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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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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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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이혁(대한의사협회 고문(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총재)

이 세상에는 약 70억명의 사람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 70억명 사람들 중 똑같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는 것이 신기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사람은 있을지언정 똑같은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일란성 쌍생아의 경우도 그렇다. 비슷할 뿐이지 똑같지는 않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DNA도 다르다. 뭣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법률관계에서 나타나는 권리의무에는 반드시 귀속자로서 주체가 있어야 하며, 그 주체가 곧 사람이다. 사람은 '인(人)'이라고 표현한다. 본인(本人)·타인(他人)·상인(商人)들이 그 예이다. 따라서 권리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지위인 권리능력을 인격이라고도 한다.

사람에는 자연인(自然人)과 법인(法人)의 두 가지가 있다. 자연인은 살아 있는 모든 사람을 말한다. 자연인은 성·연령·종교·직업 기타 어떠한 것에 의하여도 차별 없이 평등하게 권리능력을 가진다. 모든 자연인에게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그 권리능력의 법위를 제한하지 않는 것이 근대법의 기본적 태도이다.

자연인은 살아있어야 하므로 출생부터 사망까지 생존하는 동안만 사람으로 인정된다. 법인은 법에 의하여 권리능력이 부여된 사람이다. 존속하는 모든 법인은 법인을 구성하는 사람 또는 재산의 번동과는 관계없이 권리능력을 가지지만 그 권리능력은 일정한 범위로 제한된다.

법인은 존속하여야 하므로 설립부터 청산종결까지 사람으로 인정한다.

사람에 관한 속담은 한없이 많다.

△사람과 곡식은 가꾸기에 달렸다 △사람과 그릇은 있으면 쓰고 없으면 못쓴다 △사람과 산은 멀리서 보는게 낫다 △사람나고 돈 났지 돈나고 사람났나 △사람마다 저 잘난 맛에 산다 △사람 살 곳은 골골이 있다 △사람 속은 천길 물 속이다 △사람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없다 △사람은 겪어 보아야 알고 물은 건너보아야 안다 △사람은 늙어 죽도록 배운다 △사람은 얼굴보다 마음이 고와야 한다 △사람은 조석으로 변한다 △삶은 지내봐야 안다 △사람은 때 묻은 헌 사람이 좋고 옷은 새 옷이 좋다 △사람이 세상에 나면 저 먹을 것은 가지고 나온다 △사람 한 평생이 물레바퀴 돌듯 한다.

사람은 생각할수록 신비한 존재인데 필자는 특히 두 가지에 대하여 관심이 많다. 그 하나는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고, 둘째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말이다.

먼저 똑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에 관하여 의견을 적어 본다. 똑같은 사람이 없고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은 조물주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때 과학만능 사상이 종교에 대한 생각을 앞지르기도 했지만 제 아무리 과학이 발달됐다 해도 이것은 불가능하다.

인간복제가 화제에 오르기도 하지만 어느 모로 보거나 허용될 수 없는 일이다. 필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룩한 힘이 작용한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곧 종교다. 필자가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종교와 과학은 상부상조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어쨌든 조물주의 힘이 아니고서는 각각 다른 사람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들은 자신이 원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아니다. 또한 태어났으면 언젠가는 사망하는데 이것도 자신이 마음대로 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서 현재 잘 지내고 있지만 내가 원해서 한국인으로 태어 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유럽의 백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아프리카의 흑인으로 태어난다. 과학의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조물주가 정해준데 따를 뿐인 것이다.

세계식량계획(WFP)의 보고에 의하면 현재 지구상에는 10억명의 기아 인구가 있고 한편에서는 16억명의 비만인구가 있다고 한다. 참으로 대조적인 숫자인데 누가 원해서 기아인구가 됐겠는가. 누가 원해서 비만 인구가 됐겠는가.

여기에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조물주의 커다란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나의 소견이다.

다음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에 관하여 살펴보자. 2500년 전 고다마 싯다르타(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태어나자 곧 일곱 발자국을 걷고 한 말이라는 전설이다. 사실 여부들 떠나서 필자는 이 말의 뜻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물론 범어를 중국어로 번역한 말인데 필자에게는 '유아독존'이 문제였다.

이 세상에서 나 하나만이 존귀하다는 뜻인데 불교라고 하는 큰 사상의 흐름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간단하게 해석할 문구가 아닌 듯 싶다. 여러 사람의 견해도 들어 봤다. 결국 자기만이 존귀하다든가 자기만이 훌륭하다든가 하는 뜻이 아니라는 해석은 납득할 만 했다.

삶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가치라는 것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며 누가 훌륭하고 누가 그렇지 않다던가, 누가 아름답고 누가 그렇지 안다던가, 누가 건강하고 누가 그렇지 안다는 등을 결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사람은 다 다른 존재이고 한 번 뿐인 인생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단 한 사람 뿐인 인간, 단 한 사람의 존재, 그리고 단 한 번 뿐인 인생으로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니 이 이상 존엄한 것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뜻이 이해된다.

사람은 태어날 때도 혼자이고, 사망할 때도 혼자이지만, 혼자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가족이나 그룹 또는 조직 속에서 상식에 따라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무리를 떠나서 마음대로 살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사회와의 약속에 따라 제재를 받기도 하고 처벌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최소한의 규칙을 지키면 된다. 때로는 자신의 욕망을 억제해야 되며, 다른 사람이 눈치도 봐야 된다. 조직 속에서는 규칙을 지켜야하지만 원래는 사람이란 무엇을 해도 좋은 것이다. 여기에 '유아독존'의 참뜻이 있다고 하겠다.

사람 중에서 가장 옳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온 과거를 더듬어 보면 이러한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간행물을 통해서 남을 모함하는 사람을 가장 비겁한 사람으로 본다. 필자의 일생 중에는 이러한 사람이 두 사람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을 때 말로 알려주는 것은 교양인으로서의 예의이다. 그런데 인쇄물을 통해서 남을 모함하는 사람은 '유아독존' 사상과는 크게 거리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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