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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논문은 톱 클래스…란싯 게재 원해"

"한국 논문은 톱 클래스…란싯 게재 원해"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9.12.0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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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권 논문 선입견·장벽 없어…영어보단 아이디어가 중요
[인터뷰]윌리엄 서머스킬 <더 란싯> 이규제큐티브 에디터

 

요즘 들어 의사의 역할은 진료 영역을 넘어 교육·연구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다. 질 좋은 논문을 유명 학술지에 게재하는 것이 능력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옛말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듯,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과학적 발견이 있더라도 그것을 짜임새 있고 설득력있게 기술해야 좋은 학술지 에디터의 눈에 들 수 있다. 만일 에디터에게 조언을 얻을 수 있다면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일은 좀더 수월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협신문>은 최근 엘스비어코리아 주최로 한국 연구자들에게 논문 게재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 방한한 윌리엄 서머스킬 씨를 만났다. 그는 <더 란싯(The Lancet)>(이하 란싯)에서 동료평가·신속심사·논평·사설·전략 개발 등의 부문에 관여하는 정규직 에디터로 일하고 있으며, 프린스턴대과 런던대, 옥스포드대에서 각각 문학·의학·근거중심헬스케어(EBHC)에 대한 학위를 받았다.

<란싯>은 세계 3대 의학(general medicine) 학술지 중 하나로, 의학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 자신의 논문을 게재하고 싶어하는 학술지이다. 사람이 저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학술지도 편집자가 누구냐, 철학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른 색깔을 띠는 것이 당연하고, 그곳에 자신의 발자취를 남기고픈 연구자라면 그 학술지에 대해 좀더 알고 싶은 것도 당연하다.  

<의협신문>은 그가 말하는 <란싯>의 철학과 관심사, 한국 의학 연구자들의 역할과 기대,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조언들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 윌리엄 서머스킬 <더 란싯> 이규제큐티브 에디터.ⓒ의협신문 김선경

-란싯에 대해 소개해달라. 편집위원은 얼마나 되고, 그 중 의사는 몇명이나 있나?

란싯은 매주 발간되는 <란싯>과 <The Lancet Infectious Disease>, <The Lancet Neurology>, <The Lancet Oncology> 등 패밀리 저널들을 갖고 있다. 총 60명이 일하고 있는데 이중 20명이 에디터이고, 20명 중 12명이 동료평가와 오리지널 논문에 관여하고 있다. 보통 한 명의 에디터는 하나 또는 두 종류 저널에 참여한다. 에디터 중 절반(6명)이 의사인데, 런던 사무실에 베이징 출신의 동양인이 한 명 있다.

란싯은 그래픽·편집 등 출판에 관련된 모든 것은 물론 웹사이트 관리까지 사내에서 진행한다.

-몇 명이나 란싯을 구독하나?

가장 최근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0만명 정도가 란싯 웹사이트를 통해 접속한다. 대부분의 개인 독자들이 그렇고, 기관 회원들은 엘스비어의 '사이언스다이렉트'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역사가 180년이 넘는다. 그동안 기념비적인 연구결과들도 많이 게재했을텐데.

리스터의 무균 수술법이나 탈리도마이드와 태아 기형의 연관성 제기, SARS의 원인이 되는 코로나바이러스 규명 등이 란싯의 주요 결과물들이다. 워렌과 마셜의 H. 파이로리균에 대한 연구 결과는 당시 동료평가에선 말도 안되는 이론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지만, 에디터의 결정으로 저널에 실린 경우다. 결국 나중에 그로 인해 노벨상까지 받았지만 말이다.

최근 연구 결과 중에서는 안면피부 이식술이나 기도의 조직공학에 대한 논문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 주에만 해도 기후변화가 건강에 주는 영향에 대한 컨퍼런스를 열었는데, 인간 행동의 변화가 어떻게 환경과 보건에 영향을 미치는 지를 규명해 헬스케어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보여줬다고 자부한다. 이 행사에는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마거릿 챈 WHO 사무총장도 참여했다.

-란싯이 '좋은 논문'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토마스 와클리가 1823년 처음 란싯을 창간했을 때 그가 강조한 세 개의 원칙이 있다. 첫째는 정보를 알리는 것(inform)이고, 둘째는 개혁하는 것(reform), 셋째는 즐겁게 하는 것(entertain)이다. 란싯은 지금까지 이 세 가지 원칙을 좋은 논문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간직하고 있다. 에디터가 원고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세 원칙의 의미는 란싯이 실제 행위의 변화, 연구 흐름의 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든 란싯은 무엇인가를 처음 주창하고, 그것을 완성하는 최고의 업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기후변화에 대한 접근은 다소 의외다. 란싯이 과학으로서의 의학 뿐 아니라, 인류의 건강문제에 대해 다각도로 조명하는 데는 이유가 있나.

