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아플 때 가장 먼저 내미는 손길이 된다면"
"누군가 아플 때 가장 먼저 내미는 손길이 된다면"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5.07.20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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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희 원장(연세비앤에이의원·<매거진 반창고> 발행인)
어느 노학자는 "'함께'는 지혜"라고 말했다. 내가 누군가의 곁이 되고, 누군가가 내 곁이 돼 줄 때 우리가 얻는 것은 지식의 확장에 머무르지 않고 지혜의 깊이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매거진 <반창고>를 창간해 의사와 환자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내며 공감과 소통의 장을 펼치고 있는 전진희 원장(서울 마포·연세비앤에이의원)이 통권 4호째를 내놨다.

"대화가 필요해"는 이 시대를 관통하는 메타포다. 전 원장의 생각 역시 그렇다. 창간호 발간사에서 그는 "우리가 가진 서로의 지혜를 대화로 나누고 더하고 곱해서 창조를 만들어내는 작은 새싹을 틔우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대화와 소통을 통해 지향하는 선은 무엇일까. 그가 찾는 길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여전히 개원의이면서, 또 여전히 다른 공부와 일에도 외도를 멈추지 않고 있는 열정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의 낯선 삶이 궁금하다.

 

 

그는 왜 이 길에 나섰을까. 그가 틔우고 싶은 '작은 새싹'은 어떤 의미일까.

"지금은 지식과잉의 시대입니다. 이런 때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의학 역시 환자를 치료하는데 의학지식 뿐아니라 지혜가 필요합니다. 환자 마다 다른 상황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가장 적합한 치료에 접근합니다. 이런 과정은 의학교과서에서 찾지 못합니다. 의사들이 지혜를 나누는 자리를 통해 전인적 치료의 폭은 더욱 넓어집니다. 또 한 가지는 제 아이들에게 의사 부모로서 부끄럽지 않게 기억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현재의 의료시스템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제가 하는 일을 통해 누군가 말하고 그런 이야기들이 모여서 사회속에서 공론화되고 성숙될 수 있다면, 또 누군가가 올바른 의료시스템을 만든다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도, 몸도, 시간도 버리는 일이라는 지인들의 걱정 속 시작이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제 생각을 존중해 준 남편(양석우 원장)의 지지가 큰 힘이 됐습니다. 사실 제가 안해도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서기를 기다려야 하는게 불만이었습니다. 그 기다림보다 제가 하고 나면 누군가 또 다른 모습으로 더 의미있게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무크지 형태로 발간하고 있는 매거진 <반창고>는 이번에 판형을 바꾸고 내용도 보강했다. 새 표지는 가운 입은 의사의 손이 장식했다.

"<반창고>에는 누군가 아프다고 말했을 때 제일 먼저 내미는 손길의 의미를 담고 싶습니다. 저희 매거진을 통해 전해지는 것들로 인해 모든 것이 치유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서로를 이어주는 작은 연결고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를 통해 다른 상황과 입장을 생각해보고, 이해하고, 배려하다보면 생각하지 못한 선한 작용들이 서로의 가슴속에 스며들 것입니다. <반창고>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정부·기관·기업·병원·사회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소통과 관계의 의미를 되짚어갈 것입니다."

<반창고>는 따뜻하다. 취재 대상이 되는 주인공들의 소소한 일상에서도 품격이 느껴진다. 이 뿐 아니다. 특집 주제로 다룬 지적장애인·장기기증·희귀난치성질환자 등의 문제에는 마음 속 큰울림을 남긴다.

"의약분업으로 전 의료계가 혼란스럽던 2000년대 초반 의대생이었습니다. 그 후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 서로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가 바뀌어야 할 부분도 있지만 국민의 생각과 인식도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의사들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의사는, 의료인은 실제로 그런 의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반창고>를 접하는 모든 분들에게 '의사는 여러분의 동료'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의 일상은 무척 분주하다. 벌여 놓은 일이 수북하다. 게다가 아직 끝내지 못한 공부도 있고, 새롭게 일궈나갈 세상도 있다.

"<매거진 반창고> 발간작업은 'J com'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컨설팅과 교육 서비스를 하는 곳입니다. 저 역시 그 곳에서 의료벤처·메디칼 헬스 테크놀로지의 사업화 방향에 대한 강연을 맡기도 합니다. 또 이스라엘 라하브경영교육센터와 MOU를 맺고 연계된 국내 활동에도 관여하고 있습니다. 요즈마그룹에서는 바이오테크놀로지 기술심사 고문을 맡고 있습니다. 또 아직 논문이 남아 있지만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에서는 특허관련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의사가 산업에 들어가서 이야기하게 되면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사들의 훌륭한 인적 자산이 산업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그 일에 몸을 담고 싶습니다. 그래서 소통하고 교류합니다."

매거진 자문위원에 박창일 건양대병원장·이광형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장·전병율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이름이 보인다.

"우리 사회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내는 것은 어른과의 소통과 교류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우리 사회는 불균형이 일상화되고 세대는 단절됩니다. 젊은세대인 저희들은 아직 부족합니다. 어른들의 직관력·통찰력을 마음에 새기며 그 분들의 지혜를 빌어오고 싶습니다. 세 분 모두 제 스승님입니다."

 

최근 9년동안의 인천 개원생활을 접고 서울로 의원을 옮겼다.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의 개원 모토는 'Birth & Aging'이다.

"9년전 처음 의원 문을 열었을 때의 마음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의료는 사실 질병을 다루기 보다는 사람에 다가서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의학적인 기반의 의미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이일 때 만나 그 아이가 대학가고 결혼해서 그 아이의 아이와 함께 만나기도 했습니다. 중년에 만난 분들은 손주를 안고 오시기도 합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나이 들어가는 과정을 함께 겪고 싶습니다. 환자를 처음 만날 때 저에게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여쭤봅니다. 감춰진 속내에 조금씩 다가서며 신뢰의 싹이 틔워지는 것을 느낍니다."

지난 달 초 개원에 앞서 그는 '사람을 그리다' 사진전으로 주민들과 먼저 만났다. 시장통 들목에서 마주하는 전시회가 각별하게 다가왔다.

"저는 질병을 치료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치료합니다. 환자에 대해 의학적 상식내에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그러나 치료의 방향은 의학적인 도식으로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관심에서, 그에 따른 표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나게 될 많은 분들과 그들의 아름다운 가치에 기대어 동행하고 싶습니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공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며, '가슴에서 끝나는 여행'이 아니라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이라고 말한다. 가슴으로 배우고 발품 팔며 실천하는 전진희 원장의 끝나지 않는 공부가, 그가 꿈꾸는 세상이 더없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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