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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왕롱의 잔

왕롱의 잔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08.12.16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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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구 지음/도서출판 계간문예 펴냄/1만원

 진실은 모든 삶과 예술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인간은 진실보다는 채워지지 않는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 신이 창조한 우주 질서를 파괴하며 스스로의 죽음을 재촉해가고 있다. 과학과 문명이 신의 뜻인 사랑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인간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용되면서 생명이 없는 기계적인 인간만이 남을 뿐이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각종 첨단 바이오분야에 집중하고, 눈 앞에 있는 이익을 위해 사회적인 약자를 무참히 짓밞으면서 얻어낸 선물은 과연 인류에게 축복일까?

 매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의사소설가 이선구 원장(전북 군산·군산안과의원)이 <왕롱의 잔>을 펴냈다. 2006년 <시의 갈레누스> 2007년 <베네치아 코덱스>에 이은 이번 작품 주제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진실에 대한 접근이다. <시의 갈레누스>가 '무엇 때문에 의사가 되었는가?'라는 저자 스스로에게 던진 물음에 대한 진실찾기 작업이었다면 <베네치아 코덱스>는 세상에 알려져 있는 진실이 과연 그대로 진실일까하는 의문에서 시작됐다. 이번에 나온 <왕롱의 잔> 역시 인간이 그토록 매달리는 최첨단의 과학과 문명속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이 담겨있을까라는 화두를 던진다.

 소설은 2100년 12월 31일 11시 59분 아시아연합국 상하이 푸둥 '월드피스센터'로 무대를 옮긴다. 그곳에서는 21세기를 보내며 22세기를 새롭게 맞는 카운트타운이 시작되고 있다.

 21세기에 세계는 3차 대전을 겪으면서 한국·중국이 주축이되고 일본까지 가세한 아시아연합체가 생겨났고 그 후 발발한 4차 대전으로 미국·캐나다·멕시코가 북미합중국으로 남미는 라틴합중국으로 통합한 데 이어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오세아니아합중국으로 한 몸이 되었다. 이미 80년전 프랑스에서 여성독립선언이 선포된 이후 세계는 여성과 남성이 완벽하게 평등을 이뤘고 이를 방증하듯 새로 뽑힌 사우디아라비아 여성 총리가 세계를 향해 새해 인사를 던진다.

 과학문명은 해를 거듭할 수록 발전해 장기이식은 일반화되고 인류의 상당부분은 복제인간으로 바뀌어 있다. 인간은 몸속에 내장된 생체 칩 바코드는 부패한 권력자들이 복제인간 공화국을 만들기 위해 인간의 자유를 통제하고 속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한다.

 이 때 '광야의 소리'를 외치며 부패한 권력을 고발하고 회개운동을 하는 자칭 세례자 요한의 등장으로 긴장한 연합국은 그를 체포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작가는 화자와 요한의 움직임을 취재하는 신문기자 왕롱이라는 두 개의 시선을 통해 피폐해져가는 인류를 그린다.

 세례자 요한, 그는 과연 2100년 거슬러 인류에게 다가온 메시아일까?

 작가는 이 작품에서 미래 인간사회의 병든 현실을 고발하며 첨단과학이 초래하는 병리적인 현상을 지적한다. 또 노동의 정당한 대가와는 거리가 먼 금융과 권력의 결탁이라는 사회악을 고발하고 남성을 배제하는 극단적인 네오페미니즘에 대한 퇴폐성을 통박한다.

 "탈출구는 없다. 거대한 문명을 에워싼 칙칙한 울타리. 그물망 법과 시행령들이 눈을 부라린다. 아프고 찢겨 만친창이가 된 심장을 드러내면 안된다. 도시는 언제나 잿빛이다. 동이 터오면서 태양은 어김없이 울타리 안으로 회색 열기를 불어 넣는다"

 마지막 장을 넘기며 작가가 남긴 에필로그는 <왕론의 잔> 속 100년 뒤 현실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예정되지 않은 내일 앞에, 녹록치 않은 현실 앞에 지금 이 순간 숨이 막힌다. 어떻게하지?(☎ 02-3675-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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