그것이 란싯이 다른 유명 의학 학술지와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건강에는 많은 측면들이 있다. 진료실 안에서만 건강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정치적인 요인들도 건강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건강에 대한 통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란싯의 웹사이트(www.lancet.com)에는 그동안 란싯이 기울여온 이러한 노력들이 시리즈로 제시돼있다.

란싯은 글로벌 의학 학술지를 표방한다. 물론 다른 학술지들도 그렇지만, 우리가 그들과 다른 점은 글로벌 이슈뿐 아니라 세계 보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대변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 주 전에 남아프리카에 대한 논문을 게재한 적이 있다. 멕시코나 팔레스타인의 건강 문제도 다뤘다. 지난해에는 중국의 의료시스템 개혁에 대해 발표했고, 2011년에는 동남아시아와 일본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이다.

▲ 윌리엄 서머스킬 <더 란싯> 이규제큐티브 에디터.ⓒ의협신문 김선경
-란싯과 같은 유명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일은 쉽지 않다.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이 없을까?

논문을 게재하기로 결심했을 때 어디에 게재할 것인지가 숙제로 남는다. 그리고 어떻게하면 원하는 저널에 게재할 수 있을 지도 고민하게 된다. 만일 논문이 저널이 요청하고 있는 주제를 다룬다면 더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란싯의 경우 매년 주요 연구주제들을 선정해서 발표하고 있다.

해당 저널에 게재된 기념비적인 연구 결과와 관련이 있거나 그 저널의 철학과 일치하는 주제이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저널에는 오리지널 논문만 게재되는 것이 아니다. 총론(overview)이나 서신(correspondence), 임상사례(clinical cases, picture), 서평, 수필 등도 매주 실리는데, 특히 이런 것들은 연구자가 속한 국가의 논문이 잘 다뤄지지 않았거나 흔하지 않은 경우라면 더욱 선호된다. 다만 이런 것들은 대체로 오리지널 논문이 게재된 후 2주안에 선정된다.

-2010년 주요 연구주제는 무엇인가.

란싯의 연구주제는 웹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내년에는 미국당뇨협회(ADA)와 협력해 당뇨병 관리와 연구 부문에 집중할 계획이며, 미국심장학회(ACC)와 함께 진료 행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양질의 오리지널 논문(무작위기법)을 출판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한국 연구자가 제출한 논문은 1년에 몇 편이나 출판되나. 채택률이 높은가.

2008년 한국에서 제출된 연구논문은 74편이었다. 전체 제출된 1만 1750편 중 0.6%에 해당한다. 올해는 10월까지 55편이 제출됐다. 2008년 제출된 74편 중 2건이 출판됐으니, 채택률은 약 3% 정도다. 아시아 지역 채택률 2.5% 보다는 조금 높지만, 전체 논문 채택률 5% 보다는 낮은 수준이어서 매우 안타깝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영어 논문 작성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영어는 논문 선정 과정에서 얼마나 중요한가?

영어가 과학 자체보다 덜 중요하다는 점은 확실하다. 특히 란싯은 글로벌 저널이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쓰지 않는 국가들로부터 많은 논문을 받고 있다. 란싯은 과학과 아이디어에 관심을 둔다. 에디터와 평가자들은 과학과 아이디어를 중요시한다는 뜻이다. 만일 당신의 과학적 이론에 빈틈이 없고 아이디어가 좋다고 판단되면 에디터들에게 그것을 확실히 이해시키면 된다. 자신의 연구방법을 잘 이해시킬 수만 있다면 언어는 다듬어줄 수 있다. 어차피 최종 출판 전에 에디터들이 저자의 논문을 란싯의 언어로 가다듬는 작업을 거치게 된다.

-한국인 논문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은 어떠한가?

논문의 질은 뛰어나지만, 우선 제출된 편수 자체가 충분하지 않다. 이곳에 온 이유도 한국의 연구 역량에 비해 제출된 논문 건수가 적다고 생각해서다. 제출 건수가 증가하면 논문 채택률도 올라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떠한 분야에 권위있는 의학 연구자들과 협력한다면 논문 채택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연구자들은 다국가 연구 프로젝트에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책임저자나 교신저자에 올라가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사실 다국가 임상연구에서 책임저자나 교신저자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편중돼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국 연구자들이 연구 프로젝트 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여함으로써 목소리를 키울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아시아는 전염성 질환이 유행하면서도 만성질환 유병률이 높아 의학적으로 의미있는 지역이다. 또한 연구자들의 역량도 뛰어나다. 아시아 지역 연구자들의 역할은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다.
 
-한국 논문의 채택률이 3% 정도로 낮은 편인데, 한국의 연구 역량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있나?

