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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뉴키즈'(40대 젊은 의사) 의료계 뒤엎다

coverstory '뉴키즈'(40대 젊은 의사) 의료계 뒤엎다

  • 최승원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2.04.13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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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88세대 전면 등장…의료계 질적 변화 예고
탈권위적·웹커뮤니티 중심…의협 입성은 '첫 단추'

▲ 보수적인 의료계 분위기 탓인지 눈에 잘띄지 않았던 젊은 의사들이 최근 '사고'(?)를 제대로 치면서 의료계 전면에 등장했다. 사진은 3월 25일 치러진 제37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의협신문 김선경

Cover Story

"마치 연예인 팬싸인회장에 온 것 같았다. 연예인을 실제로 본 팬마냥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 젊은 의사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다."

37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 나선 모후보 캠프의 A원장은 선거가 있던 날 노환규 전국의사총연합(전의총) 대표와 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젊은 의사들의 줄을 보며 "달라진 의료계의 트렌드를 체감했다"고 말했다.

노환규 당선인은 역대 의협 회장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일종의 '팬덤 현상'을 본격적으로 일으킨 최초의 회장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정치인의 팬덤 현상은 한국에서 이미 몇해 전부터 익숙한 현상이다. 이제서야 의료계에서도 정치인의 팬덤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팬덤 현상을 비롯해 이번 의협 회장선거 과정에서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트렌드들이 눈에 띤다. 이같은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주체로 40대 젊은 의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40대 젊은 의사들 제대로 사고치다

40대 젊은 의사들이 의료계를 변화시키고 있다. 의사 10명 가운데 40대 이하의 젊은 의사 비율이 6∼7명을 차지할 만큼 많아지면서 어떤 식으로든 의료계의 변화는 예정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보수적인 의료계 분위기 탓인지 젊은 의사들은 눈에 잘띄지 않았다.

그런 젊은 의사들이 최근 '사고'를 제대로 치면서 의료계 전면에 등장했다. 의료계 비주류로 인식되던 노환규 대표를 대한의사협회장에 당선시킨 것이다.

노 대표의 당선과정에서 보인 젊은 세대의 움직임은 보수적인 기존 의료계와는 다른 새로운 트렌드라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우선 노 대표의 당선을 사실상 이끈 젊은 의사들이 주도한 전의총의 기존 의료단체들과는 차별화된 모습이 흥미롭다. 전의총의 최고 의결기구는 128명의 중앙위원으로 구성된 중앙위원회다.

이들은 모두 개원을 하면서 동시에 '닥터플라자(닥플)'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중앙위원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동시에 투잡(?)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효율적인 운영방식 때문.

중앙위원들은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생각되는 현안을 바로 닥플에 올린다. 웹에 올라간 현안을 두고 접속 중인 중앙위원들이 토론 혹은 논쟁을 벌이는데 그 과정에서 위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안은 도태되고 지지를 받는 안은 자연스럽게 부각된다.

기존 조직처럼 현안이 발생하면 회의 소집하고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불러 모으고 할 일이 없다. 말그대로 실시간 토론, 실시간 의사결정이다.

'K모 기자 사랑해주자'는 공지에 집단적으로…

▲ 보수적인 의료계 분위기 탓인지 눈에 잘띄지 않았던 젊은 의사들이 최근 '사고'(?)를 제대로 치면서 의료계 전면에 등장했다. 사진은 3월 25일 치러진 제37대 대한의사협회장 선거에 참가한 선거인단들이 선거인명부를 확인하고 있는 모습.ⓒ의협신문 김선경
현안에 대한 대응이 결정되면 실행 역시 곧바로 이뤄진다. 노 대표를 의협 회장 후보로 밀기로 결정하고 성금모금 공지를 올린지 3일만에 5000만원이란 거금을 모금했다. 전의총의 한 관계자는 "성금모금을 제안한 후 필요액을 얻기위해 일주일 이상 공지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에는 "C일보의 K모 기자를 사랑해줍시다!"란 공지가 기자의 휴대폰 번호와 함께 떴다. 전의총에 대해 왜곡됐다고 판단된 기사를 올린 기자를 응징하자는 일종의 제안이다.

