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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의대신설 과열 '경제'만 있고 '교육'은 없다

coverstory 의대신설 과열 '경제'만 있고 '교육'은 없다

  • 공동취재 kmatimes@kma.org
  • 승인 2009.01.09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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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원 기준 재량적·자의적 측면 많아
의료계 입장 수렴 위한 노력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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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원도 의대 4곳…10명 중 1명만 남아

인구 300만의 강원도에는 원주연세의대·강원의대·관동의대·한림의대 등 의과대학이 4곳이나 있다. 그러나 인구가 많은 서울이나 수도권과 달리 강원도는 상대적으로 의료시장 규모가 적다.

강원도 소재 의대를 졸업하고 강릉에서 개원하고 있는 한 원장은 "졸업생 10명 가운데 9명은 수도권 등 다른 지역으로 가고 강원도 내에 남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의과대학 신설 바람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목포대와 국방부(국방의학전문대학원)를 비롯해 한국국제대(경남 진주)·인천대·대진의료재단 분당제생병원(경기도 동두천)·카이스트 등도 의대 설립 의지를 꺾지 않고 있다.

한결같이 의대 총정원 수 동결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선뜻 정원을 내주겠다는 의대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애초부터 의대 정원을 둘러싼 '제로섬' 게임은 어려운 만큼 정원 동결은 결과적으로 수사적 성격이 짙은 셈이다.

특히 본지가 '의대 신설과정'을 집중 추적한 결과 확고한 원칙보다는 재량적·자의적 측면이 많았으며, 의료계의 입장을 제대로 수렴하기 위한 노력도 매우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의대 만든다고 의료환경 개선되겠나=목포대 등 의대 신설을 주장하는 대학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의료기반 조성이지만, 이는 의대가 의료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이지 진료가 주목적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현재 목포를 중심으로 한 전남지역에는 종합병원은 물론 병원급 의료기관이 상당수 있어 의료취약지역이라고 할 수 없다. 도서·벽지 지역의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환자후송체계 확립 등 의료시스템 개선으로 해결할 문제다.

더구나 의대가 신설되는 지역 출신 학생들을 교육시켜 태어난 고장에서 근무토록 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이미 기존 신설의대의 예를 볼 때 의대 진학 학생들은 전국 의대를 대상으로 자신의 점수 등에 맞춰 공격적인 지원행태를 보인다. 출생지와 입학하는 의대 간의 상관관계가 매우 낮은 것이다.

목포대보다 여건이 훨씬 나은 전남의대의 경우 학년마다 차이는 있지만 입학생 가운데 20~40%가 외부지역 출신이라고 한 졸업생은 전했다. 졸업 후 개원하는 장소도 인구와 교통 등 경영조건에 따라 선택하므로 의대 설립이 해당 지역 의료인력 수의 증가로 직결되지 않는다는 게 의료경영 컨설턴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진료권역과 행정구역을 혼동 '정치논리'=목포대가 배포한 의대 설립 홍보 브로셔에는 '전국에서 의과대학이 없는 곳은 전라남도 뿐'이라는 문구가 크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3차 의료기관은 의료전달체계상의 고도의 전문진료를 요하는 환자들을 취급하는 곳으로 의료시스템상 '진료권역'별로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목포의 한 개원의는 "인구 27만에 불과한 목포에 대학병원을 꼭 세워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매우 회의적"이라며 "광주까지 새로 뚫린 고속도로를 타면 앰뷸런스는 전남대병원이나 조선대병원까지 30분이면 간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 의사들은 목포의대 설립에 타당성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내놓고 반대하긴 매우 어렵다"며 "그동안 지역의사들이 주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해왔는데 목포 발전을 위해 설립하겠다는 의대를 반대하면 '먹고 살만 하니까 그런다'는 소리를 들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전남 이외의 지역에서 '여론몰이'가 간절하다는 것이다.

또한 엄밀히 말하면 전남에 대학병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남 화순에 위치한 화순전남대병원은 특히 암치료분야에서 자타 공인 전국 최고수준의 '명품병원'이다. 모병원인 전남대병원의 암분야 권위교수들이 대부분 화순병원으로 옮겨왔다. 현재 전남도와 공동으로 국가지정 전남지역 암센터를 건립 중이다.

#2. 지방의대 졸업 후 서울·해외로…'여친' 데리고

최근 신설된 지방 의대에는 수도권 지역의 학생들이 많이 진학하고 있다. 김영식 전라남도의사회장은 "목포에 의대가 설립되더라도 3분의 2 이상은 외부 학생들이 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다시 자기 집 근처로 가서 개원할 것"이라며 "지방의대를 나온 서울 학생들이 여자친구·남자친구까지 데려간다고 동료 의사들끼리 우스갯소리로 한다"고 전했다.

반면 서울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우도 늘고 있다. 목포시 상동에서 개원하고 있는 신경외과 전문의 여한승 원장은 이 지역 출신이 아니다. 연세의대를 졸업하고 세브란스병원에서 보드를 딴 뒤 2003년 목포로 내려갔다.

여한승 원장은 "이곳 생활에 매우 만족한다"며 "동기나 후배들이 와서 보고 얘들 교육문제만 아니면 당장 내려오고 싶다고 얘기한다"고 말했다. 최근 2~3년 동안 목포에는 서울의대와 가톨릭의대 출신 안과 전문의가 속속 개원했다. 아직도 목포 의사 가운데는 광주광역시에 있는 전남의대와 조선의대 출신이 많지만, 근래에 개원하는 의사의 30% 정도는 외부지역 출신이라는 게 개원가의 체감지수다.

"KTX 노선이 지나는 대구 등 지방에서 환자들이 많이 서울로 유출되고 있는데, 이제서야 목포에 의대를 새로 만들고 학생들이 입학→졸업→수련→군복무 등을 마칠 때면 환자 이탈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김영식 전라남도의사회장은 지난해 12월 22일 임병선 목포대 총장과 만난 자리에서 의대 설립에 협조해 달라는 요청에 우려와 함께 난색을 표명했다. 목포대 측에서 지역 발전 논리를 내세우며 설득했지만, 현재 의대 설립은 국가 전체의 의사수급을 고려해 정원을 줄여나가는 추세여서 맞지 않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목포대는 "1990년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의대 신설을 정부에 건의한 결과 마침내 2007년 1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이 다도해 지역 등의 의료·보건기반 조성을 위해 국립목포대에 의대 개설 및 대학병원 건립을 공약했다"는 사실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김영식 회장은 "목포의대 설립은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에 더해 목포대 총장 뿐 아니라 도지사·목포시장·지방의회 등 관련기관이 총동원되어 추진되고 있다"며 "그러나 의대 설립은 정권 차원을 넘어 장기적 투자가 필요한 만큼 실제로 성사될 것인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특히 대학병원은 유능한 스탭을 확보하는 게 관건인데, 열악한 지역 환경에서 양질의 의료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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