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7 13:15 (토)
진료행위냐, 성희롱이냐...'설명' 이 핵심

진료행위냐, 성희롱이냐...'설명' 이 핵심

  • 고신정 기자 ksj8855@doctorsnews.co.kr
  • 승인 2014.05.07 05:58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슈] 차별시정기관, 진료실 성희롱 진정 처리 현황 분석
진료 연관성, 판단결과 좌우...설명 부족이 분쟁 '주원인'

국가인권위원회가 진료실 내 성희롱 예방을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 계획을 밝히면서, 진료실 내 성희롱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이라 함은 특정한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해 다른사람에게 성적 굴욕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통칭되는데, 워낙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에 기대다 보니 성희롱 여부를 따지는 것이 쉽지는 않다.  

특히 의료분야의 경우, 타 분야에 비해 그 경계를 명확히 확정지을 수 없는 '그레이 존'이 넓다. 의료행위의 특성상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기 위해서는 문진과 청진·촉진 등 '환자와의 접촉'이 불가피한데, 이 접촉들이 종종 성희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진료실 내에서 발생하는 '그레이 존' 어떻게 봐야할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판단하는 기준이 워낙 주관적이다보니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현재까지의 결정례로 살펴본다면, 진료실 내 성희롱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 키는 '진료행위와의 연관성'과 '설명의 유무'가 쥐고 있다.

#1. 유방초음파검사 도중 레지던트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남녀차별개선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사례.

-A씨는 B병원에서 6월 자궁적출술을 받았고, 이후 유방 종양이 발견되어 12월 상태를 보기 위해 유방초음파검사를 받게됐고, 검사 도중 추가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지 의문스러워 상황을 물었는데, 검사를 진행한 레지던트가 "아래도 수술한 사람이 위도 하고 싶으냐"고 말해 불쾌감을 느꼈다고 진술함. 이후 해당 레지던트가 검사를 계속 진행하며 부모들의 과잉 교육열에 대한 환자의 의견을 물었는데,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자 "너무 황홀해서 그러시냐"고 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고발.

남녀차별개선위원회, 진정 인용. 병원에 100만원의 손해배상 및 성희롱 재발방지대책 수립·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권고.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1999~2013년까지 차별시정기구에 진정된 진료실 성희롱 사례를 분석한 결과, 분석대상 사건 45건 가운데 성희롱 진정이 '인용'된 사례는 위에 언급한 1건이다.

당시 레지던트는 자궁 등 민감한 부위를 지칭할 경우 환자에 따라 '위쪽' '아래쪽'으로 표현키도 하며 "너무 황홀해서 그러시냐"는 발언은 한 사실이 없다고 맞섰지만, 남녀차별개선위원회는 초음파검사실에 장기근무한 방사선사의 진술 등을 인용해 위, 아래 등의 표현이 상용화되어 있다고 보기 어려워, 부적절한 언어사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황홀" 발언과 관련해서도 레지던트가 부인하고 있기는 하나, 환자가 병원이나 해당 레지던트에 대해 특별한 무고사유가 없고, 환자가 사건 이후 병원 고객상담실과 해당 레지던트·지도교수와의 통화에서도 일관되게 해당 언동을 문제삼은 정황상 거짓으로 보기 어려우며, 해당 언동이 환자가 여성으로 수치심을 느끼기에 충분했다며 성희롱으로 인정했다.

진료행위와 무관한 '부적절한 발언'들도, 성희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분석대상 45건 가운데 9건은 합의 또는 조정으로 사건이 종결됐는데, 이 가운데는 한방병원 운동치료사가 허리 치료 도중 진료와 상관없는 '성적 발언'을 한 사례 등도 포함됐다. 합의·조정 건들에 대해서는 피진정인이 성희롱을 인정하고 사과하거나 위자료를 지급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등의 후속조치들이 이뤄졌다.

#2. 내과 신우염 진료과정에서 성희롱을 당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사례.

-B씨는 내과 신우염 진료를 받던 과정에서 의사가 갑작스레 속옷과 상의를 들어올리고, 본인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어 불쾌감을 느꼈다고 진술함. 이에 B씨는 "가슴을 왜 만지느냐"고 의사에게 항의했고, 의사는 "진료를 하는 것이다. 혹시 거부감을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했으나, B씨는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진정을 제기함.

국가인권위원회, 진정 기각.
<슈왈츠임상진단학>에 적힌 청진방법에 의한 것으로, 본래의 진료 목적이나 범위를 벗어난 방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 환자에 대한 배려조치가 미흡했고, 이를 개선할 필요성은 있으나, 배려가 부족했다고 해 이를 성희롱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봄.

반면 분석대상 45건 가운데 15건은 기각처리 됐는데, 이들 대부분은 '그레이 존'에 속했던 해당 행위가 진료 목적에 따른 정상 의료 행위의 범주 내에 있음이 인정된 경우다.

위에 언급한 사례 외에도 ▲목감기로 내과를 내원했다, 의사가 속옷까지 들어올려 가슴이 노출되었고 청진기를 대지 않아도 될 부분까지 청진기를 대어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는 진정 ▲겨드랑이 멍울을 진료받던 중 의사가 가슴을 여러차례 더듬어 성적 굴욕감을 느꼈다는 진정에 대해서도 국가인권위원회는 진료의 연장선으로, 성적 함의를 가지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각각 기각을 결정했다.

다만 국가인권위원회는 이들 행위에 있어, 의료인의 설명이 부족했다는 점은 공통적인 문제로 지적했다. 해당 진정들을 성희롱으로 결론 지을수는 없지만, 환자에 대한 의료진들의 배려 부족이 '성희롱 논란'을 부르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실제 인권위 등은 각각의 결정문에서 "진료시 간호사 등 진료보조자를 동석하게 하고, 환자가 민감하게 여길 수 있는 신체 부위를 진료할 때는 진료행위의 필요성이나 진료 방법 등을 자세히 설명하는 등 좀 더 환자를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여러차례 강조했다.

인권위의 의뢰를 받아 진료과정 성희롱 실태조사를 진행했던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또한 같은 의견을 냈다.

김정혜 공감 객원연구원은 "진료에 필요함에도 환자가 성적 수치심을 호소하는 것은 환자를 진료의 객체로만 보는 의료진의 태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면서 "환자에게 해당 진료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환자의 동의를 구한다면 회피할 수 있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분석대상 45건 가운데 20건은 피해자가 조사를 원치 않았다거나,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거나, 성적 함의가 없어 성희롱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는 이유 등으로 각하 처리됐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