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9 06:00 (월)
전문의 시험을 치른 후의 단상

전문의 시험을 치른 후의 단상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02.23 10:29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준호(부산의료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시험이 끝나니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내려 이리저리 클릭해보다 영화'순정만화'를 보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거...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저것 재보고 소용에 닿을 거 같으면 그 사람에게 호감을 보였던 건 아닌가 하고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자연스레 지난날 짧은 연애가 연상되더군요.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책·장소 등을 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왜 그때 그녀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단순히 수련생활의 피곤함에 딸려온 짜증 때문이었다고 말해버리면 아쉬움이 너무 큽니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할 때는 '시험만 끝나봐라, 못 만났던 친구들도 만나고 가보고 싶었던 지리산도 올라보고 여유 있게 보내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2차시험이 끝나 설날 연휴를 정신없이 보내고, 수련생활 중 미진하다 생각했던 시술경험을 쌓으려 선배 병원에 나가고, 새 직장 구하려 돌아다니니 시험치고 나서 하려 했던 것을 거의 못한 거 같습니다.

몇 년 전 의사국가고시를 치루고 난 후에도 어디 병원에 인턴으로 가야하나 하는 핑계로 시험 전 계획했던 일탈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간만에 미니홈피를 열어 보니 후배 연차 선생이 전문의 시험 합격을 축하하고 '이제 의국은 우리가 지키겠습니다'라고 인사말을 남겼네요. 빨리 끝내고 싶었던 수련생활이었지만 막상 마무리 지으려 하니 글자 그대로 시원섭섭합니다.

저년차일때는 당직 한 번이라도 덜 하려고 동기들과 얼굴 붉혔던 일들이, 고년차때도 신경 쓸 일 많은 의국장을 한 달이라도 짧게 하려 머리 굴리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술 마시던 몇 시간이라도 줄여 의국에 주어진 일을 조금이라도 더 했더라면 하는 자책의 마음이 남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보니 정말 수련생활이 막바지에 왔나 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돌이켜 봤을 때 후회로 남는 것이 그것뿐이겠습니까. 오래된 결핵을 치료 않고 술만 마시던 행려 환자가 공익 응급실에 사망 직전에 도착해 심폐소생술 등으로 밤새우며 떠오른 '왜 평소 치료 받지 않고 내 당직 때 와서 저러나'하는 원망의 그 순간,

말기 암환자의 입원 상담을 하면서 보호자에게 심폐소생술 거부란에 싸인하는 것을 권유하는 순간 보았던 보호자의 눈, 서툴 수밖에 없는 신규 간호사의 일을 문제 삼아 병동에서 고함치며 돌아선 승강기 안 거울에 비친 신경질덩어리 자신을 본 그날, 의협 회장 선거 투표용지를 우편으로 받고도 일개 전공의인 나와 상관없지 않냐고 관계없지 않냐고 내팽개치던 그 마음가짐이 깊은 후회로 남습니다.

계기가 있으면 생각도 바꿀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의사로 살면서 겪어야 할 많은 산봉우리 중 전문의 합격이라는 작은 산을 하나 넘었으니 이것을 계기로 후회를 덜 하는 생활을 하려 합니다.

환자와 보호자가 손을 내밀 때 따뜻하게 잡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싶을 뿐 아니라, 다가올 의협 회장 선거에는 모든 후보의 공약을 짚어보고 의사들이 자존심 꺾이지 않고 진료해나갈 수 있는 바탕을 제시하는 후보에게 꼭 투표 할 작정입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