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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수가 2.9%인하

수가 2.9%인하

  • 장준화 기자 chang500@kma.org
  • 승인 2002.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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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의료수가가 건강보험재정 절감이라는 미명하에 2.9% 인하됐다. 이는 우리나라가 지난 1977년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한 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7일 제7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를 열어 “3월부터 보험료를 6.7% 인상하고, 의료수가는 4월부터 2.9% 인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의협대표 2명만이 건정심위 위원 구성에 문제점을 들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의는 의료수가 조정안을 놓고 위원들간에 4시간의 공방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이뤄내지 못하고 끝내 표결로 처리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먼저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에 대해서는 위원들 모두가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다만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고려, 당초 정부가 제시했던 9% 인상안에서 일보 후퇴한 6.7% 수준으로 하향조정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문제는 그 다음으로 수가조정안을 놓고 의약계 대표, 가입자 대표, 공익대표 등 3자 공히 각자의 일관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의약계는 지난해 7월 이후 정부의 건강보험재정안정대책 등으로 1조6천억원 이상의 재정절감에 기여하는 등 이로 인해 사실상 수가가 인하됐다며 그나마 국민과의 고통분담을 함께 한다는 차원에서 수가동결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반해 가입자 및 공익대표들은 의약계의 주장이 국민을 이해시키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일정 수준의 인하폭을 주장했다.

결국 이날 회의는 의약계 대표들이 상정안 수가동결안은 회의절차를 무시한채 폐기되고, 공익대표 및 가입자대표들이 제시한 제1안 (2.9% 인하안)과 제2안(3.97% 인하안)을 놓고 표결에 붙여 출석위원 22명 중 10명이 제1안에, 9명이 제2안에 투표함으로써 수가를 2.9%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수가인하는 이미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 지금까지 보험료와 수가조정은 건강보험심의조정위원회가 다뤄왔지만 2002년 1월 19일자로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이 공포됨에 따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에서 이 업무를 맡게됐다.

이 건정심은 의약계 대표 8인, 가입자대표 8인, 공익대표 8인 등 24인으로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여기서 의약계와 가입자는 서로 상충되는 집단으로 이해 관계가 얽힌 첨예한 문제는 자연히 공익대표에 의해 좌우될 수 밖에 없도록 되어있어 출발부터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 문제점은 보건복지부가 건정심 명단을 발표하면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첫 회의를 1월 25일 갖기로 했지만 의약계는 즉시 건정심 위원 구성에 문제점이 있음을 들어 공정성과 신뢰성을 갖춘 인사로 구성한다는 정부의 입장변화가 있을 때 까지 이 위원회에 불참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회의를 보이콧 했다.

특히 의협은 공익대표 중 전문가 4인은 의약계가 추천하는 2인과 의약계에서 동의할 수 있는 전문성과 독립성·공정성을 겸비한 2인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복지부는 이같은 의약계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다고 판단, 공익대표를 새로운 인물로 교체하고 2월 7일 첫 회의를 가졌으나 의협은 여전히 공익대표 구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불참했다.
그 이후 건정심은 의협대표가 불참한 가운데 6차례의 논의를 가졌으나 의견을 조율하지 못하고 난항만 거듭하다 제7차 회의에서 수가 2.9%인하를 결정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의약계가 제안한 안이 상정되지 않고 폐기됐다는 사실이 의약계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려운 점이다. 어떤 회의든지 참석해 회의진행을 지켜 본 사람들이라면 이 회의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병원협회 대표는 투표전에 퇴장해 버렸지만 약사회와 치과의사협회를 대표한 위원은 회의 석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장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

또한 당초 수가동결―보험료 9% 인상안을 고수했던 복지부가 1월 18일 물가대책장관회의와 서울대 진료원가 연구보고서 설명회를 기점으로 수가인하쪽으로 급선회한 점도 어딘가 석연치 않다. 보험료 인상폭을 줄이는 대신 재정적자폭의 수지균형을 인위적으로 마춘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이 짙다. 이는 건강보험료율을 당초 계획안 보다 낮춘데 따른 수입감소가 1,780억원으로 추계되고, 수가 2.9% 인하로 재정절감액이 1,806억원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의협은 명백한 불법 만행으로 규정짓고 `건정심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의협은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 및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운영규정에 적시된 의결조건을 자의적으로 해석하여 수가인하를 결정한 이 회의는 무효라는 주장이다. 표결장에 참석한 위원이 표결하지 않은 것이 기권의 의미라는 것은 상식적으로 판단 가능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불참석으로 해석하고 회의를 종결하는 비상식적인 위원회는 존재가치가 없다며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의협은 이 회의결과가 고시될 경우 효력정지가처분신청과 무효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모법을 무시한 보건복지부 고시에 대한 무효소송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대한병원협회도 이번 정부의 의료수가 인하결정에 반발, 국민건강수호 및 병원생존권쟁취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적극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병협은 수가인하는 국가보건의료의 미래와 국민건강을 염두에 둔 올바른 결정으로 볼 수 없으며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한 무책임한 처사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강력 대응하겠다고 천명했다.병협은 2001년 1월 현재 건강보험관리공단에서 병원에 지급할 요양급여비용 중 264개 병원의 진료비 9,600억원이 가압류되어 있는 상황에서 병원경영난이 개선되지 않은 한 대량도산과 부도 도미도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 결국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약사회도 이번 의료수가 인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약사회는 일방적으로 수가인하만을 강행하려는 건정심의 투표불참으로 반대의사를 표명했으며 이같은 의지는 변함이 없음을 밝히고 정부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대정부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을 천명했다.

복지부는 이달 중순께 의료수가 인하에 따른 구체적인 상대가치점수와 가격을 고시하고 4월 진료분부터 적용할 계획이지만 이들 단체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수가인하에 따른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그러나 의약계는 정부가 합리적인 재정 및 건강보험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향후 수가 및 상대가치점수 등 개정과 관련된 공정성 확보방안 등을 내놓으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어서 정부가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면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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