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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에서 먹는 도시락도 '리베이트'

학술대회에서 먹는 도시락도 '리베이트'

  • 김은아 기자 eak@doctorsnews.co.kr
  • 승인 2010.05.1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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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제약협회가 제약회사의 의약품 리베이트 수수 여부를 판단하는 세부적인 실무 지침을 공개했다. 10일 협회가 배포한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 및 세부운용기준 개정 FAQ'에 따르면 요양기관과 개별 의료인은 물론 공인학회 등 순수 학술단체에 대한 제약사의 후원도 크게 제한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말 새로 바뀐 의약품 거래에 관한 공정경쟁규약을 발표했으며, 제약협회는 3월 세부운용기준을 제시했다. 이번 FAQ는 제약사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을 중심으로 실제 규약 집행 시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의협신문>은 제약협회가 공개한 57개 질문과 답을 재구성해 앞으로 학회와 요양기관에 대한 후원방식이 어떻게 바뀌게 되는지를 살펴봤다.

학술상도 심의 의무화…위성심포지엄도 횟수 제한

이번 공정경쟁규약에 따르면 학회 등에서 주최하는 학술행사에 '시상' 부문을 지원하는 경우(예 : OO학술상, OOO연구상)도 기부행위에 포함된다. 여기서 기부행위에 포함된다는 의미는 제약사가 임의로 학회에 학술상 집행에 필요한 기금을 지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제약사가 학술상을 후원하려면 제약협회 산하에 구성된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회에 학술상의 개요와 목적 등에 대한 자료를 제출해 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기부금 집행 이후 제약사가 기부관련 사실과 입증할 수 있는 내역을 협회에 보고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제약사가 전문지와 연계해 보건의료전문가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공모전 등은 규약에서 명확하게 금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것으로 평가될 수 있으므로 개별적인 법률검토를 받도록 권고했다.

한편 학술대회에서 제약사가 보통 청중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면서 학술적인 내용이나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는 '위성심포지엄', '런천심포지엄' 등도 참석 횟수가 제한된다.

제품 자체가 아닌 제품과 관련된 질병에 대해서만 설명하더라도 명칭과 방법을 막론하고 '제품설명회'로 해석되기 때문에 동일한 보건의료전문가가 2차례 이상 참석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제품에 중요한 변화가 생긴 경우 제외).

이제 학회장 입구에서 이름과 소속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이전에 동일 제품의 설명회에 참가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면 당장 문전박대를 당하는 일도 벌어질 수 있다.

혹시 '내 개인정보가 어딘가에 남겨지는 것이 싫다'는 사람이 있다면 아예 제품설명회에 갈 생각은 말아야 한다. 제품설명회 참석자 명단은 5년간 제약협회가 보관하게 된다.

그렇다면 '제품설명회'라고 보는 기준은 무엇일까? 제약사가 요양기관을 방문해 제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다른 요양기관의 보건의료전문가가 동행했을 경우, 2개 이상 요양기관에서 2명 이상 보건의료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제품설명회라고 간주한다. 같은 재단 아래 여러 병원이 있는 경우는 각각의 계열병원을 1개의 개별기관으로 본다.

▲ 이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 없음

부스비 최대 600만원…광고비는 200만원

학술대회 부스에서 신제품 출시를 기념해 진행되는 경품 행사는 사라질 전망이다.

제약협회는 학술대회에서 진행하는 경품행사의 경우 공정경쟁규약에서 허용한 금품류 외에는 의료인에게 제공할 수 없다고 봤다. 허용되는 금품의 종류는 브랜드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물품(볼펜·포스트잇 등) 또는 소액의 기념품(우산·가방 등)으로 사회통념상 인정되는 범위의 기념품과 판촉물이다.