공지가 올라가자마자 접속한 회원들은 항의전화 걸기에 참여의사를 밝히고 공지를 올린 회원이 참여의사를 밝힌 의사들을 시간대별로 조직한다. 불과 반나절만에 이 모든 것이 결정됐다. K기자는 이후 엄청난 항의전화에 시달렸다는 후문이다.

전의총의 한 관계자는 "우린 마치 하나의 세포와 같다. 스스로 결정하고 자율적으로 움직이지만 세포들이 모여 하나의 생명체가 되듯 하나의 목표를 향해 큰 흐름을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중앙위원도 선출직이라고 하기보다는 인터넷 카페모임의 시솝 성격이 강하다. 선출도 선거가 아닌 추천으로 이뤄진다.

지부를 구성하는 것도 철저히 자생적이고 자율적이다. 지역에서 닥플을 통해 뜻이 통하는 회원들 몇명이 모여 등록을 하면 바로 지부가 된다. 전의총 홈페이지를 보면 지부가 시군구 단위까지 촘촘히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모두 자생적으로 생긴 조직이다.

기존 조직의 경우 중앙을 먼저 세우고 지부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애를 먹는 것과 사뭇 다르다. 밑에서부터 자율적으로 조직을 만들어 웹을 통해 유기적으로 살아움직이니 지부의 존속 여부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노환규의 전의총이 아닌 전의총의 노환규

이런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한 것은 조직 자체가 밑에서부터 자생적으로 조직돼 태생부터 자율성을 갖춰기 때문으로 보인다. 닥플이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단단히 뭉쳐있는 점도 기존 의사 조직과는 차별화된 장점이다.

기성세대에 비해 자발성과 자율성·효율성을 가지고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낸 주역은 80학번대의 40대 의사들이다. 이들은 한국사회로 치면 1차 베이비붐 세대인 '58년 개띠'들로 볼 수 있으며 기존 세대와는 다른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1990년 출몰한 'X세대'와 비슷하다.

58년 개띠들이 한국전쟁이 끝난 후 평화시대에 접어든 한국사회의 베이비붐의 결과라면 의료계의 80년대 학번 세대는 군사독재정권의 의대증설 정책과 준비안된 전국민의료보험 확대로 이전 세대 의사들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게 되는 첫 세대다.

노 대표의 당선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젊은 의사들은 대체로 82에서 88학번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이로 치면 40대 초반에서 후반으로 전두환 정권 당시 학생운동에 뛰어든 486세대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전 세대와는 다르게 탈권위적이다.

40대 초반의 한 전의총 회원은 "노 대표가 결정한 사안을 중앙위원 다수가 반대해 엎은 적이 여러 번 있다"며 전의총이 제왕적인 보스 한 명에 좌지우지되는 단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흔히 전의총을 '노환규의 전의총'으로 알고 있는데 노환규의 전의총이 아니라 '전의총의 노환규'"라고 말하기도 했다.

8288세대들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수평적인 관계를 맺는 데에도 익숙해 보인다. 닥플에서 활동 중인 한 의사는 "전통적으로 의료계는 나이와 학연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지만 젊은 의사들이 참여하는 닥플에서는 나이나 학연, 학벌이 발붙일 곳은 없다"고 단언했다.

지방의대 출신인 한 40대 의사는 "지방의대를 나왔다고 차별받은 경험이 전혀 없다"며 "닥플의 세계에서는 학연이나 학벌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어 내는 논객이 각광받는다"고 말했다. 기존 의료계가 학연과 기수, 동창회에 의해 주도되는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철저히 형식보다는 내용 중심이다.

