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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꼼한 진료기록 '의료소송' 승패 가른다

꼼꼼한 진료기록 '의료소송' 승패 가른다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9.01.2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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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전혀 이상 없어도 기록으로 남겨야 유리...기록 수정시 '조작' 의심 받을 수 있어 주의해야

의료사고 소송에서 재판부가 가장 중점적으로 검토하는 자료는 의사의 진료기록, 간호사의 간호기록과 같은 의무기록이다. 사고 당시 환자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기 때문. 따라서 의무기록은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하여야 하며, 이는 의료법상 의료인의 의무사항으로 규정돼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일선 의료인들이 이처럼 중요한 의무기록을 소홀히 작성해 소송에서 불리한 상황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환자 치료과정에서 아무런 과실이 없었더라도 진료기록에 상세히 기록돼 있지 않으면, 의사가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 아무런 이상 없으면 '없다'고 기록 남겨라
A병원 응급실에 발열을 주소로 하는 환아가 내원했다. 의료진은 활력징후를 체크했으나 이상소견이 없었고,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등을 파악하기 위해 대부분의 이학적 검사를 실시했지만 역시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 의료진은 해열제를 처방하고 환아를 퇴원시켰는데, 불행히도 환아는 수막구균에 의한 세균성 뇌수막염으로 사망했다.

환아 가족들은 A병원 의료진이 "이학적 검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재판부가 진료기록을 살펴보니 '이학적 검사를 실시한 결과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기록이 전혀 적혀있지 않았다. 의료진에 불리한 재판 결과가 나온 것은 당연한 사실.

B의원에 내원해 치료받던 환아가 4일만에 폐렴으로 진단된 후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진료기록에는 첫 이틀 동안만 체온이 기록돼 있었다. B의원장은 나머지 이틀 동안에는 특별한 발열 소견이 없어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B의원장은 법정에서 환아에게 폐렴을 의심할 만한 소견이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해 막대한 위자료를 물어줘야 했다.

일선 의사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 중 하나가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경우에 대해서는 습관처럼 기록을 누락하는 것이다. 이렇게 누락된 기록이 막상 의료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법적 판단 기준이돼 의료인에게 불리한 족쇄가 될 수 있다.

대수롭지 않은 검사, 귀찮은 검사(출산과정에서 정상적인 FHT라도) 모두 기록으로 남겨야 법정에서 의료행위에 과실이 없었다고 판단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일기 쓰듯이 사소한 것도 모두 적어라
상세한 의무기록은 재판부에 큰 신뢰감을 준다.

예를 들어 '오후 4시 회진' 이라고만 적혀 있는 기록과, '오후 4시에 회진했는데, 환자가 화장실에서 걸어서 다녀오는 길에 만남. 환자가 수술 부위가 불편하다고 호소하여 시진, 촉진, 청진 결과 수술 부위에 통상적으로 수술 후에 보일 수 있는 약간의 압통 외에는 특이 소견이 없었음'이라고 적힌 기록, 둘 중에 어느 것이 법정에서 의료인에게 유리할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최근 모 3차병원 소아과 레지던트의 경우 간질성 폐렴 환아를 진료하면서 매일매일 환아의 상태변화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고, 그러한 상태를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한 사실까지도 기록으로 남겼다.

 또 당시 예상되는 인공호흡기 치료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한 사실, 인공호흡기 치료 과정에서도 기흉과 같은 예상되는 합병증 등 모든 부분을 꼼꼼히 기록해 두었는데, 소송에서 법원은 의사의 설명의무를 이행했음을 모두 인정했고 결국 병원이 승소했다.

 #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기록 수정은 위험
의무기록의 위조·변조하는 행위가 드러날 경우 소송에서 매우 불리해진다.

대법원은 판례를 통해 "의사가 진료기록을 변조한 행위는 소송 당사자 사이의 공평의 원칙, 신의칙에 어긋나는 입증방해 행위에 해당하므로, 법원으로서는 이를 근거로 의사측에게 불리한 평가를 할 수 있다"고 밝혀 의무기록 변조에 대한 책임을 엄하게 묻고 있다.

특히 의료사고가 발생한 후 진료기록을 조작하는 행위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 조작이 아니라 사실대로 수정을 하는 경우도 조심해야 한다.

앞서 사례를 든 B의원장의 경우, 4일간 진료에 대해 너무 부실하게 기재돼 있어 '있었던 사실 그대로'를 나중에 다시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전 날짜의 진료기록에 비해 눈에 띄게 차이가 나자 환자측이 조작의혹을 제기, 법정에서 이를 해명하느라 애를 먹었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의료인이 작성한 의무기록을 상당히 신뢰한다. 그러나 위·변조 사례가 자주 발견되면 그 피해는 선량한 대다수 의료인에게 돌아가게 된다.

 # "분쟁해결의 열쇠...힘들어도 꼭 해야"
의무기록을 상세히 기록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환자를 직접 진료하는 시간보다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고, 수많은 환자를 진료해야 겨우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 저수가 환경에서는 더욱 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내과 전문의 출신 변호사인 이동필 변호사(의성법률사무소)는 모든 수고를 감수해야 할 정도로 의료분쟁 소송에서 의무기록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고 강조한다.

이 변호사는 "의무기록은 의료분쟁 발생시 진료행위에 아무런 과실이 없고 정당했음을 입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근거자료"라며 "아무리 힘들더라도 사소한 내용까지 빠짐없이 상세히 기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의무기록 작성에 대한 제대로된 교육과정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료기록부 작성 요령을 정식으로 가르치는 의과대학은 거의 없다. 인턴·레지던트 수련과정에서 선배 전공의가 하는 방식을 어깨너머로 배우는게 전부인 실정.

이 변호사는 "의과대학 때부터 의무기록의 중요성과 작성 방법을 몸에 익혀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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