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공통감염(Zoonosis)의 심리학
인수공통감염(Zoonosis)의 심리학
  •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5.06.24 09: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민의식·정부 위기대응 매뉴얼·의료시스템 개선 필요
국민 건강·생명 지키기 위해 잘못된 제도·체계 바로잡아야

▲ 이명진 전 의료윤리연구회장
천연두(small pox) 예방접종이 시행된 후, 1977년 10월 26일 소말리아의 마지막 환자를 끝으로 세계보건기구(WHO)는 공식적으로 천연두 박멸을 선언했다. 이후 인류가 모든 감염병은 모두 정복할 수 있다고 낙관적인 예측을 하던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예측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있다. 그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동물과 사람 사이에 상호 전파되는 감염병인 인수공통감염(Zoonosis)이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며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사람과 밀접한 동물들에 의한 인수공통감염병이 창궐했을 때 인간들은 더욱 당황하게 된다. 현재 사람과 밀접한 인수공동감염은 메르스·장출혈성대장균감염증·일본뇌염·에이즈·광견병·조류인플루엔자·급성호흡기증후군(SARS)·광우병·결핵 등 약 120여 가지나 된다.

인수공동감염을 일으키는 병원체로는 세균·바이러스·리켓챠·클라미디아·원충·프리온 등 다양하다.

감염 형태도 결핵과 같이 사람에게서 동물에게로 전염된 경우와 동물에게서 사람에게 전해지는 경우, 동물과 사람이 모두 함께 주고받는 경우가 있다. 병에 따라 사람에게는 별 증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동물에게 중증을 일으키는 구제역 같은 병과 동물에게는 심각하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중증을 일으키는 브루셀라 같은 병,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중증을 일으키는 광견병과 같은 종류가 있다.

인류학자들은 인류 문명의 발달과 함께 발생된 문화적인 영향과 생물학적인 영향이 감염병을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후와 교통의 발달, 의복, 식생활의 변화, 인구의 증가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새로운 감염병이 인류를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5년 5월 낙타에서 사람에게 전염되는 중동호흡기증후군(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MERS)가 대한민국에 전파돼 많은 희생자와 경제적 손실을 안겨주었다. 교통과 교류문화의 발달로 인한 일종의 문화병이다. 무엇보다도 감염병이 주는 공포감은 예나 지금이나 큰 것 같다. 정확한 정보가 국민에게 전해지지 않을 때 과도한 공포심이 발생하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인류를 전멸위기까지 몰고 갔던 3차례의 흑사병과 나폴레옹 대군을 몰살시킨 발진티푸스 등의 인수공통감염과 콜레라 등이 유행할 때 사람들이 느낀 공포감과 그로 인한 거짓소문의 영향은 엄청났다.

14세기 2차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에는 유대인들이 우물을 오염시켜서 발생된 것이라는 거짓소문이 돌아 많은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19세기에 콜레라가 유럽 전역에 퍼졌을 때 엄격한 검역으로 여행과 교역이 통제됐다. 그 결과 식료품 가격이 폭등하고 이에 불만을 품게 된 빈민들이 폭동과 저항을 일으켰다.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는 부자들이 빈민들을 제거하기 위해 퍼트린 독이라는 유언비어가 확산됐다.

1831년 10만 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헝가리 콜레라 때는 농민들이 자신들에게 독을 퍼트렸다며 성을 포위하고, 귀족과 의사들을 살해했다. 프로이센에서는 의사들이 콜레라 사망자당 왕에게 돈을 받기로 암약을 맺고 자신들을 죽이고 있다는 거짓소문이 퍼졌다. 많은 의사와 관리들이 폭행과 살해 당했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의사들이 시체 해부용 시신을 구하기 위해 환자를 살해했다는 유언비어가 독버섯처럼 번졌다.

1985년 에이즈가 미국과 아프리카에 급증했을 때에도 미국 흑인들은 의사들과 정부가 인종말살정책으로 에이즈 바이러스(HIV)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2013년 유행했던 신종인플루엔자(H1N1)의 경우 제약회사가 타미플루약을 팔기 위해 퍼트린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가장 최근에는 에볼라에 의한 공포심이 많은 억측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메르스에 대한 정확한 정보제공을 하지 않은 보건복지부의 잘못된 대응과 일부 정치인이 공포를 유발하는 발언으로 힘을 모아 침착하게 대응해야 할 마음을 없애버렸다.

전문가 단체의 도움을 받아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처를 했던 사스(SARS) 때와는 달리 정부담당자의 부실한 대응과 감염병에 취약한 의료시스템, 간병 문화 그리고 성숙하지 못한 시민의식이 피해를 더 키웠다. 

메르스가 주로 병원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지레 겁을 먹은 사람들은 병원 가는 것을 꺼리고 있으며, 일상적인 생활마저 위축시켜 경제가 마비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의료인 자녀들의 등교를 거부하는 과잉대응을 일으켰으며, 국민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한 상술과 비과학적인 민간요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감염병이 창궐할 때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을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은 "심리학에서 시작해서 수학을 거쳐 의학으로 끝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고, 고쳐나가야 한다는 데에 국민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지나친 공포심에 사로잡혀 비교육적인 처신을 한 교육기관과 정치인들의 경솔한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신뢰받는 정부의 위기대응 매뉴얼, 그리고 국민이 안심하고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시스템이 필요하다.

메르스의 최일선 전장에서 병과 싸우며,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켜야 할 의사들이 국민을 위해 잘못된 제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대한민국 의료시스템과 행정시스템에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 다시는 국민의 건강이 위협받지 않도록 잘못된 의료제도와 체계를 바로잡는 일은 대한민국 의사들에게 맡겨진 시대적 사명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