정확·신속하게 펴고 나아가서는 해외 각국과의 유대를 강화함으로써 국민보건에 기여보비하는 사회 공기의 기능을 다할 것을 창간에 즈음해 엄숙히 선언하는 바이다."

대한의사협회 기관지로서 1967년 3월 21일 창간한 <의협신보> 창간사는 이렇게 맺고 있다. 대내외에 공표한 <의협신보>의 역할과 가치는 50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어져 대한의사협회 기관지로서, 보건의료계 전문 언론으로서 위상을 면연히 지켜오고 있다.

▲ 1967년 3월 10일 옛 대한의학협회 회관(서울시 종로구 관철동 44-5)에서 열린 <의협신보사> 현판식. 당시 명주완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과 신문사 창간멤버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창간 당시로 돌아가보면 <의협신보>가 첫 발을 떼기까지는 의료계의 목소리를 대변할 언로마련에 대한 내부의 공론이 큰 힘이 됐다. 196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대한의사협회의 전신인 대한의학협회에서는 협회의 주장을 정당하게 알리고 의료계 안팎의 왜곡된 정책과 주장으로부터 의협과 회원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막 역할을 할 수 있는 기관지 창간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이에 따라 대한의학협회는 1966년 4월 16∼17일 광주 무등관광호텔에서 열린 제18차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주보 성격의 기관지 발행안을 의결하고 기관지 창간을 명문화했다.

이후 대한의학협회는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에 소재한 회관 옥상에 가건물을 설치해 인쇄시설을 갖추는 등 법적 제반사항을 갖추고 1967년 3월 9일 공보부에 주 2회 발간 특수주간신문 발간등록(등록번호 다-184호)을 마무리하고, 3월 10일 명주완 대한의학협회장, 김사달 공보간행이사 등 임원진과 신문사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현판식을 열었다.

▲ 1970년 대한의학협회는 새로운 회관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 새 회관을 건립키로 했다. 뼈대를 갖춘 회관 주위로 다른 건물이 보이지 않아 아파트로 둘러싸인 현재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의협신보>는 이촌동 사옥에서 안정기를 맞는다.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의협신보>

1967년 3월 21일. 의권옹호·의도앙양·의료문화발전·의정쇄신을 사시로, 창의발휘·책임완수·신속정확·인화단결을 사훈으로 내걸고 <의협신보>는 세상에 첫 모습을 내놓는다.

창간호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인술보국>, 이효상 국회의장의 <수도춘회> 등 축하휘호와 박목월 시인의 <난초를 생각한다> 축시가 게재될 정도로 대한민국 최고의 전문가단체로서 대한의학협회와 <의협신보>의 대내외적인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협신보>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자로 2회 발간을 시작하면서 전국 각지에 있는 회원들의 목소리를 올곧게 담기 위해 지사 및 지국을 확장했다. 1967년 6월 7일 서울을 제외한 10개 시도의 의사회장을 지사장으로 임명하고, 6월 22일에는 전국 160곳의 시군구의사회장을 지국장으로 선임하면서 명실상부한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갖추게 됐다.

창간초기 특수주간신문 등록 조건이던 인쇄시설을 갖추기는 했지만 현실적으로 문선·정판·제판·윤전에 이르는 제작업무 전반을 운용하기에는 인력·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

▲ <의협신보>의 제작과정은 우리나라 신문제작의 발전상과 궤를 같이 한다. 초창기에는 문선(납활자 채자)-정판(판짜기)-제판(사진·제목·컷 동판 제작)-윤전(인쇄) 과정을 거쳐 신문을 발간했으나, 이후 기술의 발달로 인쇄지 제판시대를 지나 화상조판이 이뤄지게 된다. <의협신보>도 1999년 자체 조판시설을 갖추고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인쇄를 뺀 전 과정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게 된다.

