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가루 소식에 달뜬 가슴 기다림으로 채우며…
꽃가루 소식에 달뜬 가슴 기다림으로 채우며…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5.06.12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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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꽃가루 알레르기 도감> 펴낸 홍천수 연세대 명예교수

알레르기 학자로 지낸온지 34년. 노교수는 꽃가루를 찾아 이 산 저 산, 이 들판 저 계곡을 헤맸다. 고대하던 꽃가루 소식이 들릴 때면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카메라 메고 짐싸들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렇게 5년여의 시간을 보냈다.

홍천수 연세대 명예교수가 <한국 꽃가루 알레르기 도감>을 펴냈다.

이 책에는 나무 17과 35속 71종, 목초 3과 25속 31종, 잡초 7과 16속 31종 등 모두 27과 76속 133종의 꽃피는 모습과 울창할 때의 모습, 잎·줄기·열매 등의 생태 사진을 담고 있으며, 꽃가루 광학현미경 사진 112종과 주사전자현미경(SEM) 사진 71종이 실려 있다. '취미삼아 재미삼아' 했다지만 그의 역정은 아주 특별한 결과물로 찾아왔다.

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1981년 일본 독꾜(獨協)대학 연수중에 어린 돼지풀을 접하면서 시작된 꽃가루와의 인연은 이렇게 갈무리됐다.

"알레르기를 전공하게 되면서 오래전부터 꽃가루에 대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외국 서적이 주류이다보니 우리 땅에서 나는 꽃가루에 대한 책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고…. 사실 대학 정년퇴임 전에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조금 늦어졌습니다. 이 책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꽃가루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나는 것들을 중심으로 엮었습니다. 알레르기를 연구하는 선생님들이나 환자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다. 나무·목초·잡초 별로 식물 종을 알기 위해 분류를 공부해야 하고, 원하는 품종이 어디에 있는지, 꽃피는 시기는 언제인지 알아야 하고 꽃가루 채집까지 해야 한다.

"마음은 앞섰지만 결과는 늘 기다림을 필요로 했습니다. 여러 종류의 꽃이 피는 4~6월은 무척 바쁘게 지냈습니다. 원하는 종이 있는 장소를 수소문해서 확인하고, 사진 촬영하고, 꽃가루 채집까지…. 한 종 당 최소 2년이 걸렸고 수 년 째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종도 여럿입니다."

사진 작업 역시 그의 몫이다. 도감에 수록된 모든 사진을 직접 찍었다. 책을 펼치면 그대로 '작품'이다. 

▲ 소나무, 2013년 7월 13일, 영월군 중동면 솔고개에서 홍 교수가 직접 촬영했다.

"혼자서 사진촬영에 대해 공부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자연히 작업 진척도 더뎠습니다. 그러다가 윤기승 사진작가의 도움으로 나무 촬영법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았지만 윤 작가의 개인교습을 받으면서 결과물을 얻게 되고 속도와 체계가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꽃가루 알레르기의 원인에 느티나무도 관여할 수 있다는 연관성을 찾은 것이다.

"지금까지는 관심을 깊게 갖지 않았던 느티나무도 꽃가루병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느티나무는 느릅나무과에 속하며 서울에서는 4월 하순에 꽃이 핍니다. 풍매화로 꽃가루의 양이 많고, 느릅나무 꽃가루와 비슷합니다. 느티나무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 있었고, 마을마다 자주 볼 수 있는 나무인데도 꽃가루병과 관련해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닥나무 꽃가루가 보고돼 알레르기 환자의 10% 이상이 양성반응을 보였고, 곤충들이 꽃가루를 옮기는 충매화인 밤나무는 알레르기가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프랑스에서 보고되고 있습니다. 선입관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잘 알려져 있고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그동안 외면했던 수종들을 살폈습니다."

아직 국내에 서식하는 목초 꽃가루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의 아쉬움이 더해진다.

"외국에서는 초지를 조성해서 재배하고 꽃가루를 채취해 규명하고 있습니다. 국내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목초 종은 많은데 집단으로 서식하는 것이 없어서 찾기 어렵습니다. 강아지풀 등 우리나라에만 특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추정되는 목초에 대해서는 후학들이 연구가 이어졌으면 합니다. 잡초에 속하는 도꼬마리도 한강 둔치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알레르기 검사 시약에 포함돼 있지 않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들국화도 알레르기 피부 시험에 사용하는 종(프랑스국화)과는 다릅니다. 식물 생태에 대해 세밀한 조사가 필요합니다."

책 말미에는 세계 각 국의 꽃가루병 주요 원인을 소개하고 있다. 나라마다 차이가 있고, 우리나라 꽃가루와 어떤 상관성이 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중·일 등 동아시아를 제외한 나라들에서는 꽃가루병 원인으로 벼과 꽃가루가 제일 중요합니다. 중동지역은 mesquite·명아주-비름·Russian thistle, 지중해지역은 올리브나무와 쐐기풀·개물통이속, 아르헨티나는 쥐똥나무가 중요한 알레르겐입니다. 이제 우리 국민도 세계 어디든 오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대륙에 따라, 또는 나라와 지역별로 꽃가루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식물의 종류에 제법 차이가 있습니다. 여행 때 참고할만 합니다."

환경이 변하면서 알레르기의 양상도 변해간다. 사람도, 나무도, 풀도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보호하다 보니 새로운 알레르기를 만들어 낸다.

 
"과거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소나무 알레르기도 미국에서 보고됐습니다. 국내 연구자료에서도 10년 간격으로 30년동안 비교한 자료가 있는데 알레르기 양성률이 높아졌습니다. 꽃가루 항원성이 변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기후변화나 대기오염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보여집니다. 항원성이 변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길 바랍니다. 옛날에 없던 알레르기가 분명히 새로 생기고 있습니다."

사실 힘만 들고 '표'가 안나는 일이다. 그런 가운데 도감 상재까지는 많은 이들의 덕을 입었다.

"막막할 때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윤기승 사진작가, 참나무 속 분류 박사인 박진희 경상대 교수, 국립수목원 박광우 과장·양형호 현장 전문가, 국립산림과학원 성주환 과장 등이 있었기에 모든 일이 가능했습니다. 이 분들을 통해 수많은 식물 종을 알게 됐고, 미지의 세계에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이와 함께 꽃가루 현미경 촬영을 도와준 연세의대 알레르기연구소 정경용 조교수와 주사전자현미경 사진을 촬영해 준 정동룡 기사장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기약없는 꽃가루 여정에 언제나 길동무가 돼준 평생의 반려자 김용순 아주대 명예교수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는 이름 없는 풀들을 마주하면 예의 충동이 인다. 수년간의 발품에도 아직 채 다가서지 못한 쐐기풀과 목초 꽃가루에도 마음을 접지 못한다. 빛이 없는 곳에서 한 걸음씩 떼며 그가 옮겨온 흔적과 지나온 시간이 있다. 그 흔적과 시간은 이제 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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