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어둠을 밝힐 수 있기를
청진기 어둠을 밝힐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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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2.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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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 정찬경 원장(인천 부평·밝은눈안과의원)

"네게서 모든 능력을 빼앗아가고 한 가지만 남겨주겠다. 무엇을 택하겠느냐?"

어느 날 신이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 대답하게 될까. 어려운 선택이 되겠지만 아마 나는 백내장수술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남겨주시라 말할 것 같다.

백내장은 안과의사로서 가장 많이 대하는 질환이고 내가 주로 하는 수술 역시 백내장수술이다. 20여년의 안과의사생활을 백내장과 함께 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백내장은 노화에 의한 수정체의 혼탁이다.

동공의 중앙에 있는 수정체는 지름이 9mm, 중심부의 두께는 5mm이며 주변으로 가며 얇아지는 동그랗고 투명한 원반처럼 생겼다. 무게는 255mg이며 주성분은 수분과 단백질이다. 초기 백내장을 포함하면 대략 40대는 17%, 50대 34%, 60대 53%, 70대 72%, 80대 96%의 유병률을 보인다. 요즘의 평균연령을 고려하면 국민안질환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진행한 상태의 빈도는 50대는 2%, 60대 17%, 70대 28%, 80대 59% 정도다. 세계 실명원인 1위이며 2010년 이후 해마다 3000만 명 이상의 인류가 백내장으로 인해 실명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5년 한 해에 45만 건의 수술이 행해졌으며 최근 수년간 수술 건수 1위다.

수정체는 수정체낭이라 부르는 얇은 막에 쌓여 있다. 이 낭의 앞부분에 동그란 구멍을 내고 수정체 내의 탁해진 핵과 피질을 초음파와 미세흡입기 등을 이용해 깨끗이 제거한다. 이후 그 수정체가 담당했던 굴절력(빛을 꺾어 초점을 맺게 하는 힘)을 보상해주는 인공수정체를 넣어주는데 이 과정이 백내장수술이다.

수련 당시 나는 이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안과의사가 되는 거라 생각했고 다른 전공의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레지던트 생활에서도 백내장수술환자의 입·퇴원, 수술보조 및 술후관리가 매우 큰 비중을 차지했고 늘 백내장 수술술기의 숙달을 염원했다.

어느 날 당직실에서 전공의끼리 모여 숙련된 술자의 백내장 수술 장면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었다.

"캬아! 나는 언제쯤 저렇게 멋지게 수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될까" 하며 서로를 안타까운 표정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또렷하다.

전문의 취득 후 한동안 동기나 선후배를 만나면 '백내장 몇 케이스 한 사람'이 자신의 명함이자 이력이었다. 백내장수술에 자신이 있어야 취업이든 개원이든 할 수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도 했지만 안과의사로서의 자부심과 정체성이 그것과 직결된다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힘겹게 한 케이스 한 케이스를 넘고 넘어 백 안, 이백 안, 경험이 쌓이면서 점차 안정된 수술테크닉을 갖게 됐다. 하지만 성경에도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던가.

가끔 난이도가 높은 케이스나 해부학적으로 특이한 구조를 가진 눈 등의 복병을 만난 날은 또 한 번 쓰디 쓴 회한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다양한 합병증을 만나고 불평에 시달리기도 하고 환자와의 크고 작은 갈등은 물론 송사도 겪어 보았다.

치명적인 합병증인 세균성 안내염의 경험은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눈 안에 노란 농이 들어 차있는 모습을 본 순간의 충격과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끔찍한 것이다. 이 밖에도 백내장 수술에 얽힌 사연은 셀 수 없이 많다.

지난해 이맘 때였다. 몇 주 동안이나 낫지 않는 감기에 걸려 끙끙대며 백내장수술을 하고 있었다. 몸이 힘들어서였을까. 그날따라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걸까, 늘 반복되는 이 일이 내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 신이 많은 사람 중에서 내게 이런 능력을 주신 데에는 어떤 뜻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날만큼은 병원의 경영자로서, 가장으로서의 책임이자 의무만이 아닌 내 일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한번쯤 찾아보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 수술실이라는 조그마한 공간에서 백내장을 치료하는 것이 이 넓은 세상에 비하면 작고도 작은 일이지만 그 작은 일이 쌓이고 쌓여 이 세상의 어둠을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내 일이 참 보람된 일이자 내게 주어진 사명으로 여겨졌다.

그 날 이후부터 늘 하는 백내장 수술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졌다. 수술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지는 것 같았다. 환자의 눈이 조금이라도 밝아질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수술에 임하게 되는 날이 많아졌다.

얼마 전 광화문 광장의 촛불시위에 다녀온 적이 있다. 그곳에서 모두가 들고 있던 촛불을 한꺼번에 껐다 다시 켜는 퍼포먼스가 있었는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짙게 깔린 어둠이 환한 빛의 광장으로 바뀌는 순간 뭐라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정이 물밀듯 가슴에 밀려왔다. 다른 이들의 표정에서도 감격과 기쁨을 보았다. 잠시 후 노래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어느덧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비록 작고 약한 촛불이지만 그 촛불들이 모여서 어둠을 몰아내기를, 그래서 밝고 아름다운 세상이 어서 올 수 있기를 함께 염원했다.

추운 날씨에도 시린 손을 호호 불고 비비며 촛불을 움켜쥔 채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그런 간절함을 수술실에서도 간직하고 싶었다. 영롱히 반짝거리는 촛불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나의 눈과 두 손이 내가 돌보아야 할 이들에게 시나브로 다가오는 어둠을 밝힐 수 있기를 조용히 마음속으로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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