생존을 고민해야 하는 첫 세대 '8288'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40대 젊은 의사들은 또다른 측면에서 생존을 걱정하며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는 기성세대들과는 차별화된 첫 세대이기도 하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정권과 함께 의대를 가장 많이 설립한 정권이다.

'8288대'가 의대에 입학했던 82∼88년 모두 11곳의 의대가 신설됐다. 의료시장으로 유입되는 의사의 수가 이들이 졸업할 때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뻔했다.

노태우 정권 때 의대 2곳이, 김영삼 정권 때 9곳이 추가로 설립된 것까지 합치면 8288세대는 기성 세대들과는 다른 치열한 개원 환경에서 80학번 동료들과 90학번 후배들과 경쟁해야 하는 세대다<그래프>.

 

늘어난 의대 수는 곧바로 의사 수의 폭발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이같은 현상은 의사국시 응시자 수에서 잘 드러난다.

1980년 의사국시 응시자 수는 1429명에 불과했지만 1986년부터 응시생이 2000명을 돌파하며 급증조짐을 보이더니 8288세대가 졸업할 시기인 89년부터 응시생이 3000명을 넘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88∼89학번이 졸업할 시기인 95년에는 응시생이 4000명을 돌파하며 최고점을 찍기도 했다.

89년부터 늘어난 합격자 수는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고착화되고 있다<표>.

 

의료계의 8288세대가 기존 세대에 비해 의료정책에 민감하고 빠르게 반응하는 것은 팍팍해진 현실에 대한 생존본능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방에서 개원 5년차인 40대 중반의 한 개원의는 "기존 의사회 조직을 보면 빠르게 변한 한국 사회에서 제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회원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의 눈높이에 맞는 운영체제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점점 외면당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절반의 성공과 나머지 절반의 과제

젊은 의사들이 정치적인 각성을 통해 보인 새로운 흐름은 관성에 젖어있던 기성 세대에 자극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의료계의 본질적인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발전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수도권에서 개원 중인 40대 개원의는 "젊은 세대가 새로운 흐름으로 의료계를 리드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정책 생산 능력도 갖춰야 하는데 아직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의총이 됐든 아니면 다른 조직이 됐든 의료계의 시각을 담은 정책아이템들을 만들어 의료계에 공급하는 싱크탱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다른 개원의는 생각이 좀 다르다. 그는 "의료계에서 그 어떤 조직보다 끈적끈적한 조직력을 가진 만큼 싱크탱크로만 머물지 말고 거대 담론을 주도하고 때때로 직접행동에 나서기도 하는 의료계 내부에서의 정당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리고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전체 사회의 변화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하는 정치권의 기성 정당과 같은 역할을 의료계 내부에서 맡아야 한다는 말이다.

또 다른 40대 개원의는 "젊은 세대들의 소통방식이 효율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현안에 대한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분석보다 다수의 의견에 휩쓸려가는 경향이 있다"며 "이를 막기위해 '집단지성'을 발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칫 대중독재 혹은 표퓰리즘에 빠지기 않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젊은 세대들이 기성 세대의 목소리나 반대의견에도 귀기울이는 집단지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의협 집행부에서 임원을 지낸 또 다른 개원의는 "현안을 돌파하기 위해서 대중의 감성적인 동력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지난하게 대응해야 할 때가 더 많다"며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묵묵히 지지해주는 자세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의총 중앙위원인 한 개원의는 "전의총이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모아 의료계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간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미흡한 점도 있을 것"이라며 "책임감있는 대표 의사단체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내부적으로도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 대표의 당선은 전의총으로서는 제일 쉬운 첫 단추를 끼운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훨씬 어려운 싸움이 될 의료계의 대정부·대국회 활동에서 활약할 젊은 의사들의 발전된 모습을 기대해 달라"고도 말했다.

노환규 대표의 당선 과정에서 전면에 드러난 8288세대가 가진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전 의료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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