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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9 06:00 (월)
전문의 실기시험 새바람 분다

전문의 실기시험 새바람 분다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9.01.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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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CE·CPX 등 임상수행능력 평가시험 강화 추세
신경과이어 가정의학과 '표준화환자대상진료시험' 도입

전문의 자격시험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교과서 위주의 틀에서 벗어나 환자를 제대로 진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실기시험이 속속 선보이고 있는 것. 실기시험도 슬라이드와 동영상은 물론 임상진료능력을 평가하는 '객관구조화진료시험(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 OSCE)'이나 '표준화 환자대상 진료시험(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 CPX)' 등이 추가되면서 새로운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 대한가정의학회 CPX 실기시험 현장. 시험을 앞둔 응시생들이 대기실에서 마지막 정리를 하고 있다.
대한가정의학회는 지난 19일 서울의대 종합실습실에서 전문의 2차 실기시험 중 하나인 CPX를 치렀다. 이번 시험의 초점은 '포괄적인 1차 진료를 담당해야 하는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임상수행능력을 갖고 있는가'를 총체적으로 평가하는데 맞춰졌다. 무려 316명의 2차 실기시험 응시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이날 CPX에는 30명의 의대 교수들이 감독과 채점 위원으로 참여했으며, 40명의 훈련받은 '표준화환자'(Standaed Patient, SP)가 동원됐다. 철통 같은 보안 속에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넘게 치러진 가정의학과 CPX는 100점 만점에 5점에 불과했지만 생소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응시생들은 팽팽한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철통 보안 속에 12시간 동안 강행군

전문의자격시험에서 임상수행능력을 평가하는 실기시험은 가정의학과가 처음은 아니다. 대한성형외과학회는 지난 2005년 1월 21일 전문의 2차시험에서 객관구조화진료시험(Objective Structured Clinical Examination, OSCE)을 도입하면서 첫 선을 보였다. OSCE는 진료의 단면·수기과정을 평가하는 반면 CPX는 표준화 환자를 이용해 진료의 전체를 모두 살펴보는 시험으로 다소 차이가 있으나 임상수행능력을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지향점은 같다.

정신과 전문의 고시에서도 비디오 녹화사례를 통한 실기시험이 실시되고 있고, 영상의학과는 방사선 영상판독시험을 통해 학회 특성을 감안한 실기시험을 강화하고 있다.

진료에 필요한 문제해결 능력은 물론 의사로서의 자질까지 평가하기 위한 실기시험의 하나인 CPX는 2007년 1월 대한신경과학회가 첫 선을 보인 이래 3년째 성공적인 실기시험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신경과학회는 CPX 본시험에 앞서 매년 9월 전공의 4년차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열어 CPX에 대해 안내하고, '표준화환자'(SP)를 이용한 모의시험까지 실시하고 있다. 실기시험을 치르기 전에 CPX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함으로써 시행착오를 줄여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16일 치러진 신경과학회 전문의 2차 필기시험에서는 슬라이드 및 동영상 70%, 구술 15%, CPX 15% 등을 배정했다.

신경과학회 CPX를 주관한 정진상 고시이사(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는 "CPX는 전공의들이 얼마나 환자를 잘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유용한 시험이긴 하지만 시나리오를 만들고, 상당한 경비를 들여 표준화환자를 관리해야 하므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이사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며 "평가표를 객관화하고 표준화 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했다.

성형외과 OSCE 첫 선…신경과 CPX 도입

원로 의학교육학자인 백상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회있을 때마다 "의학교육이 지식과 기술을 교육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며 "'환자 중심의 의료'를 실천하는 의사를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명예교수는 "환자중심의 의료는 질병치료·건강증진·장수의 차원을 넘어 사람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며 "사회는 환자중심의 의료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고 학습자와 수행능력 중심의 의학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새로운 환자중심의 의학교육에 눈을 뜬 의학교육자들의 오랜 노력과 의대 교수들의 인식의 변화가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수년 전부터 의과대학 및 의학전문대학원 교육과정이 임상실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이러한 의대 교육과정의 변화는 2010년 의사국가시험부터 표준화환자를 활용한 CPX와 마네킨 및 모의환자를 이용한 OSCE 시행이라는 '의미있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전문의자격시험에서도 일찌감치 임상수행능력평가의 필요성을 간파한 김석화(서울의대)·윤병우(서울의대)·박훈기(한양의대)·조정진(한림의대) 교수 등이 팔을 걷고 나서면서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임상수행능력을 평가하는 실기시험을 강화하게 된 배경에는 '환자의 안전과 진료의 질 문제를 보장하려면 의학교육이 의사가 될 사람에게 지식과 기술교육만이 아니라 더욱 보강된 의사의 가치관을 심어주지 않으면 안된다'는 '환자 중심의 의료'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자리하고 있다.