마침 관계 당국에서 신문발간 지침을 기관지 성격의 신문발행은 인쇄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된다고 변경함에 따라 창간호는 신아일보사(서울 중구 정동 소재)에서 발행한 후, 지령 39호(1967년 8월 3일자)까지는 산업경제신문사를 거쳐 현재의 한국경제신문사 전신인 현대경제일보사에서 1991년10월까지 20여년간 취재·편집 업무 외 신문제작 전반작업을 시행했고, 이후 경향신문사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제작관련 시설을 이용하다가 1999년 의협신문이 제작시스템을 갖추면서 현재까지 인쇄를 제외한 일체의 신문제작시스템 전반을 자체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의료계 대변지로 자리매김 하는 <의협신보>

대한민국 의사 중앙단체인 대한의학협회 기관지로서, 또한 보건의료전문지로서 틀을 갖춘 <의협신보>는 국민보건향상·의권신장·학술적 진전이라는 대명제를 현실화시키기 위해 각종 보건의료정책 의제 설정과 한국 의학의 발전 상황 전달, 폭넓은 여론 전달을 통한 대안 제시에 나섰고, 이같은 역할은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다.

창간과 함께 의료제도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서구 선진국의 의료제도를 소개하며 우리나라 의료제도의 발전 방향을 가늠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던 <의협신보>는 이후로도 의료일원화·의료전달체계·의료분쟁조정·의료보험제도·의약분업제도 등 의료계 난제와 숙원사업 해결을 위한 공기로서 역할을 담당해 왔다.

신속·정확하게 의료계의 목소리를 충실하게 전달하기 위한 <의협신보>의 노력은 정부·국회를 비롯, 보건유관단체와 각 대학병원·종합병원, 시도의사회를 주요 출입처로 정해 새롭게 발굴되는 현안 및 각종 정책의 문제점과 대응 방안에 대해 깊이있는 진단을 통해 공론 형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왔다. 의료계 현실을 왜곡하거나 잘못된 정책 추진, 의권유린 등에 대해서는 호외 발행을 불사하면서 의료계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 <의협신문>은 의료계의 분출된 목소리를 현장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집회현장에서 배포할 호외를 발행했다. 2013년 12월 여의도에서 열린'의료제도 바로세우기 전국의사 결의대회'에서 회원들이 호외를 살펴보고 있다.

한국의 의학 수준이 현재에 이르기까지에도 <의협신보>는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요즘같이 학술행사가 다변화되고 대외적인 홍보 활동이 강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의학적 진전을 직접 취재를 통해 지면에 옮기면서 사회적으로 외면받았던 의학의 발전상황을 알렸고, 희귀 증례의 치험례를 비롯 새로운 치료법·치료기술 확산에도 밑거름이 됐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의료계는 억압된 의료제도와 왜곡된 의료현실에 대한 회원들의 민의가 폭발하고 의약분업은 그 촉매제가 됐다.

 

각종 규제와 억압속에 억눌렸던 민의를 밖으로 분출하는 전환점을 이뤘고 <의협신문>은 생생한 역사의 현장을 기록해 나갔다. 의사들은 진료실에서 벗어나 거리로 나왔고 대규모 장외집회를 통해 의사들의 뜻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의료영리화·원격의료 도입 등 의료 관련 악법에 의사들은 저항했고 의협신문은 의료계의 대변자이자 전달자로서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갔다.

새 패러다임과 함께 거듭나는 <의협신문>

창간 30주년을 지나면서 장년에 길에 들어선 <의협신문>은 내부에서도 큰 변화가 시작됐다. 먼저 1998년 3월 창간 31주년을 맞아 전면 가로쓰기 편집으로 읽기 편한 신문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선 데 이어, 1999년부터는 외부 신문사를 통해 발간작업을 이어오던 것을 편집·출력시스템을 갖추고 지면조판에서 출력까지 자체적으로 진행하게 됐다.

2000년 10월부터는 전면광고로 채워지던 1면을 기사화하면서 대외적인 신인도 제고 및 역량 강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2004년 1월에는 창간이후 유지되던 신문 제호를 <의협신보>에서 <의협신문>으로 바꾸고 역사적 전통에 새로운 변화를 덧입히는 기틀을 다졌다.

▲ <의협신보>의 제호와 편집형태도 50년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창간호 때는 국·한문 혼용체에 세로짜기 편집형태였으나, 1998년부터 전문 가로짜기 편집을 도입하고 한글전용으로 변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로짜기 편집형태가 도입되면서 제호 역시 <의협신보>에서 <의협신문>으로 바꾸고 제호 디자인도 한글에 적합한 새로운 글자체로 탈바꿈했다.

