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진정성' 시대변화 반영 공감 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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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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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윤리 지침과 면허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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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진정성' 시대변화 반영 공감 도출

▲ 한 재 진(이화의대 교수)

20여 년 전, 호주로 연수를 갔을 때 의사면허증과 관련해 느낀 점이 있었다.

당시 현지 의사 면허를 받기 위한 면담을 하려고 심사장에 갔었는데 세계 각국의 의사들이 갖고 온 자국의 의사면허증들이 눈에 띄었고 일반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선진국과 비교해 후진국에서 온 의사들의 면허증은 크기가 크고 많이 화려했던 것이 흥미로웠다.

필자가 들고 있던 한국의 의사면허증은 딱 중간 인 것 같아서 우리나라가 중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다.

그럼 한참 발전했다고 하는 이 시점에서, 한국의 의사면허와 관련된 제도는 어디쯤에 있다고 해야 할까?

비약적인 발전을 보인 의생명 분야의 학술, 의료 및 산업 수준, 27년의 시행 경험이 축적된 전국민의료보험제도 등의 자랑(?)거리 뒤 안에는, 국가의료복지 정체성의 혼란에 기인한 현실과 제도의 균열을 해결하지 못하고 지금껏 끌어오면서 곪아터진 많은 현안들이 의사 사회의 미래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이는 결국 필연적으로 환자와 국민에게 동일한 어두움을 드리우게 한다.

그러한 가운데 의사나 의료 행위의 윤리에 관련한 이슈들이 부쩍 부각되고 있는 작금의 사태는 사회 분열적 취향의 정치적 의도에 휘말리면서 의사 사회가 우왕좌왕하다가 매년 수 백 건의 면허정지 결정이 행정당국에 의해 내려지고 있는 형편이다.

과연 한국의 의사들의 윤리 수준은 어느 정도인 것인가? 이는 한국의 의사면허제도와 관계가 있을까? 의료법에 덕지덕지 첨부되고 있는 각종 윤리 관련 규정들은 한국 의료 체계의 후진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한국 의료체계 후진성 노정

면허제도는 근대 전문직업인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전문인 집단의 양성과 활동에 대한 계약적 사회규약에 의해 독점적 지위와 직업 행위를 보장하는 제도이다.

의사면허제도의 경우에도, 의학지식이나 기술 등의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의료 행위를 할 경우에는 사회적으로 해악을 끼친다는 사회 구성원의 공통된 인식에서 출발했으며, 현재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소정의 기준을 통과해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만이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이러한 의사자격의 기준에는 당연히 윤리의 내용이 포함되는데, 의사의 전문직업성에는 윤리 법규의 수준을 넘는 정직·성실·청렴·고결함·이타성 등의 덕목들을 지향하는 본질적 전통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회는 현실적으로 의사의 의료 행위의 윤리 기준에 대해 구체적인 지침이나 규범을 요구하며, 이의 적용을 통해 의사직에 부여된 특권의 남용을 제어할 장치를 마련하려고 한다.

세계의사회나 선진국의 의사전문직업성 관련 기구나 단체들이 의료윤리지침을 제정하고 이를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데 선진국일수록 의사 사회의 자율적인 적용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대한의사협회를 중심으로 그동안 의사윤리강령(1997년)·의사윤리지침(2001년)·의사윤리강령 개정통합(2006년) 등이 만들어지고 공표가 돼왔으나, 그 원인이 어디에 있건 간에 활용이 잘 안 되고 있는 점과 의료 전문성이 배제된 채로 국가의사면허 제도를 쥐고 있는 행정당국이 의료법의 윤리 관련 조항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타율규제 위주의 현재의 상황은 한국 의료윤리 관련 체계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타율 규제 위주 벗어나야

한편, 의사면허는 크게 면허자격 부여 측면과 면허관리의 측면이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의사의 전문직업성을 자율적으로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면허 부여와 관리에 관한 다양한 제도를 만들고 의사 등 의료전문가가 주도하는 공공 기구를 통해 각 국가의 환경에 적절한 방안들을 개발해 시행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초기의 면허제도 틀에서 그다지 앞으로 나가지 못한 채로 면허자격 부여 측면은 일회성의 국가면허시험으로 평생 의사로서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고 있으며, 면허의 관리 측면은 그동안 의사전문직의 자율적인 규제의 전통을 마련하지 못 한 원인도 있으나, 의료법 내에서 ▲결격사유(8조) ▲신고의무(25조) ▲면허취소와 재교부(65조) ▲자격정지등(66조) 과징금 처분(67조) ▲벌칙(87조) 등의 조항과 ▲진료거부 금지(15조) ▲진단서(17조) ▲처방전(18조) ▲비밀누설금지(19조) ▲의료광고금지(56조) 등의 세세한 조항들을 교차 적용하는 징벌적 체계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의료법에 기술된 '필요한 경우 관계전문가의 의견을 들어 결정할 수 있다(66조)', 혹은 '중앙회 윤리위원회의 심의 의결을 거쳐 보건복지부장관에게 자격정지 처분을 요구할 수 있다(62조의2)' 정도의 항목이 타율규제 위주의 한국의 의료윤리 적용 체계에 자율성의 불씨를 겨우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한국의 의료윤리체계와 면허제도 모두의 후진성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도 현행 체계와 제도를 그대로 놓고 의료법을 행정당국이 합리적으로 적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이나 의-정 구조 상 그 실효성에서 연목구어(緣木求魚)이다.

다양한 면허관리 제도 구축 필요

일차적으로는 의사 사회가 자율적으로 만들어 사회에 공표하는 의료윤리지침의 내용과 진정성이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할 수 있으면서 의료법을 선도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다듬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의료윤리지침을 적용할 수 있는 의사 사회의 자율기구가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이해당사자가 협력해야 한다.

이러한 자율성의 제고에 면허제도는 좋은 수단이므로 우리 실정에 맞고 세계화에 따른 의사면허 상호인정 국제협약 등의 체결이 가능할 수 있을 정도의 선진적이고 다양한 면허 관리 제도를 구축하고 이를 실행할 여건을 만들도록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면허 종류의 선진화는 국가 의료체계의 현실과 발전 방향을 반영해 개별진료 면허, 전문진료 면허, 조건부 면허, 제한진료 면허 등 다양화·구체화를 들 수 있으며, 면허 관리는 평생직업전문성개발(Continuing Professional Development)과 맞물린 정기적인 자격 심사나 등록 등을 통한 면허 유지 체계 수립 및 다양한 자율 규제 방안 마련 등을 통해 선진화 할 수 있다.

이러한 면허제도 선진화의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실행을 위해서는 의사와 민간 및 정부가 모두 참여하는 공공성을 가진 기구를 설립해 운영하는 것이 사회의료체계의 유럽(영국 혹은 캐나다)이나 자유시장체계의 미국을 막론하고 공히 자율규제 선진국의 역사를 볼 때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이는데, 그 재원이나 부가 가치에 대한 연구와 공감대 확산을 위한 노력은 당장 시작해도 이른 것이 아닐 것이다.

미래의 한국 의사들을 더 이상 녹슨 닻과 누더기 돛에 의지해 풍랑에 맞서게 하지 말고 현실에 잘 부합하는 의료윤리지침을 마련하고 자율규제의 합리적이고 실질적인 성과를 천명하며, 선진 면허관리 제도를 장착해 세계 의료 환경에서 앞서 나갈 수 있도록 의사 사회 내부에서부터 노력해 볼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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