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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행복의 역습

행복의 역습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4.04.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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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널드 W. 드워킨 지음/박한선 외 옮김/도서출판 아로파 펴냄/1만 5000원

 
행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어느새 잠식당해버린 행복과잉 상황은 행복강박증을 부르고 인공행복에 노출된 자신을 발견한다.

인공행복은 정신작용약물(향정신성약물)·대체의학·강박적 운동 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복을 의미한다. 결국 우리의 미래는 인공행복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가 되지 않을까.

마취과 의사이면서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로널드 W. 드워킨이 쓴 <행복의 역습>이 출간됐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미래사회는 인공행복이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리고 인공행복에 둘러싸인 현재의 미국은 소마(soma)를 통해 유지되는 통제사회인 A. L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보다 더 심각한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확산되는 인공행복. 그 '행복한 아이들'은 자신의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삶의 고통과 불행에 대한 경험을 거세당하고, '행복한 성인'이 되고 '행복한 노인'에 이를 때까지, 죽음의 목전에 이를 때까지 인공행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모두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현재의 미국인의 인공행복 사례를 나열한다. 그 수는 '인공행복 미국인'이라는 계층을 형성할 만큰 엄청난 규모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어 미국의 의료혁명 과정을 서술하면서 어떤 과정을 통해 불행이 기술공학적 의료의 대상이 돼 가는지를 설명한다. 인공행복 확산을 초래한 미국의 의료혁명은 크게 세단계로 구분된다. 1차 의료혁명은 1960년대 후반 '불행은 질병'이라는 인식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이 때부터 불행과 슬픔은 신경전달물질의 문제로 규정되고 기술공학적 의료의 대상이 된다. 2차 의료혁명은 '행복하면 건강해진다'는 대체의학적 이데올로기에 기반한다. 1980년 후반 의사들이 너무 쉽게 정신작용약물을 처방하고 마치 기계를 다루듯 환자를 치료하는데 반발이 잇따르자, 일부 의사들이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대체의학적 기법을 적용하게 된다. 그러나 그 역시 영적인 영역을 다루는 의료가 돼 갔다. 3차 의료혁명은 '불행감은 운동요법으로 가장 잘 치료될 수 있다'는 운동요법의 등장이다. 엔돌핀 가설에 바탕은 둔 운동요법 이데올로기는 강박적 운동과 피트니스 문화에 근간한 인공행복으로 미국인을 끌어들인다.

다음 장에서는 질병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 영혼을 포함한 생애 전반을 관리하려는 미국의 관리의료체계가 인공행복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기제로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인공행복 확산 과정에서 발생한 종교계와 의료계의 주도권 싸움도 상세하게 짚어간다. 생명의 처음과 끝을 새롭게 정의하는 과정에서 종교계는 패배하게 되고, 더 이상 진화론을 부정할 수 없게 되면서 타협점인 유신론적 진화론을 내놓게 되는 상황을 설명한다. 결국 유신론적 진화론을 통한 과학과 종교의 평화적 공존을 기대한 종교계의 바람은 다시한번 참담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인공행복을 누리는 '행복한 미국인'은 전통적 생애주기를 파괴하고 '인공행복 라이프 사이클'에 젖어든다. 저자는 십대 우울증에 대한 약물치료가 확산되면서 아이들까지 '인공행복'에 끌어들이는 현실을 비판한다. 어려서부터 슬픔과 불안과 외로움이 약물에 통제당하면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되서도 인공행복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인다.

저자는 인공행복의 근본적인 문제는 삶과 행복의 무관계성이라고 말한다.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동네 헌책방에서 구한 신념과 철학에 대한 몇 권의 책을 통해서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역사의 종말>을 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약통 속에 행복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욕망 앞에서 진실한 삶의 목표와 의미는 이제 큰 위험에 처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로작이나 웰부트린과 같은 항우울제에 의해 인간의 영혼이 망가지는 것은 아닌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저자의 행복론은 현실적이다. 1년 내내 화창한 날씨만 계속되면 화창한 날씨가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실망과 슬픔과 고통도 조금은 곁들여져야 행복의 기쁨도 커지는게 아닐까?"라며 불행은 치료해야 할 질환이 아니라는 저자의 생각에 따른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박한선 성안드레아병원 정신과장은 저서 <정신병원 사용설명서>와 역서 <진화와 인간 행동>을 펴냈으며, 현재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정신장애의 신경인류학적 접근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02-501-0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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