부스도 마음대로 설치할 수 없다. 부스는 한 제약사 당(품목당이 아님) 최대 2부스만을 설치할 수 있으며, 금액은 기본 200만원에서 학회의 성격·규모·참가인원에 따라 객관적인 필요성이 인정될 때는 최대 300만원까지 가능하다. 부스비의 상한선은 학회의 규모나 기간, 참석자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학술대회 초록집이나 인쇄물에 대한 광고단가도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책자의 앞표지와 뒷표지는 각각 250만원, 앞표지의 안쪽은 150만원, 내지는 100만원이 상한선이다. 이마저도 요양기관에서 제작하는 책자의 경우 상한선이 더 내려간다.

학술대회와 관련해 온라인 광고를 진행하는 경우도 이러한 상한선을 지켜야 하며, 의학적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매체를 제외하고 친목도모 등을 위한 웹사이트에는 광고비를 후원할 수 없다.

학회나 협회 등 의약학 관련 학술·연구단체에 제약사가 특별회원 또는 기관회원으로 가입해 회비를 납부하는 것도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경우로 해석될 수 있어 금지된다.

외자사 본사 후원도 제한…국제학술대회 치명타

학회가 입게 될 치명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한국 의학의 수준과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제 학술대회 유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국제 학술대회에 적용되는 기준은 국내 학술대회와 동일하게 엄격하다.

예를 들어, 국제 심포지엄 등에 다국적제약사의 본사가 지원하는 행위가 제한된다. 이번 규약은 국내 제약사에 한정되지만, 한국지사와 해외본사가 경제적 동일체라고 본 것이다.

또한 국내 의약학 기관·단체가 주최가 돼 국내에서 주관하는 국제 학술대회는 '국내 학술대회'로 해석되기 때문에 부스와 광고비 후원금의 상한금액을 준수해야 한다.

문제는 국제 학술대회를 국내 학회가 주관한다고 해도 스폰서십의 규모와 기준 등이 이미 상한금액 이상으로 책정돼 있는 경우다. 이에대해 제약협회는 공정경쟁규약 상 부스비와 광고료가 한정되므로 메인스폰서 참가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었다.

친목 단체 기부금 원천봉쇄…지역의사회도 난처

그나마 학회는 후원금 사정이 나을 지도 모르겠다. 여러가지 제한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후원금을 '받을 수는' 있다.

세부운용기준에서 규정된 제약사의 기부 허용대상은 ▲보건복지부에서 설립 허가한 의·약학 관련 학술·연구단체 ▲대한의학회 소속 회원 학회 ▲협회가 제시한 9개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학술·연구단체 ▲9개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공정경쟁규약심의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단체 등이다.

협회가 제시한 9개 조건은 △의약학 연구목적으로 조직된 비영리단체 △운영회칙이 있는 단체 △운영회비를 정기적으로 받고 있을 것 △회원이 소속된 요양기관과 별개로 수입과 지출에 관한 재무·회계 규정을 갖고 있으며, 수입은 연구활동을 위해서만 사용할 것 △총회·이사회·감사 등 운영조직이 있을 것 △회장·이사·감사 등의 임원 및 회원을 두고 있을 것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 모임을 통해 의·약학 연구활동을 하고 있을 것 △의·약학 연구활동을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간행물이 있을 것 △특정 요양기관에 종속돼있지 않으며, 공익기금의 수혜자가 불특정 다수일 것 등이다.

이쯤되면 눈치챘겠지만, '의학'이나 '연구'와 관련이 없는 단체는 아예 제약사로부터 기부금을 지원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산악회 등 각종 동호회와 지역의사회 모임, 개별 요양기관에 소속된 단체 등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겠다.

다만, 공개강좌·당뇨캠프·검진프로그램 등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요양기관의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것은 허용되는데, 제약사가 후원단체를 지정할 수 없도록 했기 때문에 실제로 제약사의 후원이 원활하게 이뤄질 지는 미지수다.

한편 요양기관이 주최하는 학술대회나 연수강좌 등은 식음료 후원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대학병원이 개최하는 연수강좌에 갈 때는 집에서 도시락을 싸 가져가야 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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