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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제비 환수소송 재판부 "고민되네"

약제비 환수소송 재판부 "고민되네"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9.05.1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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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법원, 이원석 원장 사건 심리 막바지...판사 "부담스럽다"

국회가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법안'(민주당 박기춘의원이 대표발의한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6월 국회에서 논의키로 한 가운데, 사법부도 약제비 환수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심리에 가속을 붙이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제10민사부(재판장 박 철)는 13일 전라남도 이원석 원장(조은이비인후과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원외처방 약제비 환수 취소소송의 변론기일을 가졌다.

이 원장은 지난 2006년 12월 공단을 상대로 환수 무효소송을 제기, 승소함으로써 이후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40여개 병원의 300억원대 집단 환수소송의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다.

이날 재판은 현행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급여 심사시스템이 의학적 타당성을 얼마 만큼 담보하는가에 중심을 두고 진행됐다.

재판부는 이 원장이 진료한 환자 A씨의 경우를 예로 들고 "원고측은 진료 초기에 급성비인두염으로 진단하고 진료기록부에 그와 같이 기록했으나, 나중에 환자의 병력 등을 근거로 알레르기성비염으로 판단한 후 알레그라정을 처방했다"며 "결국 공단의 환수조치는 진료기록부와 실제 처방내역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인가?"라고 물었다.

즉 재판부는 실제로 환자에게 필요한, 의학적으로 타당한 처방이라 할지라도 진료기록부에 그와 같은 진료내역이 기재돼 있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공단의 논리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공단측 변호인은 현행 시스템상 진료기록부를 근거로 심사할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환자가 알레르기성비염 과거력이 있었다면 그와 같은 사실을 진료기록부에 반드시 명시해 놓았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가 차트에 부실하게 기재했다고 하더라도, 이 환자는 알레르기성비염 환자인 사실은 부인할 수 없지 않느냐"고 묻고 "이런 경우에도 공단은 의사의 처방을 인정하지 않는 것인지에 대한 답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재판부 "심평원 심사관행 문서로 제출하라"
특히 재판부는 "(확진을 내리고 처방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확진을 위한 검사비용이 약제비의 몇 십배가 더 든다면 어리석은 짓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다시말해 '의심스러운 상황'만으로도 의사는 의학적 판단에 근거해 처방을 내릴 수 있다는 취지다.

이날 재판부는 공단측 변호인단에 현행 심평원의 심사관행을 구체적으로 담은 문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환수조치 당한 의사가 사후에 이의를 제기한 경우, 얼마만큼 의견이 반영되가에 실증적인 자료가 필요하다는 것. 이를 근거로 현행 약제비 심사시스템과 의학적 타당성 사이의 현실적 괴리를 가늠해 보겠다는 입장이다.

원고측 소송 대리인인 현두륜 변호사(대외법률사무소)는 "의사가 진료기록부에 상세히 기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더 큰 문제는 기계적·획일적인 약제비 심사시스템에 있다"고 강조했다.

현 변호사는 "건강보험 요양급여기준, 즉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사항이나 보건복지가족부의 고시는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참고사항에 해달할 뿐이지, 의사의 처방을 구속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며 "우리나라보다 먼저 의약품평가시스템을 구축한 미국에서도 식약청 허가사항이나 행정부 고시를 근거로 의약품에 대한 평가를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현 변호사는 "임상의학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과 요양급여기준은 괴리가 발생할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획일적인 심사기준은 의사의 전문성을 해치고 환자의 치료선택권을 박탈하며 나아가 국민보건향상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다.

재판장 '고심'..."만만치 않은 사건"
재판장 박 철 판사는 이번 사건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박 철 재판장은 "원래 오늘 결심을 내릴 계획이었으나 몇 가지 구체적 사항에 대한 정리가 필요해 선고를 연기한다"며 내달 26일 구술변론 기회를 한 번 더 갖기로 결정했다.

박 재판장은 "양측 주장을 들어보면 만만치 않은 사건이다"며 "판사로서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한편 1심에서 승소한 서울대병원은 현재 공단측의 항소로 사건이 고법에 올라간 상태며,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은 오는 29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최근 전주예수병원와 부산 고신대병원도 소송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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