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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은 세월을 낚았겠지만 "난 상어를 낚았다"

강태공은 세월을 낚았겠지만 "난 상어를 낚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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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2.1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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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품고 뭍으로 돌아오다'
박수현의 선박의사 체험기 ⑥·끝.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오묘하다. 아무도 내가 배를 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고, 우리는 누구도 우리가 만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옛말에 옷깃만 한번 스치려 해도 전생에 오백만 번은 만나야 한다고 했다.

언제 나를 식구로 받아들여줬는지 나는 또 언제부터 이 안에 있는 게 마음이 놓이고 편안해 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원래 이곳에 있어야 했던 작은 돛처럼 배 안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은 아무도 믿지 않지만 나는 멀미가 심한 편이었다. 심지어 비행기를 타도 잠을 자지 않으면 멀미를 해서 모두를 곤란하게 만든 적이 있으니 말이다. 이 증상은 아이티를 다녀온 후 악화됐다.

땅이 흔들리는 진동을 느껴본 후, 둔감했던 감각이 모두 깨어나는 것처럼 바닥을 지나가는 열차나 지하철의 진동까지 모두 느꼈던 것. 그런 내게 배의 끊임없는 흔들림은 사실 공포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내게 멀미가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여전히 멀미가 심한 편이지만 멀미에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배우게 됐다. 배 안에서 멀미가 날 때마다 난 바닥에 납작 엎드려 배의 흔들림에 동참했다.

일어서서 버티거나 저항하려 들지 않았다. 서서히 배의 흔들림에 적응돼 갔다. 어느 순간부터 배의 끊임없는 흔들림이 배가 살아있다는 생동감, 그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실패한 것 같은 좌절감 그리고 나를 휘감았던 회의감은 심연 깊이 두고 왔다. 거친 바다를 보고 혼자 울기도 하고, 생각나는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도 꺼내보고, 내가 걸어온 길에 대한 반성도 했다. 또 앞으로 걷고 싶은 길들을 생각하며 그에 대한 두려움도 만끽해봤다.

'의료선'에 대한 꿈, 그리고 소망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대체 뭐를 위해 배를 탔냐고…. 물론 개인적인 이유로는 바다를 좋아했고, 혼자서 걸어온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치유할 시간도 필요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앞으로의 나의 꿈이자 비전이다. 바로 '의료선'.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렇다 할 의료선이 없다. 의료선이라고 이름 붙여도 이는 난민선에 가까운 열악한 수준이다. 재난지역에 파견을 갈 때도 열악한 라면박스에 재고로 있던 약과 이런저런 도구를 잔뜩 넣어 공항에서 찾고 붙이기를 반복하는 긴 과정을 거친다.

그렇게 가도 수술은커녕 마땅한 시술을 하기 열악한 상황이다. 선진국들이 컨테이너 박스에 수술실과 병원을 통째로 이동시켜 가져오는 시스템에 놀랐고, 배나 항공으로 재난 대비를 해오는 게 신기했다. 사실상 재난 지역에서 공항보다 먼저 열리는 것이 배가 들어갈 수 있는 항구였고, 배 안에는 수술실 등 여러 가지 기본적인 기계들을 가지고 효율적으로 의료활동을 펼칠 수 있다.

외국의 Mercy ship이 그렇다. 우리나라도 원조국이 됐고, 그 예산 하에서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가 필요할 시점이 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일과 프로젝트도 많이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단기적 물품 기증 혹은 빌딩 하나 지어주고 사진을 찍어 홍보하는 그런 일차원적인 봉사가 문제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조금은 멀리보고 장기적이고 발전적인 미래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 까 싶은 마음이고, 그런 면에서 의료선은 좋은 비전일 것이다.

배는 매우 유기적이고 복잡하다. 그도 그럴 것이, 배 하나만 있어도 자체적으로 전력생산이 가능하고 내부에서 냉장·보일러·컴퓨터 시스템·엔진·물 등 필요한 것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배후에는 정말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연료를 자체적으로 거르는 청정실·해수를 청수로 바꾸는 기계 등 상상할 수 없이 놀랍고 복잡한 곳이 바로 배이기 때문이다.

