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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경제적 이유 낙태 허용" 사회적 합의 접근

"사회·경제적 이유 낙태 허용" 사회적 합의 접근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0.03.1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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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토론회서 의료계·법조계·시민단체 공감...허용 시기 '임신 24주 이내' 대세

▲ 민주당 전현희 의원 주최로 17일 열린 '낙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주제 토론회에서 대한산부인과 의사회 장석일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선경 기자>
낙태 허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 허용 시기는 임신 24주 이내로 정하고, 산모의 건강 등 의학적 사유 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황까지 낙태 사유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으로 중지가 모아지고 있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 주최로 17일 열린 '낙태,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 주제 토론회에서 의학계·법조계·시민단체 참석자들은 무의미한 찬반 논쟁을 중단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발제를 맡은 장동익 교수(공주교대 의료윤리학)는 "낙태의 허용과 금지의 본질적 논쟁은 소모적"이라며 "최근의 논의는 낙태가 정당한 상황 및 시점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OECD 국가 대부분 '사회경제적 낙태' 허용
장 교수는 낙태의 사유를 ▲태아가 산모의 건강과 생명을 해칠 위험이 있거나 장애아를 임신한 경우 등을 유형으로 하는 '치료적 사유'와 ▲미혼모 임신, 경제적 부담 등'사회적 적응 사유'로 분류했다. 특히 심각한 중증 장애아 등 출생 직후 부터 지나치게 많은 비용이 소요될 태아의 경우 출산가정이 사회적 약자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며 경제적 사유의 논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성년자, 미혼자의 임신 역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므로 낙태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료계도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 허용에 찬성했다. 장석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은 "우리나라 인공임신중절 가운데 4.4%만이 합법이고 나머지는 불법이며, 불법 중 90%는 사회·경제적 이유"라며 현실을 반영한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여성계와 청소년계는 매우 적극적인 지지 입장을 밝혔다. 정춘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인권위원회 위원장(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은 "OECD 30개 국가 중 23개국에서 사회·경제적 낙태를 인정하고 있다"며 "낙태를 강력히 금지한다고 해서 낙태율이 낮아지지 않는다는 외국의 경험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사회경제적 여건 조성을 전제로 낙태 전면금지를 요구하는 일부의 입장에 대해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반인권적 주장"이라고 비난했다.

복지부 "사회적 사유 허용절차 마련"
이명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관장도 "임신한 십대 청소년의 양육비 등 경제적 어려움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불법낙태는 불가피하며, 이를 막을 경우 자살이나 유아유기 사건 등 충격적인 사회적 문제가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관장은 "임신한 십대 여성의 학업과 진로, 경제적 이유 등으로 임신중절수술을 원할 경우, 안전하게 의료적인 서비스를 받아 후유증이 없도록 '선택적 낙태 허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조계도 입장을 함께 했다. 변창우 변호사(법무법인 퍼스트)는 "외국에는 사회·경제적 사유에 의한 낙태를 어느 정도 기간까지 허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입법례가 존재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 부분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할 시점이다"고 밝혔다.

정부 역시 사회·경제적 낙태 사유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책 마련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원희 보건복지가족부 가족건강과장은 "임신·출산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사회·경제적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며 특히 "강간·준강간, 혈족·인척간 임신 등 사회적 사유에 대한 세부허용절차 마련을 위해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민주당 전현희 의원. <김선경 기자>
허용시기? '임신 24주 이내' 입모아
낙태의 허용 시기에 대해 의료계는 '임신 24주 이내'를 제시했다. 박형무 중앙의대 교수(대한산부인과학회 대변인)는 "현대의학의 발달로 출생 후 태아의 모체외생존가능성을 감안할 때 임신 24주까지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매우 구체적인 대안도 제시됐다. 산부인과 의사회 장석일 부회장은 △임신 12주 이내의 경우에는 본인의 동의만으로도 허용하고 △유전학적 심각한 기형, 전염성 질환, 강간, 혈족·인척간 임신,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은 산부인과의사와의 상담을 거쳐 임신 12~24주이내에 허용하며 △24주 이후의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임산부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긴급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로 허용하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을 제시했다.

정춘숙 위원장도 이에 찬성하되 12~24주까지의 낙태 사유에 '사회·경제적 이유'를 포함시키고, 특히 오스트레일리아, 노르웨이 처럼 미성년자의 경우에는 임신 2주기(4~6개월)까지 사회·경제적 이유의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동익 교수는 12주내 모든 낙태를 허용하고, 그 이후는 치료적 경우만 허용하거나 12~24주 이내의 모든 낙태 수술에서는 건강상의 문제가 아닌 경우 그 사유를 증명하는 두 가지 방안을 제안했다.

'배우자의 동의'...남아있는 쟁점들
사회·경제적 이유의 낙태를 허용할 경우 가장 문제되는 것은 그같은 사유를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장동익 교수는 "증명의 방법은 공신력 있는 기관의 '상담'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상담의 주체와 비용의 문제가 뒤따른다. 장 교수는 "상담자의 자격으로 의료인과 법조인이 거론되고 있으나 현생 사회기관의 상담기관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상담비용을 조달하는 방안에 대해 변창우 변호사는 국민건강보험 및 일부 본인부담으로 충당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낙태에 대한 배우자의 동의 필요 여부도 앞으로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여성계는 '필요 없다'는 확고한 입장이다. 정춘숙 위원장은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미래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가지므로 배우자의 동의는 불필요하다"고 못박았다. 미혼 여성의 경우 상대 남자와 의견 조율에 시간을 허비하다 임신후기로 넘어가기 쉬우며, 기혼여성의 경우에는 배우자가 낙태를 빌미로 이혼을 유리하게 진행하려는 등 악용될 소지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낙태 처벌론은 고매한 이상세계 추구하는 것"
이날 토론회는 찬반 갈등 상태에 머물러 있던 우리 사회의 낙태 논의를 현실적 대안을 주고받는 단계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토론회에 참석한 안용항 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장(갈산중앙의원)은 "낙태를 줄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법적 처벌만이 낙태를 줄이기 위한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며 "아무리 고매한 이상세계를 추구한다고 하더라도 실천 가능하지 않고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은 "낙태를 줄이기 위한 이상적 방법은 강력한 법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환경변화와 의식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줄이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강조하고 "궁극적으로 법의 강제가 아닌 자율적으로 낙태를 줄이고자 하는 노력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토론회를 주최한 전현희 의원은 "개인적으로는 낙태 반대론자이지만, 현실적으로 만연해 있는 낙태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며 "여성문제, 양육문제 등 불가피한 사회적 현실을 고려해 낙태의 범위를 어떻게 합리적으로 조정할 것인가에 대한 대안 마련과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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