2010년 의사국시 임상수행능력평가 전면 시행

CPX는 진료현장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훈련된 모의환자를 상대로 전공의 수련과정을 통해 체득한 지식과 술기를 총동원해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고, 진단한 후에 적절한 처방을 내려야 한다. 10분 이내의 짧은 시간 동안 어떻게 환자를 진료하는지 전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다.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의사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문제해결 능력과 지식은 물론 환자 면담 능력·환자와 의사와의 관계 등 자질이나 태도까지 평가할 수 있다는데 CPX의 장점이 있다.

신호철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성균관의대 교수·강북삼성병원)은 "CPX는 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질적인 발전과 진료 현장에서 실제 환자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평가하는데 유용한 시험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CPX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약 5000만원에 달하는 학회 예산을 투입해야 하지만 흔한 1차 질환에 대한 포괄적 진료를 맡고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들이 1차 의료의 질적인 발전을 견인하기 위해서는 학회 차원에서 실기시험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신 이사장은 "올해 처음 도입하는 시험이라 총점이 5% 밖에 안되지만 점차 비중을 늘리고, 중장기적으로 슬라이드시험을 대체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가정의학회가 임상지식을 평가하는데 머물지 않고 임상수행능력까지 시험의 범위를 확장하게 된 배경에는 '1차의료의 위기 극복'과 '가정의학의 질적 발전'이라는 목표가 자리하고 있다.

▲ 대한가정의학회 CPX가 치러진 서울의대 종합실습실. 시험장 앞에선 응시생들이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전문의자격시험을 실시하는 목적은 "전문 영역의 진료에 필요한 의학지식·수기·경험에 대해 엄격한 평가과정을 통과했음을 대중에게 입증하기 위함"이다. 가정의학회가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 가며 CPX를 도입, 전문의자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는 것은 전문의자격의 질적 수월성을 대내외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 환자의 다양한 증상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고 진료함으로써 질병의 종류나 환자의 연령에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포괄적이며, 인간 중심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학회 스스로 졸업후 의학교육의 질을 높여나가야 한다는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환자 곁으로 다가가는 의사' 만들어야

성형외과학회의 OSCE에 이어 신경과학회와 가정의학회가 CPX 대열에 합류하면서 일단 임상수행능력평가제도에 대한 분위기는 잡힌 셈이다. 각 전문과들도 과별 특성에 맞는 새로운 임상수행능력평가시스템 도입 여부를 놓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다.

새로운 임상수행능력평가시스템은 전공의 교육을 '질병 중심'에서 '환자 중심'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환자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환자에게 다가가지 고민하지 않으면 임상수행능력평가에서 결코 높은 점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전공의들이 변하면, 전공의 지도전문의는 물론 수련병원의 시스템도 변화를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중장기적으로 의료의 질적인 발전과 의사에 대한 신뢰도 향상 등 상승효과를 불어올 것으로 전망된다. 임상수행능력평가시스템은 의료시장 개방에 대비해 효과적인 방어 전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김건상 대한의학회장은 "임상수행능력평가를 강화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학회가 자발적으로 임상수행능력평가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임상수행능력평가제도를 경험한 학회 관계자들은 임상수행능력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기에 앞서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외과계열은 OSCE, 정신과나 신경과 계열은 CPX를 도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표준화환자들이 감당(연기)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제한적이어서 점차 족보 형태로 고착화되면 평가의 목적이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했다.

트레이닝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질 낮은 수련병원의 반대도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 임상수행능력평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수련의 질을 높여야 하지만 부실한 수련병원일수록 투자나 지원에 인색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외부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시험관리비용을 어디에서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시험관리 조직을 어떻게 꾸려서 진행해 나갈 것인지, 시험의 공정성과 객관성은 어떻게 담보해 나갈 것인지 등의 문제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의학교육계는 임상수행능력평가로 인해 기대할 수 있는 효과와 장점은 이러한 문제의 한계를 뛰어넘고도 남음이 있다는 입장이다.

새로운 실기시험의 배경에는 '환자의 곁으로 다가가는 의사'와 '국민에게 신뢰받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이 자리하고 있다. 임상수행능력평가가 제대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려야 하는 당위성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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