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청진기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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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14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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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 김연종 원장(경기 의정부·김연종내과의원)

지난달 30일, 저명한 신경과 의사이자 작가인 올리버 색스가 별세했다. 향년 82세.

올해 초 그는 여든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는 힘들거라며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지각이 있는 동물로 살았고, 이는 엄청난 특권이자 모험이었다"라고 투병 사실을 고백한 바 있다. 나는 인터넷으로 그의 사망소식을 접했는데, 마침 그의 대표작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던 중이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그 책은 오래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책을 읽지 못하고 그냥 덮어 두었다. 내 알량한 독서이력으로는 400쪽이 훨씬 넘는 두꺼운 책을 읽을 만한 엄두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올리버 색스의 그 멋진 책은 나의 뇌리에서 잊혀진 채 오래 동안 서재의 구석에 쳐박혀 있어야 했다. 얼마 전 그 책을 거론하는 문학관련 팟캐스트를 듣기 전까지는.

신경장애 환자들의 임상사례를 문학으로 승화시킨 의학계의 연금술사 올리버 색스의 대표작이자 최고의 베스트셀러란 말에 기억을 더듬어 책장을 훑어가기 시작했다. 최근 모 월간지에 문학과 의학의 접점을 찾는 글을 연재하면서 의료현장과 관련된 책들을 찾아 읽는 중이었다.

다행히 그 책은 맨 아래 귀퉁이에 꽂혀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 보니 책장 날개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다.

'올 한해 문운이 가득하길… 2006년 6월 20일.'
의사와 작가라는 공통점이 그의 눈에는 하나의 접점으로 보였던 것일까. 의사가 쓴 임상기록만으로도 훌륭한 문학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선물했을 게 분명했다. 그랬구나, 그 친구가 이런 심정으로 선물했구나.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들며 그의 얼굴은 책 속의 인물들과 오버랩 돼 뇌리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처럼 이내 책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 불리는 올리버 색스는 희귀 신경질환 환자들의 삶과 특별한 재능을 따뜻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재조명했다. 생생한 의료현장을 기술한 그의 임상 기록들은 멋진 문체로 쓴 메디컬 에세이 같기도 하고 극적인 현장이 공존하는 소설 같기도 하다.

이 책은 인지능력을 상실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고 집어 들려고 했던, 안면 인식 장애 뿐 아니라 투렛증후군(틱장애)이나 아스퍼거증후군(발달장애) 등의 질환을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의학이란 기본적으로 질병을 논하지만 또한 인간을 논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요소가 가미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분화된 의학적 지식을 가장 알기 쉽게 그리고 문학적 감성을 두루 갖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의사시인이나 의사작가들은 많지만 직업적 전문성을 유지한 채 직접 의료현장을 기술한 문학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인간에 관한 신뢰와 존엄성에 바탕을 둔 이 책은 의학적으로나 문학적으로 그 가치를 높이 평가 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모 신문사에서 의사로서 꼭 읽어야할 책을 추천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 의학 텍스트와 딱딱한 저널에 파묻혀 사는 의사들에게 또 책을 권한다는 게 무척 조심스럽지만 다시 그때와 똑같은 질문이 주어진다면 서슴지 않고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추천할 것이다.

희귀 신경질환자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기록한 올리버 색스 또한 기인으로도 유명하다. 건망증이 심했던 그는 약간의 틱 장애가 있었다. 아침과 점심은 시리얼과 바나나, 저녁은 밥과 생선만을 먹는 엄격한 식습관을 가지고 있다.

가끔 음악회에 가서 무대를 등지고 앉아 글 쓰는 것을 즐겼는데, 그 중에도 모차르트 음악을 가장 좋아해 "모차르트는 나를 더 나은 신경학자가 되게 만들고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의 집은 한 때 그의 환자였으며 후에는 친구가 된 이들이 그려준 그림들로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고.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사랑하는 환자들이 그려준 그림과 자기가 쓴 글들을 아내로 착각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훌륭한 의사이자 위대한 작가였던 고인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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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가현실화! 2015-09-17 02:35:31
정신적으로 척박한 한국사회엔
꾸뻬씨 시리즈와 같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줘야 합니다.
저질수가로 처참한 의료계지만 일반인들에게 명확한 정보를 줘야하는 의사의 본분에 의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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