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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도의 "행님, 작사 하나만" 부탁에...김연일 원장

설운도의 "행님, 작사 하나만" 부탁에...김연일 원장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6.06.28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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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우회보에 기고한 시 눈여겨본 설운도 부탁에 시작
여자·눈물·사랑·이별 주제로 쓰자 바로 멜로디 탄생

 

▶His-story 김연일(김연일정형외과 원장, 전 순천향대학병원장)
색소폰 부는 의사. 그를 검색하면 각종 행사에서 색소폰을 연주했다는 기사가 가장 많이 뜬다. 최근에는 트럼펫도 배운다. 경비행기 운전도 빼놓을 수 없다. 공군사관학교에 가고팠던 그는 부모의 반대에 의대에 진학했으나 '하늘을 날겠다'는 꿈을 안고 50 중반이 넘어서 도전, 그 꿈을 이뤄낸 '진짜 사나이'다. 종종 시를 쓰던 그는 작사에도 소질이 있어 '고향 후배이자 형동생 하는' 설운도의 노래 3개를 작사했다.

1979년부터 근무한 순천향대병원에서는 2000년 병원장까지 역임한 후 2010년 퇴임했다. 5년 후인 2015년 1월 서울 이촌동에 '김연일정형외과'를 개원했다. 이촌동을 택한 이유는 순천향대병원과 가까워서. "강변북로 타면 10분밖에 안 걸리거든요." 대학병원에서 격무에 시달릴 때보다 개원한 지금이 더 좋느냔 말엔 "언제나 즐거웠다"고. "늘 현재에 만족하며 사니까요."

▲ 평소 시와 음악에 재능 있던 김연일 원장은 설운도의 노래 3개를 작사한 작사가다. ⓒ의협신문 김선경
"행님, 작사 하나 좀 해주이소."
1997년 어느 날이었다. 순천향대병원 원우회보를 뒤적이던 설운도가 김연일 원장에게 대뜸 작사를 부탁했다. 병원 홍보실장이던 김 원장은 원우회보에 종종 시를 기고하곤 했는데 그걸 설운도가 눈여겨본 것이다.

"행님, 이럼 안 돼. 작곡을 못 해."
고심 끝에 완성한 첫 가사는 단번에 퇴짜를 맞았다. 너무 시적이라는 이유였다. "어쩌면 되느냐고 물었지. 운도가 단어를 딱 정해주더라고. 여자, 눈물, 사랑. 이별. 이것만 갖고 하래. 어허 참. 내 정서랑은 안 맞았지만 해볼까 했지."

그렇게 설운도의 '보라빛 엽서'가 탄생했다. 작사가인 김연일 전 순천향대병원장은 이 사연으로 21일 TV 프로그램 '아침마당'에도 출연했다. 물론 설운도와 함께였다. 김 원장의 다른 작품으로는 '사랑의 탱고'와 '추억의 그림자'도 있다. 두 노래 역시 설운도가 불렀다.

일 하나만 잘하기도 어려운 세상에서 김 원장은 경비행기 조종과 색소폰 연주란 취미로도 이름을 날렸다. 이번에는 작사가의 면모도 새롭게 드러낸 셈이다. 흔치 않은 의사 출신 예술가다. 그는 1979년부터 2010년 퇴임할 때까지 30여년을 순천향대병원에서 보냈다. 제8대 병원장을 맡기도 했던 그는 지난해 1월 서울 이촌동에 '김연일정형외과'를 열었다. 정년퇴직 후 개원. 이 역시 참 흔치 않은 행보다. 

흔치 않은 삶을 사는 김 원장에게 설운도와의 인연을 물었다. "병원 홍보실장 할 때 거의 연예인 주치의였어요. MBC 연예인을 많이 진료했는데 한 사람, 두 사람씩 오다가 내가 잘 보는 것 같으니 서로 오더라고. 그때 순천향대병원 뒤에 설운도가 살았어요. 둘 다 부산이 고향이라, 아파도 오고 놀러도 오면서 친해졌지."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김 원장은 병원 원우회보에 종종 시를 기고했다. 다른 교수들이 쓴 시를 받아 게재하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김 원장의 시를 본 설운도가 "행님, 작사 하나 좀 해주이소"라며 부탁을 해온 것이다.

여자·눈물·사랑·이별로 탄생한 '보라빛 엽서'

▲ 21일 '아침마당'에 설운도와 함께 출연한 김연일 원장.
잘 쓴 시는 노래가사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첫 작품은 "가사가 아니라 시 같다"며 퇴짜를 맞았다. 설운도의 지시(?)대로 '여자, 눈물, 사랑, 이별'을 놓고 고민하던 중 TV에서 '예쁜 엽서전'이 보였다. 요즘에야 인터넷으로 사연을 보내지만 90년대만 해도 엽서에 사연을 적어보내던 때였다.

"참 잘 만들었더라고. 글씨도 예쁘고 엽서도 보라빛, 파란빛, 노란빛 등 참 많았어. 무미건조한 엽서는 하나도 없더이다.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지나간 사랑, 간절한 사랑을 담은 가사를 완성했지."