2005년 3월에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인터넷 의협신문 <kmatimes.com>을 창간했으며, 2010년 현재의 <doctorsnews.co.kr>로 제호를 변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doctorsnews.co.kr>에서는 2015년 1월부터 창간 이후 전 지면을 PDF화일로 구성해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의협신문은 언제나 회원과 함께 하는 신문이었다. 요즘과 같이 정보교류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에서 회원들이 의견을 대내외에 직접 밝힐 수 있는 칼럼란 지면을 할애했으며, 시·소설·수필·그림 등 장르에 구분없이 회원들의 예술 작품활동을 소개하는 마당이 되기도 했다.

회원들의 여가 활동에 대한 지원도 주도했다. 1969∼1971년에는 의사 바둑동호인들의 기력을 겨뤘던 전국의료인바둑대회를 주관했으며, 1971년부터는 의인미전을 열어 동양화·서양화·서예·공예품 등 의사 작가들의 작품을 세상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1969년 시작된 의사연식정구대회는 서울·부산·대구지역 등을 순회하며 7회까지 치러졌으며, 1974년에는 전국의사테니스대회로 전환해 2000년대 후반까지 주관해 오면서 의사테니스 동호인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이와 함께 <의협신문>은 의료계에서 대표적인 의료문화상과 봉사상 제정을 통해 의사들의 활동상을 대외적으로 알려오고 있다.

먼저 1969년 최신의학에 대한 연구의욕을 고취시키고 한국적 의료문화를 알린다는 취지아래 동아제약과 함께 의료문화상을 제정했다. 의료계에서는 유일하게 저술활동에 대한 시상이 이뤄져 화제를 모았으며, 1999년(제31회) '동아의료저작상'으로 명칭을 변경한데 이어 2007년 '동아의학상'으로 다시 명칭을 바꾼 후 2008년(제40회)까지 의사들의 뛰어난 저술활동을 발굴해 시상했다.

1985년 보령제약과 함께 제정한 '보령의료봉사상'은 인술로 소외된 이들을 돌보는 의료인들을 발굴해 참된 의료인상을 알리고 의술의 존귀한 가치를 정립해오고 있다. 올해로 33회째를 맞는 보건의료봉사상은 지금까지 400여분의 인술 인생을 세상에 알려 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있는 의료봉사상으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 <의협신문>은 해외 재난지역에서 구호활동을 펼친 의료인들의 활약상도 직접 기록했다. 2003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 지역과 2010년 아이티 대지진 현장을 의료진과 함께 찾아 현지의 참상을 알리고 한국 의료인들의 인술 현장을 상세하게 전달했다. ⓒ 김선경기자

지난 2015년에는 보령의료봉사상 제정 30주년을 맞아 보령의료봉사상 30년사 <손길>을 통해 지금도 각지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다가서고 있는 의사들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의협신문>은 각종 매체가 범람하고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보건의료계 대표언론으로 자리잡고 있다. 의사회원을 대상으로 최근 10년 동안 설문을 통해 파악한 <의협신문>의 매체 선호도는 지면과 신문 모두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의협신문>은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필요한 내용과 정보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새로운 의제 형성을 위한 정책좌담회 개최, 신지식 확산과 경영 개선에 도움을 주기 위한 지식경영세미나 주최, 개원가에서 필요한 세무·노무·법무 관련 정보 제공, 주요 현안에 대한 캠페인과 기획취재 등을 통해 회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 <의협신문>은 50년 역사를 뒤로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있다. 대한민국 의사들의 대변자로서, 또 보건의료 전문 언론으로서 새 지평을 열어 나갈 의협신문의 주인은 독자다.

앞으로 독자들의 참여를 더욱 확대해 나가고, '국민 건강'이라는 대명제를 수호하기 위해 의료현장을 지키고 있는 참된 의료인상을 대내외에 알려 나갈 예정이다. 더불어 왜곡된 의료 현실을 정론으로 바로세우며 의료계를 향한 비뚤어진 시선을 바로잡아 나갈 것을 다짐한다. <의협신문>의 새로운 도전과 시작을 지켜봐 주시길 당부드린다.

지난 50년간 <의협신문>이 정도를 걸으며 정론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독자 여러분의 응원과 질책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잊지 않으며 맡겨진 사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다.

