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대한의사협회 106년…아직 충분하지 않은 시간
청진기 대한의사협회 106년…아직 충분하지 않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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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1.1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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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 홍성수(연세이비인후과 의원)

167년 역사인 미국의사협회(AMA)는 1847년 '의과학과 의학 기량의 발전 그리고 공공보건 증진'을 사명으로 천명하며 '자율적으로' 필라델피아에서 결성됐다(최초의 주 의사협회는 1766년 뉴저지 주에서 조직됐다).

결성과 동시에 기본적 의학교육 및 의사 자격에 대한 표준을 제시했고, 특히 의료 윤리 지침을 책자로 발간한 것이 눈에 띈다. 현재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창립 이후 2012년까지의 사명 실천과 관련해 의미 있고 굵직한 사건과 성과, 그리고 주요 인물의 업적을 일목요연한 연표(History Timeline)로 만들어 보여준다.

이제 창립 106년을 맞이하는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의 연혁에는 어떤 사건과 성취와 업적으로 채워져 있을까 궁금했다. 무미건조하고 가치중립적인 사실들이 나열돼 있다.

일반인은커녕 31년 동안 의사요 23년 동안 개원의인 필자가 읽어봐도 우리 협회의 역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흐름과 교훈을 배우고, 우리나라 의료와 국민 건강의 파수꾼으로서 어떤 자랑스러운 활약을 했으며 무슨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의 미래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아리송하다.

1999년 11월 30일 장충체육관, 협회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에서 구름같이 모여든 의사들이 어깨 띠를 두르고 의약분업 반대 궐기대회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충격이었으며, '대한의사협회가 나와 상관이 있구나'라는 자각의 계기였다.

개인적으로 지난 15년 동안 이런저런 직책을 수행하면서 협회와 한국 의사 사회에 대해 각인된 몇 개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준비 안 된 의약분업' 강행 이후, 위기와 탄압과 분열과 고난과 좌절로 점철된 현재진행형인 격동의 시절을 가로지르며 마찬가지로 '전혀 준비가 안 된' 의료계가 겪어야 했던 부정적인 단면들이다.

하나, 경기도의사회 주최 토론회에서 모 지역 의사회 회장이 발언을 하자마자 같은 지역 의사회 총무가 이어 발언하기를 "지금 회장님이 하신 이야기는 회장님 개인 생각이고 우리 지역 회원들의 생각은 전혀 다릅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둘, 의협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한 회원이 발언하는 도중인데도 다른 회원이 발언권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이어 발언을 하는데 앞서 발언한 내용과 똑 같았다.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같은 내용이라도 기어코 내가 발언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다.

셋, 대의원 총회 회의 진행의 아수라장과 비효율은 그 자리에 앉아 있다는 자체가 곤혹스러웠고 취재하는 기자들의 눈빛이라도 마주 치면 너무나 창피했다.

넷, 업적이나 성과에 대한 자화자찬이나 '내 덕이네, 네 탓이네'하며 이전투구하는 모습들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섯, 회무 비리나 권한 남용을 들여다 보면 위임된 권한의 의미와 그 무거움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섯, 일부 지도자들의 행태는 과연 동료 회원들이나 후배 의사들을 대표하고 의료계의 미래를 걱정하며 멸사봉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 하찮은 감투욕심, 권력지향이나 일신 영달인지 안타깝다.

일곱, 장기적인 회무 연속성이 없이 이전 집행부와의 단절이나 전면 부인으로 인한 막대한 시간과 노력과 비용의 낭비는 물론 업무 추진력의 저하. 그리고 여덟, 세대와 지역 그리고 직역의 이해상관에 따라 이합집산, 각자도생하며 실리를 위해 명분을 잃는 일들은 또 어떠한가?

다시 미국 의료의 생존경쟁, 자기반성, 뼈를 깎는 자율성 그리고 치열한 전문성 성취의 300여 년 역사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1700년대의 미국 의사는 돌팔이나 야바위들과의 생존 경쟁만으로도 허덕이고 위태롭던 미미한 존재였다.

하지만 사명과 전망을 갖추고 1800년대 중반부터 의사의 사회적 역할과 어떻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국민 건강에 득이 되는 제도인지 꾸준하게 사회를 설득했고, 자발적으로 윤리적 책무를 받아들이며 1900년대 초반 이후에야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자율과 신뢰와 존경과 선망의 대상으로 거듭났다.

사회적 합의라는 측면에서는 영국 의료의 역사가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원래부터 혹은 하루 아침에 이룬 성과가 아니다.

어쩌면 대한의사협회의 진정한 역사는 지난 14년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렇다면 미국이나 영국의 300여 년에 비해서 106년은 무엇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일 수 있다.

그 동안 어찌 공적은 하나도 없고 과오만 있었겠는가? 어찌 최고 인재들의 집단인 의사 사회가 이대로 주저 앉겠는가? 더 긴 시간이 필요하며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한 반성과 다짐이 어디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조용히 쌓여가고 있을 것이라 굳게 믿는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과거로부터의 맥락을 짚어내고 현재에 대한 정확한 상황 인식의 토대 위에서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의료의 장기적이고 본질적인 사명과 전망(mission·vision)을 마련하고, 정교하고 뚝심 있는 전략(strategy)을 갖추는 일이어야 한다.

확고부동한 사명과 전망이 마련돼야 회원들이 공감을 하고 참여를 할 것이며, 사회를 설득할 수 있고, 정부와 협상을 하고, 필요하다면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라는 명분을 위해 결사적인 투쟁도 가능할 것이다. 너무 순진하다 할지 모르지만, '그나마 준다고 할 때 받아 먹자'는 명분 없는 실리는 잠시 주린 배를 채워 줄 지 몰라도 언젠가는 치명적인 독으로 되돌아 올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창립 106주년을 축하 드립니다. 아울러 지금도 불철주야 의료계 현안 해결과 건전한 대한민국 의료의 지속발전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시는 대한의사협회 추무진 회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세대, 직역, 지역에서 활약하시는 모든 분들께 존경과 성원의 말씀을 드리고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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