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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부총리 "사무장 병원 합법화" 주장?

현오석 부총리 "사무장 병원 합법화" 주장?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4.01.22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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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 원장 시절 '의료서비스 장벽 완화' 보고서 눈길
"의료업으로 수익 얻을 권리, 일반 국민도 얻어야"

의료민영화 혹은 의료영리화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시민사회계의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 설립 허용은 의료민영화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반대측은 의료민영화가 맞다고 반박한다.

원격의료,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등 정부가 강행하는 일련의 정책들은 보건의료분야의 진입장벽 완화라는 큰 목표를 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과거 한국개발원(KDI)이 발표한 보고서 한 편이 주목받고 있다. 2009년 1월 공개된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를 위한 제도개선과제'(윤희숙·고영선)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는 우리나라 의료서비스 산업의 환경 변화와 의료서비스 공급체계의 특징, 의료서비스 시장 규제 및 규제개선의 방향 등을 담고 있다.

보고서가 발표된지 5년이 지난 현재 새삼 이목을 끄는 이유는, 보고서 발표 당시 KDI 원장이 현재 의료법인의 영리자법인 허용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는 현오석 경제부총리이기 때문이다. 원격의료·영리병원 등 의료서비스 규제완화에 대한 현 부총리의 기본 관점은 이 보고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58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 내용을 단 한줄로 요약하면 "의료행위를 수행할 권한은 의료인에게 독점시키되, 의료업으로 수익을 얻을 권한은 일반국민에게도 허용해야 한다"로 집약된다.

현 부총리는 보고서 발간사에서 "이미 한국 의료서비스부문은 상당 정도 시장이 형성돼 경쟁논리가 주된 작동원리로 기능하고 있으나, 경쟁의 속성이 소비자를 지향하는 건전한 형태가 아니라, 정보 독점과 진입장벽에 기반한 공급자 중심적 시장구조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정부의 역할을 강화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불투명한 규제는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보고서 곳곳에서 확인된다.

"의료업으로 돈 벌 권한 일반인에게 허용해야"

우선 영리법인병원 허용과 관련해, 보고서는 영국·프랑스·독일·스위스 등 서구 대부분 국가에서 이미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 개설주체 중 영리법인만을 배제하고 있는 것은 상당히 독특한 경우"라고 주장했다. 의료기관 개설 주체를 의료인·의료법인 등 뿐만 아니라 민간 자본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헌법재판소 판례의 '소수의견'을 인용해 "의료인이 아닌 자가 의료인을 고용하 는 방식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하는 행위를 막는 것이 의료의 질과 의료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인지 의문"이라며 "의료기관의 개설자가 누구이든 의료행위를 하는 사람이 의료인이기만 하면 국민보건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주체를 의료인으로 한정한 결과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자의 경쟁을 약화시키고, 원하는 품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의료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이 현저히 제한받는 불이익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진입장벽으로 인해 보건의료서비스 공급자간 경쟁이 약화됐다는 주장은, 병·의원간 과당 경쟁으로 의료기관 개설 대비 폐업률이 ▲2009년 72% ▲2010년 79.5% ▲2011년 80.6% ▲2012년 85.2% 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보고서는 또 영리법인병원이 허용될 경우 병원이 영리추구를 최대의 목표로 삼게 됨에 따라 수익성이 떨어지는 필수 의료서비스를 외면하거나 저소득계층 환자에 대한 진료기피 현상이 발생해 결국 의료의 양극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의료계와 시민사회계의 우려를 "의료기관의 경영 방식의 문제이지 법인격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데 적절한 주장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의료서비스산업의 대상별 주요 규제. 보고서는 이들 규제 가운데 민간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분야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한국개발연구원)

영리병원의 이익추구는 의사 도덕성으로 막아라?

특히 영리법인병원의 과도한 이윤논리로 인해 의료인의 자율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의사의 전문가적 윤리를 믿어야 한다'는 매우 독특한 논리를 펴고 있다.

보고서는 "이미 의사들은 소득을 증가시킬 유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리법인의 도입이 의사의 행태에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 예측하기는 어렵다. 즉, 현재 구조하에서 환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의료인이라면, 투자자가 소유한 기관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환자의 이해를 위해 최선을 다해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의료부문이 기반하는 도덕적 기준은 의사 개인의 도덕성이 아니라,의사집단의 전문가윤리에 내장되어 있는 것"이라면서 "영리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의 의학적 도덕률이 기관의 이윤을 위해 내버려질 것이라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의사의 직업윤리가 미약하다면 의사 개인이 수익을 추구하는 개인병원이 허용되어서도 안 될 것"이라며 "의사그룹의 전문가적 윤리가 튼튼하다면 그가 투자자에게 고용될 경우에도 크게 우려할 만한일이 발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기관(병원)이 아무리 과도한 이익추구에 나서더라도 의사 개개인이 이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는 논리인데, 이는 우리나라 의사가 행사할 수 있는 진료권이 공보험인 건강보험제도로 인해 강력히 통제되고 있는 제도적 상황을 무시한 비현실적인 주장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인다.

"사무장병원도 양성화·합법화 대상"

의료기관 개설 장벽 완화에 대한 보고서의 일관된 논조는 사무장병원을 의료계의 병폐로 보는 대신 합법화·양성화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보고서는 "의료행위를 의사면허를 가진 자에 한해 독점시키는 것은 국민의안전을 위해 필요성이 인정되나, 의료업에 투자할 권리까지 면허소지자에게 독점시키는 것은 논거가 강하지 않다"면서 "이미 현실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현행법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불법적으로 의료업에 투자하는 '사무장병원'이 다수 관찰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 사무장병원은 실정법상 불법을 자행한 것이 틀림없으나, 이들을 범법자로 만드는 법조항의 합리성이 널리 공유되지 않은 상태"라며 "암묵적으로 이들을 허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면 관련 규제를 개선시켜 사회의 규칙과 실제를 일치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사무장병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의료계와 국회가 힘을 모아 관련 법을 개정해 나가고 있는 현실과 완전히 배치되는 시각이다.

최근 약사회의 반발을 사고 있는 영리법인 약국 허용에 대해서도 보고서는 일관되게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근거로 영리법인 약국의 허용은 당연한 것이며, 약사들만으로 구성된 법인에 대해 약국 개설을 허용하고, 더 나아가 약사 외의 일반인 및 일반법인에게 약국 개설을 허용하는 문제도 정부의 재량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대형 영리법인 약국이 확산될 경우 상대적으로 자본력이 약하고 영세한 동네약국들은 폐업의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국민 입장에선 별반 차이가 없으므로 상관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100m 이내에 인접 약국이 존재하는 경우가 91.1%에 달하는 현상은, 영세한 동네약국이 없어지더라도, 모두 없어지지는 않거나 다른 형태의 약국이 들어설 것임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접근성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동네약국이 경쟁에서 못 이겨 문을 닫는다는 것은 주변에 다른 형태의 경쟁약국이 존재한다는 뜻이며, 경쟁 약국이 경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가 기존의 동네약국보다 더 크다는 것을 뜻한다"고 밝혔다.

보건의료서비스를 철저히 자본 중심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극명하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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