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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없는 마을에서

국경없는 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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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0.0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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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철(경기 안산·유소아청소년과의원)

▲ 유인철(경기 안산·유소아청소년과의원)
국경없는 마을 안산시 원곡동. 우리나라로 돈을 벌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단 가까이에 있는 지역에 자리를 잡으면서 생겨난 이름이다. 간자체(簡字體) 한문이나 꼬불꼬불한 아라비아 간판이 즐비하고, 우리와는 얼굴 모양과 쓰는 말이 다른 사람이 더 많아 마치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분위기가 나는 동네다.

그 곳이 처음부터 국경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면 생활환경이 나빠질 것을 우려한 원주민과 외국인 사이에, 중국·베트남·필리핀·방글라데시·네팔·파키스탄 등 출신 지역이 서로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 높은 국경이 가로 놓여 있었다.

조용할 날이 없었고 우범 지대였다. 하지만 지자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의 노력으로 다르지만 같이 살아가는 다문화 공동체 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명절이 되면 자기들의 고유한 옷을 차려입고 나와 각자의 전통공연을 선보이며 다함께 어울린다.

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고 원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면서 되레 환자가 줄어들까봐 걱정을 했었다. 그네들이 우리 병원에 오는 것도 탐탁스럽지 않았었다. 후진국 사람들이라는 선입견이 있는데다가 말이 잘 안통하고 어렵사리 진료를 해도 의료보험이 없어 진료비를 제대로 받기 힘들어서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언어소통과 의료보험문제가 개선돼 이제는 진료 중에 돈 많이 벌었느냐? 일은 괜찮으냐? 애인은 있느냐? 며 이런저런 얘기까지 할 정도다. 그렇지만 여전히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나 혼자 그들에게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어쩔 수없는 한계가 존재한다. 의약분업으로 약은 약국에서 타야하기 때문이다.

선이가 병원에 들렀다. 엄마와 할머니도 함께였다. 골수이식을 받아 건강을 회복하고 잃어버릴 뻔한 엄마까지 되찾은 선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할머니가 묵직한 수박을 건네주며 연신 고맙다고 하셨다. 나는 짐짓 별거 아니라고 했지만 흐뭇한 기분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커다란 눈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5살 선이. 다문화 가정으로 엄마가 베트남에서 왔다. 편도선 비대증이 있어 툭하면 감기에 걸렸고 치료해도 잘 낫지 않았다. 흔히 말하는 감기를 달고 사는 아이다.

목이 부어 열이 나고, 열이 떨어질 때쯤이면 기침을 하고, 그러다가 축농증이나 중이염이 생기고, 치료가 끝났나 싶었는데 한 달이 못되어 다시 온다. 왜 또 왔느냐고 하면 "그러게 말이에요.

아주 병원에서 살아야 될 것 같아요. 으이구 미워!" 하면서 할머니가 머리에 알밤을 먹여도 눈을 찡그리며 웃는 모습이 맑기만 하다.

어떤 때는 엄마와 어떤 때는 할머니와 둘이서 아니면 엄마랑 할머니랑 나란히 병원엘 오곤 했는데 어느 때부턴가 선이의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엄마 다르고 할머니 다른 것을 알게 됐다. 엄마는 기침이 심하고 코가 많이 나온다고 하면 할머니는 기침을 약간하고 코가 많이 막힌다는 식이었다.

그래서 지난번에는 저러저러 하다고 했는데 왜 이번에는 이러이러 하다고 다르게 말하느냐고 물으면 엄마는 할머니가 모르는 거라 했고 할머니는 엄마가 한국말을 잘 몰라서 그런 거라며 서로에게 불만스럽다는 듯이 대답했다.

셋이서 나란히 오는 일이 없어지고 엄마와 오는 일이 뜸해지다가 결국에는 할머니 하고만 다녔다. 엄마는 왜 안 보이냐고 했더니 할머니의 표정이 굳어지며 집에 안 들어온 지 한참 됐다고 하는 게 아닌가? 아이가 간혹 자기를 엄마라 부르기도 한다면서 아들을 보면 속상하고 손녀를 보면 답답하다고 했다.

그렇게도 명랑하고 까불까불하던 아이가 최근 들어 시무룩하고 인사도 잘 하지 않아 아파서 그러나보다 여기고 있었는데 그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즈음 선이는 가끔씩 코피를 흘렸다. 감기를 자주 앓거나 축농증이 있으면 코의 점막이 헐어 흔히 나타 날 수 있는 증상인지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다리 여기저기에 갑자기 피멍이 들었다며 왔다. 아이가 유난히 힘이 없고 창백해 보였다.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예상대로였다. 피검사를 해보니 심한 빈혈에다 혈소판이 아주 많이 떨어져 있었다. 종합병원으로 보내야 했다. 몇 달이 지났어도 선이는 퇴원을 하지 못했다.

"선이를 진료하던 소아청소년과입니다. 상태가 궁금해서요. 혹시 백혈병은 아닌가요?"
"재생불량성빈혈입니다. 약을 주고 있는데도 혈소판 수치가 잘 안 올라가네요."
"그래서 퇴원을 못하는군요. 골수검사는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안 좋아요"
"그러면 골수이식을 생각해보셨나요?"
"골수이식을 위해 아빠와 할머니를 검사했는데 적합하지 않더군요. 기증자를 찾고 있습니다."
"엄마는요?"
"엄마요? 없다고 하던데?"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엄마에게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을까? 혹시 발신번호를 보고 선이 엄마가 안 받은 것은 아닐까? 골수이식을 못하면 선이는?

그냥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다행이 컴퓨터에 선이 엄마의 진료내역이 남아있어 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통화가 됐다.

"선이가 지금 아파서 몇 달 째 입원하고 있습니다. 골수기능이 떨어져서 심한 빈혈이 생기고 온 몸에 피멍이 드는 병입니다. 치료를 해도 별 차도가 없고요. 골수이식을 받아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데 맞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녀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커다란 눈이 엄마 꼭 닮은 거 아시지요? 할머니를 보고 엄마라고 부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내 가슴이 다 아프더라고요. 엄마가 유일한 희망일지 몰라요. 엄마잖아요? 아이를 생각해주세요."

"선이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선이가 아픈 것을 모르고 있더군요. 어떤 병인지 설명을 해줬습니다. 엄마가 유일한 희망이라며 꼭 다녀가라고 하니 싫다고 하지는 않더군요.

할머니가 다시 한 번 전화해보세요. 이번에는 아마 받을 겁니다. 서운한 감정은 나중에 푸시고 우선은 아이부터 치료를 해야지요."

그 후로 선이네 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속속들이는 알지 못한다. 행복한 모습으로 찾아온 것을 보면 좋은 일만 있었음이 분명했다.

우리나라에서 몇 년을 일하다가 자국으로 돌아간 외국인 노동자들이 반은 열렬한 친한파가 반은 극렬한 반한파가 된다고 한다.

이왕이면 그들 모두가 열렬한 친한파가 돼 자연스레 우리나라를 위한 민간 홍보사절 역할을 하고, 어렵게 선택하고 어렵게 이룬 다문화 가정이 우리사회에 좀 더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제도가 뒷받침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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