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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소주,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청진기 소주, 이대로 둬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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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3.11.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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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재(경기도립 파주병원 공보의 응급의학과)

▲ 최석재(경기도립 파주병원 공보의 응급의학과)

응급실에서 밤을 지나 새벽을 지새우다 보면 술과 관련된 질환 또는 술을 마시고 다쳐서 오는 환자들이 참 많다.

식사를 하지 않고 매일 술만 마시다 발생한 알코올성 케톤 산증으로 복통과 구토를 호소하며 오는 환자, 알코올성 췌장염으로 진단받고 어제도 와서 마약성 진통제를 맞고 갔으나 오늘도 아프다며 오는 마약중독 의심 환자, 알코올성 간경화로 복수가 찬 배를 부여잡고 토혈하며 식은땀 흘리며 낮은 혈압으로 실려 온 환자, 술 마신 채 운전대를 잡았다가 사고가 나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 다치게 하고 경찰과 함께 와서는 측정 거부하며 소리 지르는 환자, 인사불성 상태로 넘어져 얼굴이 심하게 부어 안면부 다발성 골절이 의심되는데도 검사와 치료에 협조는 안 되고 난동만 부리는 환자, 거하게 취해서 다른 환자와 함께 응급실을 왔다가 빨리 치료 안 해준다며 집기를 던지고 의료진을 위협하는 보호자까지….

이 분들 중 맥주나 와인만을 마시고 취해서 왔다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대부분 값싸고 쉽게 취할 수 있는 소주를 마시고 오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소주가 얼마나 싼지 100cc당 소매가격 가격을 기준으로 외국의 다른 증류주 가격과 비교해보면 한국의 소주는 280원, 중국의 소주는 1800원, 유럽의 보드카는 3000원, 미국의 위스키는 4000원 이라는 조사가 있다(JTBC 뉴스9, 2012년 6월 12일 보도 중). 소비량 또한 상당한데 작년 기준 1년간 1인당 88병 가량 소비했다고 한다(한국주류산업협회).

그래서 단순히 하나의 음주문화라고 하기엔 환자 본인에게도, 가족에게도, 그리고 사회적으로도 너무도 피해가 큰, 소주라는 술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원래 술은 과실주와 곡주로 구분되는 발효주가 오랜 세월동안 술로서 인정돼왔으나 술의 역사로서는 최근인 13세기에 이르러 보관이 용이한 형태인 증류주가 만들어졌고 우리나라에는 고려 때 몽고에 의한 침략당시 증류주가 처음 전파됐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각지의 전통 술 중 하나로 안동소주를 비롯한 여러 증류주들이 명맥을 이어왔으나 식량사정이 좋지 않던 1965년, 양곡관리법과 주세법의 변화로 곡물로 만드는 막걸리와 증류주 등의 술 제조가 금지됐다.

이후 증류주를 대체해 원료가 싼 희석주(지금 우리가 주로 마시는 소주)가 술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고 1990년대가 되어서야 증류주의 제조가 허용돼 몇몇 전통주만이 영세한 형태로 제조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소주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희석주는 값싼 원료로 연속증류기법을 이용, 95% 순도의 알코올을 만들어 물에 희석한 뒤 단 맛을 내는 여러가지 첨가제 등을 넣어 만들어진다. 실제 알코올과 물만을 희석한 단계에서는 쓴 맛이 강해 역해서 바로 마시기 힘들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 더 고약한 것은 다른 식품군과 다르게 주류는 첨가물의 성분을 표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이는 주류 표시규정에서 정하는 "표시해야 할 첨가물은 식품위생법에서 명칭과 용도를 표기해야 하는 물질로 한다"는 항목 때문인데 이로 인해 주류에 대해서는 특별히 모든 성분을 표시하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받고 있다고 한다(한겨레21, 2008년 5월 14일 제710호, 안병수의 바르게 먹자 칼럼 중).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가 마시는 희석주를 일반적인 술로 보지 않고 거의 생산하지 않는 상황이다.

성분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값싼 원료로 제작돼 첨가제로 맛을 낸 희석주로 인해 적은 금액으로 쉽게 취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의 음주문화까지 바뀌어 버렸다는데 있다.

▲ 일러스트=윤세호 기자

주위에서 술을 좋아한다는 사람들과 대화해본 결과 희석식 소주를 맛있어서 마신다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싸고 쉽게 취할 수 있어서 분위기를 위해 마신다는 사람이 많았다.

결국 술 자체의 맛과 향을 느끼며 적은 양으로 즐기면서 마시는 문화가 아닌 빨리 취하기 위해 다량으로 마시는 문화가 자리 잡았고 이는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와 사회 문제를 낳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한 대안이라면 맛과 향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전통주의 개발과 대중화를 들 수 있겠다. 하지만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전통주가 판로를 찾지 못하고 고전하고 있는 이유가 여러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주세 제도의 불합리성에 있다.

미국·일본·중국 등과 달리 우리나라는 원료·병·포장 각각에 세금을 부과하는데 이로 인해 저렴한 원료와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지는 희석식 소주는 천원 이내의 가격으로 제작이 가능해지고 전통주를 포함한 증류식 소주는 열 배 정도의 가격으로 시장 경쟁력이 떨어지게 된다.

다른 국가들의 주세 제도를 적용해보면 세 배 이내로 가격차가 줄어들게 된다고 한다. 또한 국내 주류 유통사와 국세청과의 관계도 한몫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국세청에서 예측한 수요에 따라 만들어진 주정은 전량 대한주정판매주식회사로 판매대 각 희석식 소주 제조사로 배정, 유통되는 구조를 가짐으로써 독과점 체제가 유지되고 있다.

수익을 내는 것이 기업의 존재의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맞다. 주세제도를 통해 국가가 세금을 걷고 이를 사회 유지에 사용한다면 합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 수단이 사회에 부담을 주는 것 이라면 보이지 않는 사회적인 손실이 아닐까? 또한 피치 못하게 사회에 부담을 주었다면 약자를 위한 배려도 필요할 것이 아닌가.

최근 음주문화연구센터에서 운영하는 카프병원(경기 고양시 소재)이 주류협회의 지원 중단으로 인해 문 닫을 위기에 놓였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부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가 무시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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