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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名의 전쟁' 병의원 이름 함부로 쓰지마라

coverstory '名의 전쟁' 병의원 이름 함부로 쓰지마라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0.10.2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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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사실 모르고 명칭썼다 손해 막심
상표권등록 꼭 확인…관련법도 잘 살펴야

Cover Story

병의원에 '네이밍(naming)' 열풍이 불고 있다.

네이밍은 상품명이나 서비스명을 만들어 붙이는 작업을 뜻하는 마케팅 용어. 한 연구에 따르면 네이밍이 해당 상품·서비스의 인지도와 매출 등에 미치는 전체적인 영향이 약 30%에 이른다고 한다.

일반 업계에서 네이밍, 즉 브랜드 네이밍은 여러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이미 핵심 마케팅 수단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1970년대까지 미국 신용카드 시장을 주름잡았던 회사는 마스터카드의 전신인 마스터차지(MasterCharge).

만년 2위에 머물던 뱅크아메리카드(BankAmericard)가 1위 자리를 꿰차게 된 것은 기업명을 'VISA'로 바꾼 뒤부터였다. 발음이 쉽고 기억이 오래가며 입국허가증과 동일한 철자를 사용함으로써 글로벌한 뉘앙스까지 겸비, 소비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은 것이다.

국내에선 '참眞이슬露'가 브랜드 네이밍의 전설로 회자된다. 출시 6개월 만에 1억 병을 돌파하는 최단 기간 판매기록을 세우고, 2002년 한 해 동안 1조 원의 매출을 올린 것은 기발한 이름 덕분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톡톡 튀는 이름 하나를 짓기 위해 엄청난 투자도 마다하지 않고 있지만, 의료기관이 네이밍에 눈을 뜬건 요즘 들어서다.

'좋은 이름' 하나가 매출 30% 늘려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의료기관, 특히 의원급 의료기관의 명칭은 '홍길동내과의원' 처럼 개설자의 이름 옆에 종별 명칭을 써붙이는게 보통이었다.

그러나 환자 유치 경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인터넷 등 홍보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병의원 마케팅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특히 2007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료광고 규제가 대폭 풀리고 지난해부터 해외환자 유치가 허용되면서 네이밍은 의료 마케팅의 주요 화두가 됐다.

전문가들은 네이밍의 기본 원칙으로 ▲상품의 특징·이미지를 떠올리게 해 줄것 ▲간결성 ▲차별성 ▲청각적 음감 ▲시각적 명쾌함 ▲기억이 잘 될 것 ▲발음의 용이성 ▲친근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들 조건을 충족하는 이름은 아무거나 가져다 써도 되는 것일까?

이미 사용중인 명칭인지 확인해야

우선 다른 병의원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이름인지를 점검해야 한다. 사용중이라 하더라도 특허청에 상표등록을 하지 않았다면 관계없다.

국내 특허제도는 '선출원주의', 즉 상표등록을 먼저 한 사람에게 법적 사용권한이 부여된다. 따라서 이미 다른 병의원이 사용하고 있는 명칭이라도 상표 등록만 돼있지 않다면 먼저 등록하고 사용할 수 있다.

본지가 특허청의 특허정보검색 서비스를 이용, '병원'과 '의원'을 키워드로 상표명을 검색한 결과 각각 6418개와 2051개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들이 모두 직접적인 병의원 명칭으로 등록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 수의 병의원 명칭이 법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사실은 충분히 유추 가능하다.

한 브랜드네이밍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이미 대중에 잘 알려져 있는 의료기관의 상당 수가 상표등록을 마친 상태"라며 "이는 쉽게 말해 '좋은 이름' 대부분이 선점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의료계 안팎에서 '잘 만든 이름'으로 손꼽히는 '속편한내과'. 2004년 4월 특허청에 상표가 등록됐다. 이후 10건이 넘게 '속편한'으로 의료기관 상표 등록 신청이 접수됐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출신대학 명칭 쓰는 것도 조심

'연세○○의원', '이화○○의원' 처럼 자신이 졸업한 의대의 이름을 의료기관 명칭에 그대로 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국내 대학교 명칭과 마크 등 상징은 모두 상표등록이 돼 있어 함부로 도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지금까지 해당 대학은 졸업생에 대한 일종의 배려차원에서 명칭 도용에 법적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이같은 관용이 언제까지 방패막이가 될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제로 서울대학교는 올해 6월 모교 출신 동문이라 할지라도 사용료를 내야만 '서울대' 상표를 사용할 수 있도록 내부 규정을 개정했다. 고려대학교도 최근 상표 무단 도용에 대한 내부 규정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들의 이같은 변화는 상표권에 대한 엄격한 보호조치가 대학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고, 이는 곧 동문의 이득으로 되돌아 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외국의 대학 명칭을 쓰는 것도 주의해야 한다. 2006년 3월 미국 하버드(Harvard) 대학은 국내 '하버드치과'를 상대로 우리나라 법원에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미 2004년 '하버드' 상표권을 출원해 보유하고 있으며 상표권 권리범위에 의료업이 포함돼 있으므로 무단 도용에 해당한다는 것. 소송 당한 치과원장은 하버드 치과대학 졸업생이다.

