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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한테 남은 건 사랑밖에 없습니다"

"저 한테 남은 건 사랑밖에 없습니다"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1.09.19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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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협 도움받아 인공관절 얻은 조선족 리해순씨
불법체류·이혼·자살기도...조국서 '새 희망'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리해순씨가 환하게 웃으며 걷고 있다.
두 차례나 큰 수술을 받은 사람 답지않게 리해순 씨(55세)의 혈색은 건강해 보였다. 식사를 제대로 못한 탓에 얼굴은 조금 수척해 보였지만 표정만은 무척 밝았다. 수술을 마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직도 꿈인가 생시인가 한다"며 미소짓는다.

중국 심양성에서 살던 리 씨가 한국에 발을 디딘 것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1991년. 파출부와 식당 주방일, 공사판을 전전하며 연명하던 그녀는 2002년 건축현장에서 추락해 후방십자인대가 파열되는 사고를 당했다. 어렵게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한시름 놓는가 했지만, 2005년 불법체류자 신분이 밝혀져 무릎에 핀을 박은채 강제출국당했다.

그 와중에 중국에 있던 남편은 한국 여성과 위장결혼을 해서 한국으로 오겠다며 리 씨와 위장이혼을 했지만, 진짜 이혼으로 둔갑해 버렸다. 리 씨가 중국으로 송금한 돈은 남편이 모두 탕진했다. 한국에서 수술 받기 위해 시도한 위장결혼 역시 사기를 당하면서 리 씨는 깊은 좌절의 나락으로 빠져버렸다.

"정말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몰랐어요. 모두가 미웠고 모든게 원망스러웠지요."

자살 시도만 일곱 번. 만신창이가 돼버린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 신음하며 살아야 했던 리 씨의 딱한 사연은 지난해 5월 중국 동포신문 '요녕신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후에 일어난 일들은 마치 영화의 하일라이트 처럼 순식간에 벌어졌다.

심양주재 총영사관이 현지에 주재하고 있던 한영섭 주중한국대사관 식약관(식품의약품안전청 파견)에게 리 씨의 기사가 담긴 신문을 전달했고, 한 파견관은 대한의사협회에 의료지원을 요청했다. 의협은 리 씨를 처음 수술했던 병원에 재수술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여의치 않자,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 도움을 청해 수술지원이 가능하다는 회신을 받아냈다.

심양 총영사관의 도움으로 여권을 발급받은 리 씨는 지난 8월 25일 귀국하자 마자 입원, 두 차례의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항공비와 채제비는 심양 총영사관이, 수술·입원비는 서울성모병원, 간병비와 기타 행정지원은 의협이 각각 맡았다. 손발이 척척 맞았다.

"처음 수술 받게 됐다고 연락왔을 때는 이게 무슨 소린가 했어요. 전혀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게다가 핀 없애는 수술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인공관절까지 해주시다니…."

▲수술후 출국하기 전 건강한 모습으로 의협을 방문한 리해순 씨.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왼쪽)과 수술을 주선한 외교통상부 이경덕 서기관이 자리를 함께 했다.

수술 이튿날 '걸어 보라'는 의사의 말에 설마했던 불안감은 어느새 꽂꽂해진 두 다리로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기쁨으로 바뀌었다. 기자에게 "한국 의사가 세계 최고인것 같아요"하길래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라고 말해주었더니 "아 그런가요? 그렇구나! 정말이구나!"하며 감격해 한다.

리 씨는 고마운 사람들이 갑자기 많이 생겼다. 요녕신문 기자와 이경덕 심양 주재 영사관(현 외교통상부 동남아과 서기관), 한영섭 식약관, 황태곤 서울성모병원 원장님과 인용 교수님 등 정형외과 선생님들, 밤낮으로 돌봐준 간호사들, 신재민 서울성모병원 사회복지 담당자, 의협 경만호 회장님과 김태학 대외사업국장님, 그리고 불안에 떠는 자신을 위해 농담을 건네며 따뜻하게 대해준 입원실 사람들….

중국에 자녀가 있는지 물어보자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먹고사는 일에 정신없이 매달리다 보니 유일한 자식인 딸 아이는 소식 끊긴지 오래라고. 중국에 돌아가면 남동생 집에 얹혀 살며 또 다시 고달픈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리해순 씨는 달라져 있었다.

"지금껏 세상을 원망하고 살았는데, 이제 미워하는 마음이 다 풀렸습니다. 고국에서 새 희망을 얻었어요. 은혜 입은 만큼 남한테 베풀면서 살래요. 이제 저한테 남은 것은 '사랑'밖에 없네요."

 

 
내원 당시 상태는 어땠습니까?

 관절염이 상당히 심한 상태로 내반병형도 매우 심했습니다. 그 상태로 더 방치됐다면 통증으로 인해 걸어다니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수술은 잘 되었나요?
저는 왼쪽 다리를 맡았고 오른쪽 다리는 우리 병원 고인준 교수님이 수술하셨습니다. 수술 결과는 굉장히 성공적입니다. 중국에 돌아가셔서 재활운동을 꾸준히 하면 추가 수술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리해순씨가 매우 기뻐합니다
표정이 무척 밝아졌더군요. 처음엔 걱정도 많이 하고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편하게 먹으신것 같네요. 환자가 기뻐하는걸 보니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의 환자인지.
굉장히 뜻깊은 수술이었습니다. 아직 젊은 분인데 고생을 워낙 많이 하신 분이라 측은한 마음이 많이 들었지요. 평소 진료봉사에 관심이 많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거노인 무료진료 같은데 자주 다니는데, 리영애씨를 만난 이후 부터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해순 씨에게 힘을 주는 말씀 한마디.
무슨 일을 하시든지 '해피'하셨으면 좋겠어요. 리해순씨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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