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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제도 이대론 10년 못버틴다

건강보험제도 이대론 10년 못버틴다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9.12.22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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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식 교수 국회내 의료개혁위원회 구성 제안
신상진 의원 주최 정책토론회…건보·의료공공성 재조명

▲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이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의협신문 김선경
30년 전에 설계한 저부담·저급여의 낡은 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현행 건강보험제도의 붕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규식 건강복지정책연구원장(연세대 교수·보건과학대학 보건행정학과)은 22일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건강보험 발전과 의료공공성 강화 정책토론회'에서 '건강보험제도 발전과 급여 및 수가제도'에 관한 주제발제를 통해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선진국 반열에 진입하고 있지만 여전히 1인당 1000달러 시대에 만들어진 의료보험제도의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다"며 "현재의 보험급여나 수가구조를 갖고는 의료산업화에 대한 국민적 동의도 얻기 어려울 뿐 아니라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의료산업화에 대한 논의가 한 발자국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건강보험 급여와 수가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와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적 역할에 대한 합의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여야가 추천하는 위원으로 의료개혁위원회를 구성, 선진국 수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제도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의약분업 10년에 대한 평가와 합리적 대안을 만들고, 지속가능한 의료보장제도와 보장성 강화 방안을 강구함으로써 세계화 시대에 의료산업 경쟁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자본비용을 수가에 포함시켜 의료공급을 민간자원에 일임하는 구조"라며 "이러한 구조는 Big5에는 유리하고, 중소 병의원에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급여구조의 문제점으로 건강보험과 비급여가 동시에 제공되는 혼합진료 문제를 꼽은 이 교수는 "비급여서비스 제공이 쉬운 대형병원일수록 혼합진료를 통해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있다"며 "로봇수술·뇌혈관조영촬영 등의 경우 비급여 진료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본인부담액이 67∼86%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입원의 경우 본인부담률이 20%로 동일하지만 큰 병원에 입원할수록 건보공단의 보험재정이 더 들어가는 차등지원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수가구조의 문제점으로 이 교수는 "같은 충수절제술을 하고도 수가가산율의 차등화에 따라 의원 수술료는 종합전문요양기관의 88% 정도"라며 "이러한 차등은 진찰료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환자를 하루 75명 이상 보면 수가를 깍는 차등수가제는 의원에만 적용하고 있다"며 "재정 여건 때문에 부득이 하게 취한 조치를 의원에만 적용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타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수가수준에 대해 이 교수는 "새로운 의료기술이나 의료장비의 사용이 용이한 대형병원은 수가상승률이 원가상승률보다 낮아도 선택진료·비급여·상급병실 등 다양한 원가 보전책이 있지만 중소병원이나 의원급 의료기관은 그렇지 못하다"며 "인건비 상승률과 비교해서도 수가 인상률은 높다고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의약분업 시행으로 약제비가 증가한 이유는 기술료가 높기 때문"이라며 "약국관리료·조제기본료·복약지도료·조제료·의약품관리료 등 다섯 가지 항목으로 기술료를 주는 나라는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나라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거래가제도는 의약품 가격인하 기전을 없애고, 의약분업 이후 처방전이 나오지 않는 시간에는 약국이 문을 열지 않아 환자의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며 보험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수가계약의 경우에도 환산지수 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상대가치점수·약가·치료재료·DRG수가 등도 포함해야 한다"며 "진료수가 산정지침이나 심사지침도 요양급여 비용 결정에 중요한 기능을 하므로 계약대상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같은 급여구조·수가구조·보험급여 등의 문제로 인해 의원과 중소병원의 생존을 위협하고, 대형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고, 박리다매형 의료 공급에 따른 질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의료비 급증으로 인한 국민부담이 가중되고, 인구고령화가 지속되면 2020년 이후 건강보험제도의 존속 가능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아울러 "당연지정제가 부실 공급자의 보호막 기능을 해 소비자 보호에 역행하고 있고, 민간공급자들도 공공의료만 취급하도록 규정한 것은 국가 수요독점의 횡포"라며 "공공의료만으로는 의료산업화에 한계가 있다"고 언급했다.