만일 의료선을 만든다면, 그 안에는 의료적인 지식을 논의할 수 있는 의료전문가들과 배를 잘아는 배의 전문가들 그리고 예산 집행부 등 여러 가지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모여야 할 것이다.

그 첫걸음이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고, 미래의 비전에 대해 꿈꿔볼 수 있는 젊은 항해사 그리고 기관사 친구들과 이곳에서 인연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 안에서 중재적인 역할을 하려면, 한 번은 겪어보고 서로를 잘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짧지만 축약된 배에 대한 정보와 지식에 의학적인 지식이 잘 엮어진다면 좋은 결실로 여물어질거라 믿었다.

2013년. 내 인생을 꺼내어 보았을 때, 행복한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던 동화책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한 시간을 가질수 있었고, 온전히 마음을 다 치유하고, 환자에 다시 다가갈 수 있는 그 의지를 다시 찾아오게 된 것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선의가 된다는 것은 정말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기회였다. 또 키가 한뼘은 자란 느낌이다(고만자라!!!!).

배 안의 비하인드 스토리. 어디나 여행을 가면 이런 비밀 이야기가 존재한다. 때로는 그 비밀이야기가 뇌의 깊은 해마 속 중심부에 자리잡아, 매일 일상이었던 생활사보다 더 오랫동안 각인된 채 남아있다. 그런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초심자의 운'이라는 말을 믿는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 카지노에서 우연히 아무거나 눌렀는데 돈을 따고, 룰도 잘 모르는 사람이 고스톱에서 최고로 등급하고, 처음 보는 기계에 우연히 손을 댔는데, 고쳐진다. 물론 하루 잠깐 순간에 국한 된 일이지만 아무 것도 없는 그런 초심자에게 우연과 행운이 따른다는 것은 과히 부정하기 힘들다.

비과학적이라 말해도 누구나 믿는 한가지 정도는 있지 않은가. 내게 초심자의 운이 그러하다. 이번 배를 타면서 불가능한지 알면서도 꼭 하고 싶었던 일이 한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낚시였다. 어차피 배의 용도가 다르고, 낚시의 기본적인 장비도 없어 상상과 같은 그러한 낚시는 꿈도 꿀 수 없지만, 그래도 배도 탔는데 라는 일종의 기대심리였다.

'초심자의 운'이라지만…

▲ 바보 같은 빨판상어 하나가 나를 바보 같다고 놀리며 식빵만 뜯어 먹다가 되려 꼬였던 그 끈에 자기도 꼬여버렸다.

물론 어선이 아닌 배에서 낚시를 하는 것은 합법이라 말할 수 없지만 대량으로 고기잡이를 하겠단 것도 아니고, 그냥 출렁출렁 맑고 푸른 바다에서 유유자적 오랫동안 낚시대를 드리워 놓고 밤하늘 별을 보고 낭만을 곱씹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었던 것.

결과적으론 엄청난 투쟁과 고집과 집념으로 가득 찬 공격적 성향의 낚시꾼 같은 기를 마구 방출한 셈이 돼버렸지만 말이다.

기회가 왔다. 좋은 기후와 평온한 조류덕에 예정보다 일찍 기항지 인근에 도착해 바다 한가운데에 잠시 머물렀다 다음날 도시로 들어가는 날이었다. 그 사이에는 뭘 해도 자유. 다들 심심풀이 삼아 낚시나 해보라고 했다.

사실 장비가 막 잘 갖춰진 것도 아니고 미끼도 없었으나 바다의 로망은 고기잡이라 하지 않았는가? 두근거리는 심장, 낚시로 달래야 한다며 정신 없이 방에서 얌전히 입고 있는 파자마용 원피스를 입고 바람에 머리를 휘날리며 갑판 쪽으로 내려갔다.

