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20년 전 그 산모는 어떻게 됐을까?
청진기 20년 전 그 산모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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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5.26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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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연 교수(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 최규연 교수(순천향의대 교수·순천향대서울병원 산부인과)

정확히 20년 전 어느 화창한 봄날, 전공의를 마치고 전임의사로 근무한지 한 달 정도 지난 때였다. 주말과 휴일이 겹친 연휴 당직을 서면서 어서 빨리 당직 근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3일 연휴 중 마지막 날 저녁 한밤중에 걸려온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전화를 받는다.

개인병원에서 분만 후 자궁이완증으로 출혈이 멈추지 않아 대학병원으로 산모를 전원한다는 연락을 받고, 잠이 확 깨서 뛰어나간다. 분만실에 도착하자마자 산모의 혈압·맥박이 안 잡힐 정도로 위급한 상황임을 파악하고 곧바로 수술실로 옮긴다.

수술실 앞에 둘러서 있는 여러명의 보호자에게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산모가 사망할 수 있다는 설명과 자궁을 들어내야 한다는 설명, 그래도 산모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는 설명을 한다. 겉으로는 차분하게 설명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과연 이 수술을 내가 혼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두려움으로 요동치는 심장박동소리가 내 귀에도 들릴 정도이다.

산모를 수술실로 옮긴 후 교수님들께 전화한다. 네 번째 전화만에 교수님 한분이 전화를 받으신다. 이런저런 산모 상태를 설명하니, 위급한 상황임을 직감하셨는지 걱정하지 말고 먼저 개복을 하고 있으라고 하시고는 20분 안에 도착할수 있다고 하신다.

마취 중 산모의 활력징후가 잡히지 않아 분주한 마취과 의사의 모습을 보면서 눈앞이 캄캄해진다. 개복을 하고 온통 복강이 피로 가득 찬 것을 보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자 어떻게 할까? 지난 4년 동안 배운 모든 경험을 떠올리려 애쓴다. 손이 자동적으로 움직이면서 자궁적출술을 시작한다.

문이 열리고 교수님이 구세주처럼 들어오셔서는 긴장속에서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수술에 집중하고 있는 나를 안심시킨다. 그렇게 2시간여가 지났나 보다. 그 많던 혈액을 모두 제거하고 수술시야가 깨끗해지면서 산모의 활력징후가 안정화 되고 있다는 마취과 의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안도감이 밀려온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산모의 상태가 안정된 것을 확인한 후 중환자실로 산모를 옮기고 보호자에게 설명한다. 전공의 선생님들과 교대로 아침일과가 시작될 때까지 산모 상태를 확인하고 모든 징후들이 문제가 없다는 확신이 든 후에야 당직실로 들어가서 잠깐 눈을 붙인다.

20년 후인 2015년 5월 봄날, '후진국만도 못한 강원도 산모사망률, 우리가 여기까지 왔나'라는 신문 사설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내용인 즉, 2013년 산모사망률이 10만 명당 27.3명을 기록했다고 한다. 강원도만 떼어놓고 보면 40년 전인 1970년대 우리나라 전체 모성 사망비와 맞먹고, 이란(23명)이나 카자흐스탄(26명)보다도 열악한 수준이라는 통계도 제시하고 있다.

전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 출산율은 한국사회에 북한 핵폭탄보다 더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한다. 출산 의료 인프라에 비상등이 켜진 것은 오래전이며 정말 큰일이니 당장 전국 보건소에 분만 시설과 의료진을 확충하고 소규모 지역 산부인과와 대학병원 간 분만 인프라 연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내용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 나라의 보건수준을 나타내는 모성사망률이 올라가고 있다. 이는 오래전부터 출산율 저하, 산부인과 의원의 감소, 분만하는 의사들의 전업, 산부인과 전공의 지원기피 현상 등이 맞물려 생긴 복잡한 결과물로 사설에서 밝힌 전국 보건소에 분만 시설과 의료진을 확충한다고 해결이 되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20년 전 일을 되새겨 본다. 그때 개인 산부인과의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제때에 산모를 보내지 못했다면, 가까운 곳에 대학병원이 없어 몇 시간 동안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면, 오랜 시간 동안 산과 전문의로서의 연륜과 경험이 있는 숙련된 교수님이 없었다면, 위급한 산모를 곧바로 확인하고 수술을 결정한 전공의와 휴일에도 당직을 서고 있던 젊은 전임의사가 없었다면 그 산모는 어떻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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