▲ 이왕준 관동의대 명지병원 의료원장은 역할과 기능 중심으로 공공의료를 재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의협신문 김선경
이왕준 관동의대 명지병원 의료원장은 '한국 보건의료체계의 공공성 확대'에 관한 주제발제를 통해 "한국의료의 20년 후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보장성 확대에서 지속가능성으로, 접근성에서 의료의 질로, 형평성에서 비용-효율성으로 아젠다를 바꿔야 한다"며 "공공성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료원장은 "소유구조를 중심으로 공공의료를 나눌 것이 아니라 역할과 기능 중심으로 공공의료를 재구축할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3P(Public-Private Partnership)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며 "이러한 전략적 접근을 통해 국가재정에 대한 압박 문제를 해결하고, 민간부문 의료공급자에게 중요 역할을 부여하며, 정부는 민간부문을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의료원장은 민간보험시장 규모는 공보험의 절반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며 민간보험에 들 수 없는 15%의 차상위계층을 위해 '공적 의료부조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과 통제가 불가능한 의료자본 경쟁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문지기(주치의제도) 역할과 병원과 1차 의료기관 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지정토론에 나선 김창보 건강세상네트워크 시민건강증진연구소장은 "소유구조보다는 기능과 역할 중심으로 공공성에 대한 사고를 전환하고, 비영리법인이 공공역할을 수행하면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에 대해 같이 협력할 수 있다는 데 대해 생각의 차이가 크지 않다"며 "여러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의료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생산적인 논의와 실행의 장을 마련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병호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정책연구소장은 "1997년 의료개혁위원회의 의료정책과제가 무산된 경험이 있다"며 "국회보다는 정부 차원에서 운영하는 것이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 소장은 "수술성공률을 비롯한 의료수준에 관한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 경제보다 앞서가는 면이 있다"며 "재원부담과 환자들이 직접부담의 형평성 문제를 고친다면 상당히 선진화됐다는 평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 지정토론자인 박윤형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이 현행 진료의뢰서가 유명무실하다고 지적했다. ⓒ의협신문 김선경
박윤형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진료의뢰서가 없어서 대학병원에 못가는 경우는 없을 정도로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한 상황에서 게이트키퍼를 논의하는 것은 넌센스"라며 "현행 진료의뢰서를 강화할 수 있도록 1회용으로 제한하거나 유효기간을 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지적했다. 박 소장은 이규식 교수의 발제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 "의료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정부가 약속을 안지킨데 따른 신뢰 상실"이라며 "2001년 건보재정 파탄사태가 발생했을 때 정부는 한시적인 건보재정건전화특별법을 제정해 차등수가제·진찰료 통합·원외처방 약제비 삭감 등을 통해 의약분업 시행으로 인한 수가 인상분 3조원을 모두 뺏어가 놓고도 아직도 이러한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소장은 "의료개혁위원회 구성에 앞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위원회부터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상혁 이화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필수'와 '최소'라는 사회보장의 목표가 대중주의에 의해 '전부'와 '최고'로 변질됐다"며 "건강보험을 모든 사람이 다 혜택을 받고, 무상의료를 받는 대중주의로 몰고간다면 지속가능성은 절대 담보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정영호 대한병원협회 보험이사는 "보험제도의 근본적인 원인은 저부담·저급여·저보험료의 3저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방만한 기술료 문제를 비롯한 의약분업제도의 재평가를 위해서라도 의료개혁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용현 보건복지가족부 건강보험정책관은 "공적 건강보험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사적 영역인 수가제도와 당연지정제 등을 통제해 왔다"며 "하지만 앞으로 자율과 협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건강보험정책관은 "보험료 두 자릿수 인상도 기업경영에 어려움을 줄 수 있는 문제가 내재돼 있어 한계가 있다"며 "6∼7%대 인상과 국고지원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박 건강보험정책관은 "DRG수가체계·약가제도·민간보험 등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지 않으면 건보제도의 지속가능성에 타격을 주게 된다"며 "양적인 확충에서 질적인 문제를 어떻게 담보할 수 있을 것인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정책토론회에는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박희태 전 대표·장광근 사무총장을 비롯한 여당 의원 20여명과 김혜성(친박연대)·김춘진(민주당)·송훈석(무소속) 의원 등이 참석, 관심을 보였다. 경만호 의협 회장과 지훈상 병협 회장을 비롯한 의료계 인사들도 정책토론회를 끝까지 지켜보며 건강보험제도와 정책을 둘러싼 새로운 변화 요구에 무게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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