한국은 연구 논문 분야에서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한국은 혁신적인 과학을 실행할 수 있는 곳이고, 그렇게 해왔다. 연구 논문의 수준에 있어서는 이미 톱 퀄리티에 있다고 본다. 오히려 더 훌륭한 연구를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3%란 숫자는 단지 란싯에만 해당되는 것이다. 세계적인 저널에 한국 연구자들이 게재한 1등급 논문들을 보고 있다. 특히 한국 연구자들은 미국 저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나는 좀더 이러한 논문들이 란싯으로 오길 바란다. 진심이다. 한국의 연구자들이 논문을 란싯으로 많이 보내줬으면 좋겠다.

▲ ⓒ의협신문 김선경
-란싯이 아시아지역에 대해서 갖고 있는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내년에 아시아 지역을 담당할 새로운 사무소가 베이징에 설립된다. 런던과 뉴욕에 이어 세 번째다. 현재 베이징에 있는 엘스비어 지사가 협력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사무소가 문을 열면 아시아 지역에서 나오는 연구 결과들을 좀더 많이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연구 논문들이 란싯에서 좀더 자주, 그리고 많이 다뤄질 필요가 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이유도 한국에 있는 주요 연구자들과 그들의 성과물들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11월 27일) 한국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미나도 매우 흥미로웠다. 강의 후에 여러 코멘트를 들었는데, 아마 내년에도 한국에서 이러한 기회를 갖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 같다.

-최근 <The Lancet Oncology>와 <The Lancet Neurology>의 한국어판이 발간됐다. 지역판을 발간하는 것은 란싯의 지향점과 일치하는가?

란싯은 몇몇 지역판을 갖고 있다. 물론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 지역의 언어로 출간돼 독자들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측면에서는 반응이 좋다. 현재 매주 발행되고 있는 <란싯>의 한국어판을 발행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한국의 연구 환경에서 인용지수(Impact Factor, IF)는 매우 중요시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 반드시 IF가 높은 SCI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해야 하고, 심지어 어떤 대학은 교수들이 승진하기 위해 1년동안 일정 IF의 이상의 주요 학술지에 일정 편수 이상의 논문을 게재해야만 한다. 외국은 어떠한가?

IF는 항상 문제가 되는 매우 어려운 사안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외국도 마찬가지다. 많이 읽히는 논문을 발표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면서 어렵다. 하지만 학술지의 철학이나 리더십이 아니라 IF의 숫자 그 자체를 중요시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예를 들어 란싯과 <JAMA>는 매년 IF 숫자가 얼마나 되냐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다. 하지만 두 저널은 독자층과 철학에 있어 명백하게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란싯이 개발도상국이나 글로벌 이슈를 중요시한다면, JAMA는 미국 내 이슈에 좀더 관심이 있다. 또 란싯은 종양학이 좀더 강하고 JAMA는 정신의학쪽이 더 강하다. 란싯은 사설이나 논평에서 자유주의적인 관점이 두드러지는 반면 JAMA는 프랙티스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좀더 보수적이다.

사실 IF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발표 논문 수를 줄이거나 인용이 많이 될 수 있을 법한 논문을 선택해서 게재하면 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IF를 높이는 것은 출판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결국 피해를 입히게 된다. IF는 필요악이다.

-논문의 질을 평가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없나?

항상 다른 방법이 없을까 논의되고 있기는 하지만 뚜렷한 대안은 없다. 현재로선 IF의 장점과 한계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자와 저널에 있어서 출판은 IF의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건강 문제를 글로벌 저널이 이슈화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지만, 자주 인용될 수 있는 주제는 아니다. 저널과 저자는 IF의 숫자가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춰선 안된다.

란싯은 어떠한 논문이 학술지를 통해 발표됨과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로인해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고, 실제 진료 행위를 바꾸고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의협신문 김선경

-최근 연구와 출판 분야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은 '윤리'인 것 같다. 란싯은 연구윤리를 검토하기 위해 어떤 시스템을 갖추고 있나.

매우 중요한 주제다. 많은 저널의 회원들이 국제 의학학술지 편집위원회(ICMJE)에 소속돼있다. ICMJE는 에디터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제지한다.

란싯은 어떤 에디터가 윤리조항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것으로 의심될 때 조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리처드 호튼 편집위원장은 출판윤리위원회(COPE)의 출판윤리강령 중 한 부분을 직접 작성하기도 했고, 클라이네트 사빈 시니어 책임 에디터는 COPE의 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에디터들은 1주일에 2번씩 모임을 갖고 윤리강령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사설과 논평을 통해 정기적으로 윤리적인 행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좋은 윤리는 좋은 과학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리고 저자와 저널은 과학적 연구에 대해 책임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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