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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허갑범교수

[인터뷰]허갑범교수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2.09.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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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전문대학원 신념, 국내 최고 당뇨 박사 명성

김대중 대통령의 주치의이자 국내 내비분학 개척에 열정을 바쳐온 송원 허갑범교수가 8월말로 정년퇴임, 제2의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깊게 파인 주름에 언제나 활짝 미소지으며, 기자들에게도 항상 자신의 소신을 당당히 강의(?)하시던 허 교수는 9월 중순에 신촌에 허내과를 개원, 당뇨환자들에 대해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와 다름없이 계속해서 진료하고 아울러 당뇨병에 대한 연구활동에도 매진할 생각이다.

“학생 강의를 제외하곤 환자진료와 임상연구는 계속하니 정년을 맞이했다기 보다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기차를 바꿔 타는 기분”이라며, 그러나 “내심 큰 기관의 울타리 밖으로 나가려니 우려되는 부분도 없지 않다”고 솔직히 속내를 털어놨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당뇨병의 명의인 만큼 정년을 앞두고 여러 기관에서 많은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모든 제의를 물리치고 개원의로서 새 인생을 설계하기로 결정했다.

“연세라는 주인없는 기관에서 마음의 부담없이 수십년을 지낸 터에 새삼 65세란 나이에 주인있는 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이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정기관에 매이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제약을 받을 것이란 판단이 섰습니다. 환자보는 일, 임상연구를 계속하는 일을 제약없이 하고 싶어 개원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여력이 닿는대로 모교 내분비학과와 연계해 연구측면에서도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클리닉 이름은 허내과 당뇨병클리닉. 21C 당뇨병·비만연구소도 원내에 함께 운영된다.

허 교수는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하고 58년 연세의대에 입학해 74년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군복무(69∼72년)와 프랑스 몽뻬리에 의대 당뇨병센터 연수기간을(75∼76년)를 제외하면 40여년을 연세의대의 울타리에서 생활한 셈이다.

고등학교 졸업때 법대와 의대 두 군데를 저울질하다 의대로 진로를 정한 허 교수는 “의사가 되려는 동기는 `불분명'했으나 자신의 적성과 꼭 맞았다”며 의사로서의 삶에 만족감을 표했다.

오늘날 당뇨병의 명의로서 내분비학에 천착하게 된 것은 스승 이상룡 교수의 이끌림에서 시작됐다. 이상룡 교수는 알레르기와 당뇨 등 내분비 전반을 도맡아 강의와 진료를 했으나 허 교수는 레지던트 3년과 군대복무를 마치고 72년부터 내분비학강의를 전담하면서 당뇨 쪽으로 지평을 넓혀갔다. 70년대와 비교하면 당뇨병은 10배쯤 증가했으며, 30세 이상 연령층에서는 10명중 1명이 당뇨병 환자일 만큼 심각한 성인병이 됐다. 더욱이 당뇨와 관련이 깊은 비만이 증가하면서 당뇨병에 대한 경계심은 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한다. 2001년부터 성인병예방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허 교수는 정년후 생기는 시간적 여유를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국내 성인병 예방사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한국인의 인슐린저항성 증후군, 한국인 당뇨병 맞춤치료등 당뇨 관련 연구를 지속하면서 97년 국내 의학계에서는 가장 권위있는 분쉬의학상(한국인 인슐린저항성 증후군) 수상자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허 교수가 언제나 긍지를 갖고 자랑하는 상은 82년 수상한 `올해의 교수상'. 연세의대 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표로 선출하는 `올해의 교수상'은 82년 첫 제정됐는데 허 교수는 부교수(45세) 때 첫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학생들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 이 상은 다른 어떤 상보다도 허 교수에게 귀중하게 남아있다.

허 교수는 의료계에서는 의학전문대학원 통으로 알려져 있다. 연세의대 의과대학장으로 재직하면서 허 교수는 “21C 세계의학의 주역이 될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려면 열린 교육을 바탕으로 다양화와 특성화 및 세계화를 위한 능동적인 의학교육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21세기가 요구하는 우수한 의과학자와 의학관련 인접 분야의 지도자를 육성·배출하기 위한 의학교육 개혁의 시급함을 설파해왔다. 국민의 정부들어 2001∼2002년 교육인적자원부의 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연구시안을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했다.

의학교육에 남다른 신념을 가졌던 허 교수답게 과거 국민소득 100달러 때의 의학교육은 이제 1 만달러 시대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환자만 진료하는 의사에서 이제는 의과학자를 양성하고, 환경의학, 법의학, 정책자 등 다양화시대에 맞게 의학의 퓨전 이펙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올해 처음으로 의과대학내에 과기부 기초의과학센터(MRC) 11곳이 선정되면서 관련 의학연구와 인재양성에 큰 기폭제 역할을 해 국내 의과학의 큰 도약이 기대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확정된 기초의학전공자들의 군특례가 MRC를 통해 실질적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데 이 과정에서 허 교수는 드러나지 않게 큰 역할을 수행했다. 대한의사협회, 의과대학장협의회, 기초의학교육협의회, 의학회 등에서 지난해 기초전공자 군특례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면서 허 교수는 이들 단체들이 공동으로 작성한 건의문을 직접 대통령에 전달, 이를 실현시킬 수 있게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의 끈은 9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지방자치제와 관련, 2주간 단식으로 탈진했을 때 주치의를 맡으면서 부터. 97년 대선때는 건강문제로 국정수행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자 `국정수행에 문제가 없다'는 검진소견서를 사실대로 써 준 것이 계기가 돼 98년부터 대통령 주치의를 맡았다. 허 교수 주변에서는 간혹 왜 권력(?)을 이용하지 못하느냐는 뒷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허 교수는 대통령 주치의를 맡으면서 “대통령 주치의는 대통령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며 그 직분을 벗어나지 말자”는 초심을 지켜왔다.

허 교수는 올 봄 개원을 결정하고 나서 대통령 주치의에 대한 사의표명을 했다. 개원의가 대통령 주치의를 맡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는 생각에서 사의표명을 했으나 청와대쪽에서는 계속해서 맡아 줄 것을 부탁했다. 지난 8월 20일 퇴임 기념강연회에서 청와대 박지원 비서실장이 직접 참석, 정년이 되더라도 계속해서 주치의로 활동해 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본분에 맡게 주치의가 아닌 자문의로서 대통령의 건강을 보살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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