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8 19:59 (일)
닥터스

닥터스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14.02.10 17:5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베른하르트 알브레히트 지음/한스미디어 펴냄/1만 5000원

 
의사들은 복종에 익숙하다. 다른 사람이 고안해낸 규정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직업이 의사 말고 또 있을까. 예비의사들은 의대생 시절부터 이런 지식을 무조건 암기한다. 이 방법 외에는 그 막대한 양을 익힐 수 없다. 의사가 된 이후에는 각종 규제와 제약 속에서 경제적 요구에도 순응해야 한다. 게다가 이제는 높아지는 환자의 요구에도 부응해야 한다.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관계는 갈수록 희미해진다. 세상에는 좋은 약과 훌륭한 치료법이 많고, 수천년간의 퍼즐조각을 맞춘결과로 갈무리된 대학에서 가르치는 정통의학의 진단과 치료법들은 분명 유의미한데도….

의사이면서 저널리스트인 베른하르트 알브레히트 독일 <슈테른>지 편집자가 쓴 <닥터스>가 우리말로 옮겨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즉흥적 영감으로 치료법을 선택하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이성이나 명백한 이치보다 직감을 더 믿었지만 정통의학의 토대를 완전히 무시하지 않은(저자의 표현으로는 '의학예술'을 한) 의사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들은 스스로 예술가 역할을 택했지만 대부분은 환자들에게 이끌려 자신이 알던 의학이 기본지식조차 무의미한 한계에 부딪혔다. 그들은 외롭게 한계점에 섰다. 결국 수천년 전 의사들이 했던 것처럼, 환자 옆에서 즉흥적으로 치료법을 발명해 내야 했다.

이 책에 소개된 9가지 사례는 의학이 아직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괴로워 한 의사들의 기록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의사들이 언제, 왜 불가능에 도전하는지, 그런 결정을 내리는데 환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노정한다. 저자는 병원자료와 치료과정을 꼼꼼히 살피고 치료법을 꼬치꼬치 점검하는 기관의 목소리도 담는 등 사례를 정확이 재구성한다. 이 책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고,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과 불확실한 의학 명제였지만 새로운 의학으로 규정되는 기적을 만날 수 있다.

모두 9가지로 소개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단순에 들이킨 오븐 세척제로 기도가 모두 녹아내린 인도청년. 의사 부부의 오랜 연구와 실험을 통해 기도 이식에 성공한 첫 환자가 되다) ▲21주 5일(21주 5일만에 태어난 조산아는 초콜릿 4개 반의 무게에 못 미치고 A4용지 보다 작다. 469곔 28㎝인 이 아이는 과연 살 수 있을까?) ▲통증(마리화나는 마약인가 통증완화제인가. 어떤 약으로도 효과가 없었던 만성통증증후군을 마리화나로 치료한 의사. 하지만 그는 독일 의료보험금고로부터 7786유로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한다) ▲새로 얻은 발(하이델베르크의 외과의사 벤츠는 100년전 한 독일 외과의사가 개발한 수술법으로 심각한 발 기형인 '만곡족'을 치료한다. 과거의 의술로 이뤄낸 눈부신 성과) ▲발작(정신분열·공포증·간질 등으로 진찰됐던 리디아 슈나이더는 병원을 찾은 후 4년 만에 진짜 병명이 'anti-NMDA 수용체 뇌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17도(혈중 알코올 농도 1.4, 체온 17도, 칼륨 수치 7.55, 의식불명, 현대의학은 과연 이 사람을 살려 낼 수 있을까) ▲격리(오른쪽 눈 밑의 빨간 점에서 시작한 피부병은 결국 얼굴 전체를 잠식했다. 세포가 괴사해 조직이 검게 변했으며 뺨에는 구멍이 났다. 20년이 넘는 치료는 그녀의 얼굴과 인생을 어떻게 바꿨을까) ▲직감(대장암 말기 환자에게 간 이식은 최고 위험, 희박한 성공률, 의학책 어디에도 없는 수술을 의미했다. 수석 외과의사 경험과 3년차 레지던트의 직감, 그리고 환자의 강한 의지가 기적을 이뤄냈다) ▲명성(급성 골수성 백혈병까지 걸린 에이즈 환자를 세계 최초로 치료한 의사. 그의 치료는 재발 없이 에이즈를 완치할 수 있을까)

이 책 속 모든 환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의사 손에 온전히 맡겼다. 그리고 의사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어 흔들리지 않는 결단을 내리고, 위험을 각오하며 일종의 원시적 믿음까지 품고 새로운 구원의 해답을 찾았다.

이 책을 감수한 김창휘 엠블아동병원장은 히포크라테스가 말한 "인생은 짧고, 의술은 길다. 기회는 흘러간다. 실험은 위험하고, 결정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이 보기에 올바른 일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환자와 보조자와 외적 요소들의 협조를 이끌어 낼 준비가 돼 있어야만 한다"는 구절을 되뇌이면서 "기원전 명문이 아직도 유효하다는 사실은 이 책 한 권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이것만으로도 마음에 주는 울림은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02-707-0337).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