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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2.02.0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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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치바나 다카시 지음/명승권 감수/청어람미디어 펴냄/1만 8000원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세계적으로 2000년대 이후 발간된 최고의 역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책을 쓴 빌 브리아슨은 <타임> <인디펜던트> 등에서 일한 기자다. '글발'의 한계를 가늠치 못하게 하는 그가 미국에 있다면 일본에는 다치바나 다카시가 있다.

1974년 <문예춘추>는 타나카 가쿠에이 총리의 범죄 행위를 파헤친 보도를 싣는다. 결국 총리사임을 이끌어낸 이 기사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리포트였다. 탐사전문 기자였지만 그의 지적 욕구는 제한된 지면으로는 너무 좁았다.

그가 이후 쓴 <우주로부터의 귀환> <나는 이런 책을 읽어 왔다> <정신과 물질> <임사체험> <뇌를 단련하다> <21세기 지의 도전> <에게-영원회귀의 바다> <피가되고 살이 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 <지식의 단련법> 등의 저서는 제목만으로도 그의 지적 영역의 일편을 느껴볼 수 있다.

국내에도 이미 많은 책들이 소개됐고 일군의 마니아층도 형성돼 있다. 일흔을 넘긴 그는 지금도 기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조탁한다. 취재도 '학문'이라는 사실과 '최고의 과학저널리스트'라는 평가에 대해 그는 언제나 글로, 책으로 확인시킨다.

이번에 그가 천착한 곳은 '암'이다. 암 전문 의사도 아닌 이가 암에 대해 책을 낸다는 무모한 상상이 어떻게 실현될 수 있었을까.

다치바나 다카시의 새 책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가 나왔다. 2007년 방광암 수술을 받은 게 단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속에서 그의 저널리즘은 발동한다. 일본은 물론 미국·유럽의 암전문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최신 의학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면서 암에 대해 객관적으로 접근한다.

그는 이를 정리해 글을 썼고 NHK는 다큐로 제작했다. 2008년 4~7월 <문예춘추>에 글이 게재됐고 2009년 11월에는 <NHK스페셜>을 통해 전파를 탔다. 이 책에는 병상 수기와 함께 글과 방송을 위해 취재한 내용이 한 데 묶여졌다.

그의 관심은 '우리는 과연 암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암세포는 생명의 자연스러운 영위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현실과 인간의 나약함도 인정한다. 그러면서 암과 인간이 올바른 관계로 공존하기를 제안한다.

이 책은 '암, 생과 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하다'와 '나는 암 수술을 했다'로 구성돼 있다.

첫 장은 암유전자 RAS를 처음으로 규명한 로버트 와인버거 교수와 암 줄기세포 연구의 세계적 석학인 마이클 클라크 교수 등 암 전문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암 치료의 현실과 한계를 통찰한다. 암의 실체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하면서 경계해야 할 점도 하나씩 꼽아나간다.

세계적 암 전문가들의 탁견이 저자를 통해 고스란히 책으로 모아진다. 두번째 장에서는 방광암 수술이후 <문예춘추>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했다.

'선고-주치의와의 대화-방광에 메스가 들어갈 때-암이라는 적의 정체'로 풀어가는 수기는 무관심했던 몸에 대한 기초 의학정보부터 암 수술 도구 및 원리, 마취의 종류와 인폼드 콘센트, 완화치료와 대체요법, 항암제의 명암 등 암 선고와 동시에 맞닥뜨려야 하는 낯설고 두려운 상황을 유려한 글쓰기를 통해 암환자들의 막연한 불안감을 해소하고 안정을 돕는다.

저자는 책을 갈무리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암치료 최일선 현장을 취재했음에도 암이 재발한다면 화학요법을 거부하고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다. 생명은 생태계의 일부이고 삶과 죽음은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생각에서이다.

이 책은 암환자의 웰빙만이 아니라 웰다잉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죽음의 순간에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누구나 주변의 도움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덧붙이면서….

"사람에게는 죽는 힘이 있지만, 죽을 때까지 살아내는 힘도 있다"는 저자에게서 암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를 얻는다.

명승권 국립암센터 발암성연구과장이 우리말로 옮겼다(☎02-3143-40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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