지금까지 독자들께서 <의협신문>에 보내주신 성원을 엄숙한 마음으로 가슴에 새기며 새로운 모습으로 100년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는다.

다시 시작하는 <의협신문>의 앞길에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린다. 

 

 

의협신문 약사

1966. 12. 직제는 직무규정에 따라 발행인과 편집인 밑에2국(편집국·업무국) 4부(편집부·취재부·서무부·광고부)로 편성
1967. 3. 10 醫協新報 현판식 거행
1967. 3. 21醫協新報 창간호 발행
1968. 1. 의협회지 발굴운동 전개
1968. 12. 22 제1회 전국의료인 친선바둑대회 개최
1968. 4. 20 창간 1주년 기념 심포지엄(주제 동맥경화증)
1968. 5. 신문운영위원회 발족
1969. 1. 동아제약과 공동으로 '의료문화상'제정
1969. 5. 25 제1회 전국의사연식정구대회 개최
1969. 6. 1 제1회 전국의료인 친선낚시대회 개최
1969. 7. 전국의과대학 무의촌사업 돕기 구료의약품 및 의료기구 수집운동 전개
1969. 9. 8 일선장병 위문
1970. 6. 22 모자보건법안 공청회 개최
1971. 4. '의료문화상'을 저작상·봉사상으로 구분하고 명칭을 '동아의료문화상'으로 변경
1974. 5. 24 공보위원회규정 제정
1974. 9. 연식정구대회를 테니스대회로 전환 제1회 전국의사 테니스 대회 개최
1977. 1. 직제개편으로 서무·인사·발송 등 업무국 소관 업무를 협회 사무처로 이관시키면서 업무국 폐지. 이에 따라 직제 1국(편집국), 4부(편집부·취재부·조사부·광고부)로 축소
1979. 2. 편집국의 조사부를 학술조사부로 개칭
1979. 5. 주필제 신설
1980. 5. 광고부를 광고국으로 승격, 편집국에서 분리
1981. 1.의협신보 가로·세로짜기 혼용
1981. 3. 22 의협신보 창간 15주년 기념 세미나(주제 : 한국인의 평균수명)
1985. 3. 21 보령제약과 공동으로 '보령의료봉사상'제정-의협 포털사이트에 KMA hot 뉴스 제공
1993. 1. 화상 편집체제 전환
1994. 10. 의협 정보통신망인 'kmain'에서 의협신보 기사내용을 볼 수 있도록 'kmanews' 개설
1997. 3. 21 의협신보 창간 30주년 기념 <醫協新報 三十年史>발간
1998. 1. 의협신보 전면가로짜기
1999. 3. 11 의협신문운영규칙 제정
1999. 3. '동아의료문화상'에서 '동아의료저작상'으로 개칭. 저작물에 대해서만 시상
1999. 4. 의협신보 자체제작 시스템 운영
2000. 10. 2 지면개선(1면 기사면 전면광고 축소)
2002. 1. 의협 포털사이트에 의협신보 PDF 서비스 제공
2003. 11. 의협 포털사이트에 KMA hot 뉴스 제공
2004. 1. 1 <醫協新報>에서 <의협신문>으로 제호변경
2004. 10. 31 제1회 전국의사 등반대회 개최
2005. 11. 14 의협신문 전지면 칼라도입
2005. 3. 21 인터넷 의협신문(KMAtimes.com)창간
2006. 3. 6 의협신문 지령 4000호 기념 '한국의사의 미래와 정치참여' 심포지엄
2007. 1. 18 '동아의료저작상'에서 '동아의학상'으로 명칭 변경
2008. 11. 15 대한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 KMAtimes 전면개편 제2의 창간선언
2008. 2. 14 직제규정 개정에 변경 광고국 폐지. 1국(신문국) 3팀(취재팀/편집팀/광고팀)
2009. 1. 1 의협신문 주 1회 변경
2010. 3. 15 <Doctor's News>제호변경
2011. 5. <Doctor's News>모바일 웹 개발
2013. 10. 의협신문 전지면 PDF제작 추진
2013. 7. 17 의협신문 발송규정 변경
2014. 3. 21 보령의료봉사상 30주년 기념식
2015. 1. 15 의협신문 창간이후 전지면 다시보기서비스 시작
2017. 3. 21 의협신문 창간 50주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