하버드의원, UCLA의원…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은 만약 하버드대학이 국내 상표권 등록을 하지 않았을 경우 먼저 등록하고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지 여부다.

'하버드치과'원장의 사례가 답을 주고 있다. 이 원장은 하버드대가 국내 특허출원을 낸 시점보다 무려 9년이나 앞선 1995년 특허청에 '하버드 치과 의원'이라는 상표권을 출원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유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주지·저명상표)에 대해서는 상표등록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대학 뿐만 아니라 외국의 유명 브랜드를 의료기관 명칭에 사용하는 문제는 앞으로 의료시장 개방의 확대와 더불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현재 국내에는 하버드 뿐만 아니라 'UCLA'등 외국의 저명 대학 명칭을 사용한 의료기관이 적지 않다.

써도 되는 이름, 안되는 이름

상표권 문제를 피해간다고 해서 자유로운 네이밍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법과 보건당국의 유권해석이란 장벽이 버티고 있다.

우선 의료법 제42조는 '의료기관의 종류에 따르는 명칭 외의 명칭은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료법상 의료기관의 종별 명칭인 종합병원·병원·의원 등 외에는 쓰지 못한다는 것. 예를 들어 '여성전문병원'을 의료기관 명칭으로 쓸 수 없다.

대전지방법원은 2006년 12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M산부인과의원의 항소를 기각했는데, 병원 명칭 앞에 붙인 '여성전문병원'이 의료법상 종별명칭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종별 명칭과 혼동을 주는 이름도 쓸 수 없다. 의료법 시행규칙 제40조는 의료기관의 종류 명칭과 혼동할 우려가 있는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메디컬센터의원'이 좋은 예다.

보건복지부는 2006년 이 명칭에 대해 사용 불가 해석을 내렸다. 메디컬센터는 의과대학·부속병원을 의미하므로 의료기관의 종별 명칭과 유사·중복될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크리닉' 역시 종별 명칭이 아니므로 의료기관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다. '크리닉' 사용의 위법성에 대한 근거는 1992년 대법원 판례로도 남아 있다.

이밖에 'e~ ○○병원' 처럼 'e~'를 붙이거나 '에스테틱'을 명칭에 붙여 사용하는 것 역시 각각 대법원 판결과 복지부 유권해석을 통해 '사용 불가'된 상태다.

'척추'는 안되고 '측추'는 된다?

시행규칙은 또 '특정 진료과목 또는 질병명과 비슷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피부비뇨기과','신경통증'이란 표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모두 사용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져있다.

신체의 특정 부위 명칭을 사용하는 것도 안된다. '척추'·'다리'·'항문' 등을 쓸 수 없다. 이는 신체명이 특정 질병을 쉽게 유추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신체명 표기 금지 규정은 마음만 먹으면 피해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과 명칭에 '측추병원'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민원에 "사용이 가능하다"고 회신했다. 측추와 척추가 비록 발음은 비슷하지만 한문으로 측추(測錘), 즉 '저울추와 같이 바른기준을 가지고 진단·치료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막을 이유가 없다는 것.

'무룹병원'(※'릎'이 아닌 '룹') '털털한피부과'·'코코성형외과' 등이 현행 규제를 절묘하게 피해간 사례로 유명하다.

끊이지 않는 병의원간 '명칭 싸움'