시작은 그랬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엄청 두근거리며 생각한 막 지렁이를 묶어서 하는 그러한 낚시가 아니었다. 작은 등을 달아 소박하게 밝은 빛을 바다에 흩뿌린 후 공갈 미끼가 달린 세 바늘로 오징어를 잡는 것이 목표였다. 바다가 어찌나 맑고 투명한지 안에 돌아다니는 작은 물고기가 전부 비춰 보였다. 황홀한 마린블루.

'앰버 같은 보석에 파리가 들어있다면 큰 마린블루 보석엔 물고기가 들어있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꽤 오래 기다렸지만 물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나는 떡밥이 없어 그런 거라며 주방 쪽으로 갔고, 평소에 내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한 조리팀에서는 특별히 나에게만 주는 거라며 식빵을 잔뜩 손에 쥐어줬다. 내가 낚시대를 기울이는 동안 구경 온 여러 사람들은 이미 포기하고 가버렸다.

그도 그럴 법한게 나야 한가롭기 그지없지만 배가 멈춰서도 돌아가며 삼당직을 서야 하는 이들이 주구장창 낚시에만 신경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낚시에 성공한 사람이 없었단다. 하지만 나는 초심자의 운은 꼭 있는 거라며 꿋꿋이 서서 바다에 빵을 흩어뿌렸다.

물고기는 식빵을 먹지 않다는 만류에도 나는 이놈들이 아직 빵 맛을 모른다며 던져주길 한두어시간. 밤 불빛에 요리조리 작은 물고기들이 보였다. 빛에 비춰지는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황홀해서 넋을 잃고 본다.

그러다 한 마리의 오징어가 희생양처럼 건져 올려졌다. 너무 기쁜 나머지 장난으로 학생에게 배웠던 CPR을 해보라며 오징어 CPR도 시행했다. 그것도 잠시 상어가 등장했다. 물고기들이 많이 모인 곳엔 항상 포식자가 있는 법이다.

선장님과 다른 교수님들이 나와서 보더니 "닥쌤 오늘 낚시는 끝났어요. 상어오면 다른 물고기들이 도망가서 그날은 물고기 못 잡는 날이에요"라고 한다.

나는 식빵을 최대한 손으로 주물주물 해서 딱딱하게 꽁꽁 다진 다음 상어를 향해 던졌다.

"저리가. 가버리란 말이야. 물고기 안 잡히잖아!"

처음엔 상어들이 도망가는 거 같더니만 되돌아왔다. 그러더니!!! 식빵을 먹기 시작하는 거 아닌가! 세상에 상어가 식빵을 먹는다.

그래서 얼른 낚시 바늘을 건져 거기에 빵을 다시 다져서 매달았다. 똑똑한 상어는 식빵만 뜯어 먹는다. 낚시 전문가 분이 충고하길 '절대 바늘들끼리 꼬이거나 선이 꼬이면 안돼요. 물고기가 낚시인지 알아서 안 와요'라고 했으나 성질 급한 나는 잘 풀지 않고 내렸다. 이것이 되려 상어를 잡는 미끼가 되었으니….

바보 같은 상어 하나가 나를 바보 같다고 놀리며 식빵만 뜯어 먹다가 되려 꼬였던 그 끈에 자기도 꼬여버렸다. 몸부림을 마구마구 치다가 결국엔 걸려버렸다. 어이없지만 그렇게 나는 세 마리의 빨판상어를 잡았다.

다들 혀를 찰 정도로 놀란다. 일단 배에서 고기를 잡아본 적이 거의 없거니와 상어들을 죄다 건져 올렸으니 놀랄 만도 하다.

사실 이 상어들은 귀여운 메기처럼 생겼다. 그러나 저 빨판을 대고 체액을 빨아 먹는다고 하니 상어가 맞는 가보다. 그렇게 내 인생 첫 고기잡이이자 아주 초심자의 운을 몽땅몽땅 건 낚시는 끝이 났다. 근데 그 후 상어들의 출처를 알 수가 없단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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