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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집단면역과 공유지의 비극

청진기 집단면역과 공유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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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25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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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전문의(소아청소년과사노피 파스퇴르 메디컬 어드바이저)

▲ 최영준 전문의(소아청소년과사노피 파스퇴르 메디컬 어드바이저)

미국 드라마 <하우스>에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 열이 나는 아이를 닥터 하우스에게 데려온 여인이 자본의 음모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아기에게 예방접종을 맞추지 않았다고 말한다. 닥터 하우스는 차갑게 내뱉는다.

당신 같은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아기용 관(棺)이 더욱 잘 팔리게 될 것이라고. 그리고 혼란스러워 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단순히 감기입니다"라고 진단한다.

지난 수십 년간 예방접종을 받는 인구의 비율이 늘면서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질병(VPD)이 크게 감소했다. 천연두는 박멸됐으며 폴리오는 퇴치를 앞두고 있다. 많은 나라에서 풍진·수두와 같은 소아기 감염병이 눈에 띄게 줄고 있고, 간암이나 자궁경부암과 같은 암의 양상도 바뀌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오로지 각 개인 수준에서의 수동 면역의 효과 때문만은 아니다. 예방접종을 받고 면역이 생긴 다수로 인해, 예방접종을 하지 못한(혹은 하지 않은) 사람들과 예방접종을 하고도 항체가 생기지 않은(혹은, 항체가가 떨어진) 사람들을 병원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집단면역'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1968년 개럿 하딘은 '공유지의 비극(The Tragedy of the Commons)'이라는 글에서 개인의 선택과 공동체의 이득과의 관계에 대해 논했다. 가령 100마리의 소를 키우기 좋은 목초지가 있다.

목초지를 공유하는 10명의 목동들은 각각 소 한 마리씩을 키우며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그 중 목동 한 명이 다른 마을에 가서 한 마리의 소를 사올 경우, 목동은 두 마리의 소를 갖게 되면서 추가적 효용을 얻는다. 목동은 개인 수준의 효용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러나 10명의 목동이 하나 둘씩 같은 결정을 하게 되면 소는 120마리, 150마리로 늘어나, 마침내 목초지는 더 이상 소를 방목할 수 없는 황무지가 되어 간다. 즉, 개인 수준의 합리성을 추구하는 선택이 합쳐졌을 때 결국은 전체가 공멸하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인간과 감염병 간의 전장에서도 볼 수 있다. 한 인구집단에서 예방접종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병원체의 보유나 전파가 억제돼 사회 전체적으로 감염병의 발생이 줄어든다. 그런데 만약 어떤 개인이 접종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다고 하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접종으로 인한 비용을 회피하면서 집단 면역의 혜택은 취하는 편익을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개인의 수가 늘어날수록 '면역의 공백(pocket of immunity)'이 커지며 감염병 유행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 경우 감염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은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사람뿐 아니라 아직 접종 적정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신생아나 영아와 같이 감염병에 취약한 인구이다.

예방접종에 따른 비용과 편익이 개인과 사회 수준에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예방접종의 시장은 효율적이지 못하다.

하딘이 지적한 공유지(목초지)를 사회의 집단면역으로 보았을 때 접종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사람이나 소를 초과해서 키우는 목동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공공재의 편익을 누리려는 '무임 승차자(free rider)'들이다.

사람간 전파가 가능한 감염병은 밀도 의존적이며 감수성자가 많아지면 당연히 유행의 확률을 증가시킨다. 목동의 입장에서는 소를 추가할 경우, 개인의 편익만이 향상되며.

다른 목동들과 함께 사용하는 목초지의 사용량, 즉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편익만을 추구하는 근시안적인 인간의 선택은 결국에는 공동체의 손실(감염병의 유행)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막대한 개인의 손해(중증 감염·장애·사망)로 이어질 수 있다.

개인의 선택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국과 유럽에서는 개인적 신념 등 '비의학적 사유에 의한 예방접종 면제(non-medical vaccine exempt)'가 적지 않고 그 결과에 따른 감염병의 재출현(re-emergence)이 보고되고 있다.

수년 전 미국에서는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따르며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아미쉬 공동체를 중심으로 약 300명 이상이 홍역에 감염됐으며,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를 방문한 예방접종을 받지 않은 아이들을 중심으로 100명 이상에게 홍역이 전파됐다.

결국 개인적 편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집단면역에 영향을 미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우리는 의학적 개입이 개인의 이익에 최선의 결과를 가져다 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 보듯이 사람 간 전파를 하는 감염병을 예방하는 데에서는 개인의 편익을 넘어선 '연대'와 '공공'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

예방접종은 다른 어떤 의학적 개입보다도 이런 가치를 담는 의료 행위다. 예방접종을 제공하는 의사가 진료실의 환자를 넘어 환자의 가족들과 지역사회 공동체를 고려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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