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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판결에 관한 단상

시론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판결에 관한 단상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07.0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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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화진(변호사 유화진법률사무소)
2009년 5월 21일 대법원은 전원합의체판결을 통해 환자가 의식의 회복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는 환자가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위와 같은 환자의 경우 환자의 의사결정을 존중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하더라도 환자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을 보호하는 것이 사회 상규에 부합되고 헌법정신에도 어긋나지 아니하므로,

회복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이른 후에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일명 존엄사 판결(정확한 사건명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제거 등'이다)로 불리는 이 사건은 법학계와 의학계를 넘어 사회전반에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관심을 집중시켰다.

나아가 지난 6월 23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대법원의 판결이 집행된 후 환자의 상태가 악화와 회복을 반복하다 점차 안정되어 간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또 다른 논란이 시작되고 있기도 하다.

대법원 판결 또 다른 논란의 시작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현장에서 늘 분투해야 하는 의사들에게 이 판결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대법원이 2004년 6월 24일 보호자의 퇴원 요구에 따라 의식불명의 환자를 퇴원시켜 환자가 사망자 퇴원을 허락한 의사들에게 살인방조죄를 인정한 일명 '보라매병원 사건'(이 사건은 1997년에 발생하였는데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까지 약 7년의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은 치료중단행위에 대한 법원의 고민이 깊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은 의료계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그 이후로도 의사들은 치료중단에 관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환자의 선(善), 가족의 선(善), 나아가 의사의 선(善)이라는 문제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판결이 나오자 의료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이지만 한편에서는 환자 가족과의 분쟁이나 소송이 증가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염려의 목소리도 들리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병원들의 통합적인 지침이 마련되어야 하고, 국민적 공감대와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혼란 막기 위해서는 통합적 지침 마련해야

이번 판결에 대해서는 각자의 문제의식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가능하고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과 변수들로 인해 논의의 장 또한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논의의 과정에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가는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혼란이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다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삶의 마지막 형태인 죽음에 대해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법적·제도적 장치를 정비하기 위한 논의의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개인이 삶과 죽음을 선택함에 있어 안전장치를 마련하고 인간으로서 품위 있고 의연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는 일일 것이다.

인공호흡기를 제거한 후 환자의 상황변화가 말해주듯이 인간의 생명에는 계량과 예측의 한계를 벗어나는 신비의 영역이 존재한다.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영역이 존재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안에서 의연하고 품위 있는 삶과 죽음을 준비하는 것, 나아가 그를 뒷받침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생명에는 예측 벗어나는 신비의 영역 존재

존엄사의 문제는 생명, 이 지상에서 특별한 존재인 인간 생명의 본질에 관한 것으로 법학과 의학의 영역을 넘어 종교·윤리· 나아가 인간의 실존에 관한 철학에 관련된 것이어서 그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과제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존엄사 판결이 불러온 격론을 거치면서 임종이 임박한 환자는 물론 우리 자신의 의연하고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의미있는 성찰을 하고 있다는 것만은 명백해 보인다.

유화진(41세) 회원은 최근 4년 동안의 판사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 서초동(1554-5 한승아스트라 706호 ☎02-3487-2242)에 유화진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유 변호사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인 김연희 변호사(의성법률사무소)와 함께 여성 의사로는 처음 2002년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 화제를 모았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후에는 광주지법 판사로 부임, 첫 여의사 판사라는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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