보라빛 엽서에 실어온 향기는 / 당신의 눈물인가 이별의 아픔인가 / 한숨 속에 묻힌 사연 지워보려 해도 /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네
오늘도 가버린 당신의 생각엔 / 눈물로 써내려간 얼룩진 일기장엔 /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 다시 못 올 그대 모습 기다리는 사연

가사를 보내주자 설운도는 그 자리에서 기타로 멜로디를 작곡했다. "아티스트들은 가사를 보면 음이 딱 떠오르나봐. 테이프에 녹음한 노래를 전화기로 들려주는데 와…그때 기분이 참 멋있고 떨리더라고."

그러나 1997년 발매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다. 같은 앨범에 실렸던 '사랑의 트위스트'가 대박을 쳐 오히려 묻힌 곡이 됐다. 조금씩 반응이 오기 시작한 건 한참이 지난 2013년부터다.

"3년 전인가 운도한테 전화가 왔어. '보라빛 엽서'가 뜨고 있다는 거야. 라디오에서도 안 틀어주는데 어디서 나오냐고 물었지. 주부 노래교실에서 많이 부른대. 유투브에도 떠 있더라고. 아무리 사장된 곡일지라도 좋은 노래라면 감성을 끄집어낸다는 걸 그때 알았어."

'다시는 못 볼 그대 모습을 기다린다'는 슬픈 가사 때문이었을까. 조용히 인기를 얻어가던 노래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건 2014년 10월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 때문이었다. 27명의 사상자를 냈던 이 추락 사고 후 어느 유가족이 "사고로 떠난 시동생이 참 좋아했다"며 '보라빛 엽서'를 '가요무대'에 신청한 것이다.

"그 사연이 소개되며 찾는 이들이 많아졌대요. 특히 주부층에서 인기가 많아 운도가 어디 행사만 가면 전부 다 '보라빛 엽서'를 불러달라고 했답디다. 그런데 작사가가 의사란 걸 방송국에서 알게 돼 '아침마당'에도 나가게 된 거죠."

가사도, 의사도 '뜻'이 없으면 죽은 것

▲ "환자가 밀려도 이 양반 이야기가 끝나야 다음 환자를 봐요. 의술은 인술이라니까." ⓒ의협신문 김선경
김 원장은 최근 작사한 것들만 10여개가 된다며 일부를 보여줬다. 잔잔하고 서정적이었다. 혹 삶과 죽음을 다루는 직업적 영향인가 물으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요즘 젊은 애들이 부르는 노래는 의미를 모르겠다"며 가사가 주는 메시지를 중시했다. "옛날 노래들은 말이 참 좋아요. 운도가 몇 개 더 달라고 해서 보내줬어요. 곡이란 게 제일 문제가 작사라, 다른 사람들도 달라고 한대요."

그가 쓴, 어느 한 곳 무의미한 음으로 이뤄지지 않은 가사처럼 김 원장은 일에도 분명한 뜻이 담기길 원했다. 그가 2015년 1월 17일 개원한 이유다.

"병원 퇴임 후 로컬병원장도 하고 후배들이 일하는 데서 외래도 봐줬어요. 그런데 내 평소 꿈은 개원이었어요. 병원에 교수 직함을 걸고 있으면 환자들이 몰려오죠. 건물과 이름, 외형만 보고서. 나는 개원해서도 대학병원에 있을 때처럼 환자를 볼 수 있을지 참 궁금했어요. 내 클리닉에서 내 환자를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항상 있었고."

그는 의사라면 궁극적으로 자기 병원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보통 건강과 나이, 경제적인 문제로 개원을 주저해요. 펄펄 날고 기는 젊은 의사들이 너무 많으니까.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필드에 나와 보니 달라요. 환자들은 자기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의사를 좋아합니다. 의술이 괜히 인술이겠어요."

의술은 인술. 그 당연해 보이는 가치에 김 원장은 요즘 의료계를 우려했다. 일부에선 상술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먹고 살아야 하니까. 간호사 월급 줘야지, 월세 내야지, 시설비 나가지 등등 생존수단으로 상술을 부려요. 의사들이 머리가 좋아서 그런지 비급여를 계속 개발해서 고가의 치료행위로 환자를 현혹시켜요. 의술이 상술이 되는 것도 모자라 사기까지 치면서 사(死)술로 변질됐어요."

그는 대학병원에 있을 때나 개원한 지금에나 똑같이 치료를 권한다고 했다. 본전뽑기용 진료는 없다는 것. "이촌동이 부촌이잖아요. 한 집 건너로 자기 가족이 대학병원 교수나 병원장 하는 사람 많아요. 그런데 여기에 와보니 자기가 대학병원에서 받던 치료 똑같이 하거든. 더 권하는 것도 없고. 그러니 뭐하러 멀리 가요. 우리병원 오는 거지."

그래서인지 개원 1년 반이 지난 지금, 병원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그 또 하나의 비결로는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고 했다. "환자가 밀려도 이 양반 이야기가 끝나야 다음 환자를 봐요. 그러니 환자는 얼마나 좋아. 말이 3분 진료지 30초도 안 보잖아요? 나는 안 그러니 계속 오더라고. 학생들도 많아요. 꼭 아파서가 아니라 내가 애들을 예뻐하니까 학교 끝나고 과자 먹으러도 오고."

인터뷰 도중 환자가 들어왔다. 그는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진료를 봤다. 족히 10분은 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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