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전화 한 통...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메르스 전화 한 통...네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5.06.2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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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상담 자원봉사자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대한 단상
▲ 황건 인하의대 교수(인하대병원 성형외과)

바로 전날 학회를 다녀와 몹시 고단했지만 메르스 교육 안내 문자를 보고 현충일 이른 아침부터 의협에 갔다. 개원의인 아내와 팔순을 넘긴 어머니도 염려됐고 무엇보다 내 자신부터 계몽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전문상담위원 위촉장을 받은 것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이재갑 교수의 강의를 듣고 열띤 질문과 답변을 유인물 여백에 받아 적어 나오는데 현관에서 수강자들에게 주는 의협회장 명의의 위촉장을 나눠주었다. 다음날 아침 의협에서 연락이 왔다.

교육을 받고 위촉된 의사 중에서 국민이나 자택 격리자를 대상으로 메르스에 대한 전화 상담을 해줄 자원봉사자를 신청 받는다고 했다.

작년에 발표한 논문 생각이 났다. 의전원생 50명을 대상으로 '치사율 높은 전염병이 확산된 지역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질병의 현장이나 밖에서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은 모두 같았다. 36%의 학생은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의식 때문에 그 지역에 기꺼이 들어가겠다고 답했고, 나머지 64%는 그 지역에서 현실적으로 자신이 할 일이 없을 것이며, 가족 때문에 현장에 들어가지는 못하겠지만 밖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겠노라고 했다.

바로 자원봉사 신청을 했다. 학생들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았다.

상담전화에 불이 났으나, 대부분은 의협 직원이 해결하고 꼭 의사와 이야기하겠다는 전화들만 내게 연결됐다. 그 중 하나가 송곳처럼 내 등을 찔렀다.

나보다 조금 나이가 더 든 음성의 여성이었다. 완치자의 동의를 받아 혈액에서 항체를 뽑아 환자에게 주면 좋으리라는 의견이었다. 에볼라 사태 때 어떤 미국의 의사가 그 치료로 효과를 보았다는 보도가 기억난다고 했다.

나는 완치자의 혈액에서 항체를 뽑아 환자에게 적용하려면 임상실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인해야 하니 시간이 걸릴 것이며, 바로 적용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녀는 간곡하게 메르스에 걸린 '그 의사'가 위독한 상태인데 빠른 시간 안에 '그 의사'와 또 만삭의 메르스 '임산부'에게 만이라도 투여될 수 있도록 제발 의협에 건의해 달라고 청했다. 하도 간절하게 부탁하기에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점심시간에 골수이식 전문인 혈액종양내과 교수에게 이에 대한 가능성을 물었다. 골수이식 공급자의 항체역가가 높은 경우, 이식 후에 B형 간염 항원이 없어진 사례를 경험했다고 했다. 다만, 이번 경우에도 공급자의 항체역가가 높아야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곧바로 의협 메르스 대응센터에 이 내용을 전달했고, 실제로 다음날 혈청치료를 계획 중이라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그러나 며칠 후 혈청치료에도 환자 상태가 크게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올 석탄일 오현스님의 법문이 생각났다.

유마거사가 병에 걸려 석가세존은 문수보살에게 병문안을 보냈다. 문수보살이 "이 병은 무슨 원인으로 생긴 것입니까?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습니까?" 묻자 유마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병이 들었기 때문에 나도 또한 병이 들었습니다(一切衆生病 是故我病). 만약 중생의 병이 나으면 나의 병도 나을 것입니다."

나의 가족이 병에 시달려 사경을 헤맨다면 내 마음이 몹시 아플 것이며 내가 대신 앓고 싶을 것이다. 전화를 건 여성과 '그 의사'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그 음성에서 "그 의사가 아프니 나도 아프다"는 그녀의 애절한 마음이 느껴졌다. 함께 아픈 것은 나와 내 가족이 그리고 그녀와 '그 의사'가 서로 둘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위해 일하며, 그러다보니 병도 옮을 수 있다. 환자들에게 병이 없어야 의사에게도 병이 없어진다. 환자에게 생사가 있고 병이 있는 한 의사도 저 유마거사와 같이 병들 것이다.

오늘도 출근해 마스크를 쓰고 외래진료실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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