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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시론 고 김병익 교수를 기리며

시론 고 김병익 교수를 기리며

  •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1.04.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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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의약분업 제도 문제점 개선 온 힘
보건행정학회 활동 활발…건사모 출범 주도

▲ 2001년 12월 17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재정파탄 어떻게 할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김병익 교수(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문경태 연금보험국장, 민주당 김성순 의원, 김병익 교수, 김명섭 보건복지위원장, 김창엽 교수(서울의대), 민주당 김홍신 의원이 주제발표와 지정토론을 맡았다(오른쪽부터).
2003년 8월 18일 새벽 산책길에 불의의 교통사고로 우리들의 곁을 떠난 김병익 교수의 8주기 기일을 몇 달 남겨놓고 있다.

대한의사협회가 정기 대의원총회에서 고인이 생전에 활동하였던 공로를 기려 공로패를 수여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인은 보건정책분야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열정으로 이 시대를 살았으며, 자신이 생각하던 바를 행동에 옮긴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상이다.

고 김병익 교수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 의료관리학을 전공해 의학박사를 취득한 후 의료관리학을 몸소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은 뜨거운 마음을 지닌 의학도였다.

필자가 김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한국보건행정학회를 창립할 무렵이다. 한국보건행정학회를 창립할 당시 김 교수는 한림대학교 사회의학교실의 조교수로 재직하면서 춘천에서 서울을 오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실무적인 일을 챙기면서 한국보건행정학회가 자랄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김 교수는 한림대 사회의학교실과 사회의학연구소를 중심으로 활발한 연구활동을 통해  학회지와 학술대회에서 좋은 논문들을 발표했고, 연구보고서 등을 통해 뛰어난 학문적인 성취를 이뤘다. 특히 의료인력 문제와 의료보험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김 교수는 한국보건행정학회 외에도 한국보건경제학회(현 한국보건경제·정책학회)에도 참여해 남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유일하게 의과대학 교수였던 그는 경제학이나 보건경제학을 전공한 교수들과 다른 관점에서 논쟁을 전개했으며, 문제 제기를 통해 학회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했다. 의료보험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만큼 한국사회보장학회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고, 대한예방의학회에도 참여했다.

김 교수가 의료관리학을 전공했던 관계로 현실 사회의 정책에 대한 관심도 지대했다. 건강보험정책심의회·대통령 직속 의료제도발전특별위원회·공적노인요양보장추진기획단 등 정부의 여러 자문위원회에 활발히 참여해 정책 조언과 대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의 활동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필자와 같이 조직하고, 운영했던 건강·복지사회를 여는 모임(건사모)이다. 건사모는 1999년 12월 30일 필자와 함께 김병익·문옥륜·변재환·사공진 교수 등이 모여 WTO체계 이후 변화하는 세계 경제동향과 함께 보건복지분야의 변화 추세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출범했다. 주요 국가들의 보건복지분야 변화의 흐름을 관찰하면서 우리나라도 외국에서와 같은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추진체가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당시 보건복지분야의 세계적인 변화로 우리들의 관심을 끈 것은 유럽 각국들이 고령화와 장기적인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복지국가의 종언이라는 화두가 등장하고,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완전 적립방식을 모색하는 변화였다. 의료분야는 효율성 제고를 위해 민영화·분권화·경쟁 등의 논리에 따른 개혁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1997년 6월 연금제도 개혁을 위해 총리실 산하에 연금제도개선기획단을 구성, 적립방식 도입을 논의했으나, 1998년 2월 DJ 정권이 집권하면서 적립방식은 재분배기능이 제약된다고 해 무산됐다.

의료보험제도는 재분배를 강화하기 위해 급속하게 통합의 길로 치닫게 됐다. 의료보험 통합은 세계적인 흐름과 역행할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의 소득파악이 안돼 자칫 근로자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단일 보험제도를 통한 국가 독점적 제도가 갖게 될 비효율을 생각할 때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제도라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의료보험 통합이 초래할 문제점을 국민에게 알리고, 통합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모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은 끝에 2000년 4월 28일 건사모를 창립했다.

▲ 2000년 4월 24일 은행회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건강복지사회를 여는 모임 창립 모임 및 기념세미나. 이규식 교수(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의 뒷편 왼쪽 첫 번째 서 있는 이가 김병익 교수다.
김 교수는 건사모가 창립되자 온 힘을 다해 우리나라 의료보장제도 발전의 대안 제시를 위해 노력했다.

2000년 7월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이 강제 시행된 이후 2001년 건강보험 재정 파탄이 일어나자 김 교수의 일은 더 늘어났다. 건강보험 통합과 의약분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를 시정하자는 요구를 줄기차게 했지만, 집권층의 생각이 달랐다. 필자와 김 교수의 외침은 외로운 요구에 그치고 말았다.

필자는 건강보험이 통합되고 난 이후 건강보험 분야에서 정부위원회 참여를 외면했지만 김 교수는 꾸준히 정부위원회에 참여해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김 교수의 뜨거운 정열은 이른 아침 전화로 시작됐다. 전화 통화의 대상은 주변의 동료 뿐만 아니라 정부의 고위 관료, 국회 여ㆍ야 의원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필자에게는 늦은 밤이나 새벽을 가리지 않고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울분을 토로하던 당시의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2003년 8월 김 교수가 우리의 곁을 떠난 이후 건사모 활동은 한동안 생기를 잃고, 필자는 여러 현안 과제를 논의할 주요 상대를 잃어 외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8월 필자는 건사모를 비롯해 여러 단체를 모아 건강복지공동회의를 결성,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2008년 10월 15일에는 건강복지공동회의 산하에 건강복지정책연구원을 사단법인으로 인가받아 보건복지 분야의 정책 대안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의 지식이 모자라고, 노력이 부족해 아직도 건강보험이나 의약분업 제도의 문제점들이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만약 김 교수가 살아 있다면 오늘의 많은 문제를 개혁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고인의 빈 자리가 얼마나 크고 넓었던가를 새삼 생각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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