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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같은 흉부외과 기대하지 말입니다"

"특전사 같은 흉부외과 기대하지 말입니다"

  • 박소영 기자 syp8038@daum.net
  • 승인 2016.04.1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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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에서 정책 제안에 적극 나설 것, 5월 스텐트 고시 두고보라
대학병원과 개원가의 수술 간극이 문제, 전공의 교육에 고민 중

▲ 흉부외과 의사와 특전사간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태양의 후예>.
요즘 수·목요일 밤 10시면 여자들은 바빠진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배우 송중기) 때문이다. 흙바닥을 굴러도 잡티 하나 없이 멀끔한, 뙤약볕 아래 굴러도 비누 향기가 폴폴 날 거 같은, "지금 이 시간 이후로 내 생각만 합니다"란 유시진의 한마디에 여자들은 심장을 부여잡고 남자들은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며 혀를 찬다.

<태양의 후예>는 흉부외과 의사 강모연(배우 송혜교)과 특전사 유시진의 달콤살벌한 로맨스. 임무에 따라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유시진은, 어떤 상황에도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강모연과 사사건건 사상 대결을 벌인다.

그런데 유시진이 원래 '신의 손'을 지닌 외과의사였다는 걸 아는가. <태양의 후예>는 2011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원작인데, 여기서 유시진은 피도 눈물도 없으며 자기밖에 모르는 천재 의사로 나온다.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남녀 설정이 바뀌긴 했지만 의사, 그것도 흉부외과 의사는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태양의 후예> 이전에도 <뉴하트>, <외과의사 봉달희> 등에서 흉부외과 의사는 최고의 실력파로서 환자를 살리는 데 모든 걸 건 '진짜 의사'로 그려지곤 했다. 

▲ 신재승 고대의대 교수(고대안산병원 흉부외과).

최근 또 다른 '태양의 후예'를 기대하며 만난 신재승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정책윤리위원장(고대안산병원 흉부외과). 그는 "대중에게 흉부외과란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미지일 뿐"이라며 아쉬워했다. 멋있어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 뭘하는진 잘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흉부외과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다 보니 정책 기획에서 자꾸만 제외된다. 심장내과와의 스텐트 협진이 대표 사례였다"며 "올해부터는 국민 건강을 위해 학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 밝혔다.

그렇다면 앞으로 흉부외과에 유시진 같은 '특전사'를 기대해도 좋은 걸까. 신 교수는 지난해 신설된 정책윤리위원회를 '비밀결사대'에 비유하며 구체적인 계획 언급은 피했다.

대신 "회원들에게 설문조사도 하고 학회 운영 전반에 대한 컨설팅도 받아 현안 과제를 만들었다. 크게 흉부외과 전문의들의 취직, 전공의 교육, 수가개선의 3개 카테고리로 접근할 계획"이라며 "1∼2년 안에 끝날 일은 아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어느 것을 우선적으로 추진할 것인지 논의 중"이라 말했다.

이어 "한 달 후인 5월이면 작년에 개정된 스텐트 고시안의 평가가 다가온다. 스텐트 사용량과 심장내과와의 협진 결과를 볼 것이다. 결과에 따라 학회 차원에서 고시 확정 혹은 재평가를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라 밝혔다.

앞서 2014년 보건복지부는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계획'에 따라 평생 3개까지만 건강보험을 적용했던 심장 스텐트를, 향후 개수 제한 없이 보험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흉부외과와 심장내과가 심장통합진료를 시행하도록 한 고시를 발표했으나, 통합진료에 반발한 심장내과 등의 반대로 고시 시행이 3번이나 유예된 바 있다.

최근 흉부외과 최고 난제로 떠오른 전공의 수급 부족에 대해서는 "미달도 문제지만 수준 경쟁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 때만 해도 흉부외과 전공의는 믿을만한 학생이란 신뢰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성적이 안 좋아도 사람이 모자르니 뽑을 수밖에 없다"며 "한두 명 때문에 전체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이어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서구화되면서 심장 관련 질환이 늘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매해 흉부외과 의사를 70∼80명씩 배출해도 되는지는 생각해봐야 한다"며 "흉부외과는 개원도 어렵다. 우리나라 전체로 봤을 때 그만한 인력이 필요한지 학회 차원에서 연구해볼 것"이라 밝혔다.
 
그는 대학병원과 개원가에서 이뤄지는 수술이 다르다며 전공의 교육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엄청난 고난이도의 수술만 하는 반면 개업 후에는 하지정맥류나 다한증 수술을 주로 하는데, 이러한 간극이 너무 크다는 것.

신 교수는 "먹고 살 아이템을 하나도 교육받지 못한 채 갑자기 개원가에 내던져진다. 그때서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수술을 공부한다. 최소한 나가서 개업할 아이템을 가르쳐줘야 한다. 못하면 전공의 시절 다른 병원에 파견이라도 보내 다양한 수술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병원별 전공의 모집이 아닌 학회 차원 모집을 제시했다. 그는 "학회에서 정해진 프로그램을 통해 전공의를 모집하고, 전국 병원에 로테이션 시키자는 의견이 있다"며 "각 병원에서 전공의 교육용으로 받은 기금으로 학회에서는 전공의 월급을 주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전공의가 스스로 수련받을 기간을 정할 수 있도록 한 방안을 구상 중이다. 어렵겠지만 현실적으로 필요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수술로 바쁜 그였다. 인터뷰도 갑자기 응급수술이 잡히며 취소된 걸 겨우겨우 다른 시간을 잡아 진행했다. 그는 "고려대 안암·구로·안산병원 모두 흉부외과 전공의가 없다"며 "모든 걸 교수들이 다 한다. 내가 전공의 시절에 이럴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했다. 

문득 "공부 정말 잘하셨죠?"라 물으니 대답 없이 두 눈을 반짝였다. 그리곤 "제가 84학번인데 우리 땐 흉부외과가 피크였다. 75명 정원을 전국에서 경쟁해서 들어갔다. 전국 일등도 있었다"며 은근한 자랑을 내비쳤다.

1991년. 그가 전공의 1년차일 때다. 신 교수는 "불과 10년 사이인 2001년 지원자가 뚝 떨어지더니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힘들지만 다시 태어나도 흉부외과 의사를 할 것이라 했다. 자식이 흉부외과를 지망하면 기꺼이 허락하겠냐는 질문엔 "물론"이라고 했다. 거짓말 같진 않았다. 힘든 길을 불평 없이 걸어가는, 그는 진정한 '태양의 후예'가 맞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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