척추질환 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은 지난해 대전W병원·울산W병원 등을 상대로 50억원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우리들'과 발음이 유사한 명칭을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현행 상법 제23조는 '누구든지 부정한 목적으로 타인의 영업으로 오인할 수 있는 상호를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며, 피해를 당한 사람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부정경쟁방지법 역시 '국내에 널리 인식된 타인의 성명·상호·표장 그 밖에 타인의 영업임을 표시하는 표지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을 사용해 타인의 영업상의 시설 또는 활동과 혼동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올해 8월에는 '척병원' 분쟁이 눈길을 끌었다. 서울 소재 'A척병원'와 'B척병원'간의 서비스표권침해금지 청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11부는 '척병원'이란 명칭의 독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척'이라는 표현은 척추질환을 주로 진료하는 병원임을 직감하게 하는 '기술(description)적 표장'이란 이유 때문이다. 현행 상표법 제6조 제1항 제3호는 '상품 혹은 업종에 대한 기술적 표장은 상표 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두륜 변호사
'예치과' 소송도 의료계에서 제법 유명한 명칭 분쟁 사례다. 특허법원과 대법원을 통해 '예'라는 브랜드의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현두륜 의료전문 변호사(법무법인 세승·사진)는 "의료기관 명칭이나 상표권과 관련된 소송은 별도로 통계가 나와 있지는 않지만 숫적으로 매년 배 이상씩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 변호사는 "최근에는 비의료인이 의료기관 명칭을 서비스표로 등록하면서 의료인에 대해 사용 금지를 요구하거나 동업관계 해지 이후 동업자들 간의 병원 명칭 사용에 관한 다툼, 네트워크 소속 병원들 사이의 분쟁 등 내용도 다양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명칭 분쟁,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정동준 변리사
전문가들은 '상표 검색'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정동준 대한변리사회 공보이사<사진>는 "병의원 명칭을 정할 때 유사한 상표가 있는지 검색할 필요가 있다"며 "검색 없이 곧바로 병원명을 정하면 나중에 상표권침해소송을 당한 후 간판을 내려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검색은 특허정보검색서비스<www.kipris.or.kr>에서 무료로 할 수 있다. 간판을 비롯해 각종 서류 등에 '등록 제XXX호',  , 'Reg' 등을 표기함으로써 해당 병의원 이름이 등록된 상표임을 인지시키는 방법도 권장한다.

이와 함께 이미 상표권을 획득했거나 출원 중이라도 다른 병의원의 출원 및 사용 현황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 특히 상표 등록만 받아놓고 사용하지 않을 경우 나중에 '불사용취소심판'에 휘말릴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반대로 불사용취소심판 청구를 이용해 원하는 명칭을 소유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점찍어 놓은 상표가 이미 다른 사람의 소유로 돼있더라도 해당 상표가 오랜 기간(상표법상 3년) 사용되지 않고 있다면 행정심판을 통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오렌지성형외과'가 모범적인 사례. 2001년 상표등록을 위해 사전 검색을 해 본 결과 대기업 계열의 한 광고회사가 '오렌지'란 명칭을 모든 업종에 대해 선점한 상태였다.

오렌지성형외과측은 이 회사가 3년동안 해당 상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내 상표불사용취소심판을 청구했으며 결국 받아들여져 원하는 이름을 갖게 됐다.

'하버드○○의원'이 상표권 출원을 거부당한 사실도 역으로 생각하면 득이 될 수 있다. 현두륜 변호사는 " 등록하지 않은 의료기관 명칭도 사회에 널리 알려져 유명해지면, 부정경쟁방지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따라서 주지·저명성을 인정받기 위한 증거를 모으고 홍보를 많이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분쟁에 휘말렸을 때 대처 방법

타인으로부터 나의 서비스표, 즉 병원 명칭 독점권을 침해당했을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민사적인 방법과 형사적인 방법을 전부 사용할 수 있다. 민사적인 방법에는 사용금지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청구가 있고, 형사적으로는 상표법 위반으로 고소할 수 있다.

앞서 '오렌지성형외과'의 경우 처럼 내가 원하는 명칭이 이미 서비스표 등록이 돼 있다고 하더라도 해당 서비스표에 등록 무효 또는 취소사유가 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현 변호사는 "특정 진료과목이나 신체 부위를 의미하는 용어의 경우에는 서비스표 등록이 되더라도 나중에 식별력이 없어서 무효가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비의료인이 의료업에 대한 서비스표 등록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

의료법상 비의료인은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고, 의료기관이 아니면 의료기관 명칭이나 유사한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돼 있으므로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2008년 5월 특허청은 비의료인인 김 모씨가 '일○의원'으로 출원한 상표등록 신청에 대해 거부결정을 내렸다.

당시 대한의사협회가 "비의료인의 의료기관 명칭 상표등록이 허용될 경우 보건의료 질서의 혼란, 국민 현혹 등 피해가 우려된다"며 강력히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 진 것이다.

현두륜 변호사는 "병의원 이름을 짓기는 쉽지만 나중에 고치기는 매우 어렵고, 명칭을 잘못 지었다가는 오랫동안 쌓아온 명성과 인지도가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며 "의료기관 명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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