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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전래의학은 없다

시론 전래의학은 없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8.12.08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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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를 해줘도 건강보험 재정상의 이유로 물리치료 비용을 제대로 못 받아 속상한 의료계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한방 물리요법의 급여화는 동의하기 어려운 결정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국지적인 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좀 더 넓은 안목으로 한방과의 문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세계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원시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독특한 유형의 전래의학이 존재하고, 그 전래의학이 가지는 나름대로의 방법론에 대해서 때로는 현대의학의 연구 대상이 되곤한다. 대개의 경우 선진국에서는 전래의학의 역할과 위치가 제도권에서 벗어난 변두리에 자리 잡을 뿐 현대의학에 대항하거나 대체자로 추앙 받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전래의학의 대표자격인 한의학이 당당하게 제도권에서 큰 자리를 차지할 뿐 아니라 이제는 현대의학에 도전하는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전래의학과 다른 어떤 특별함이 있기에 우리의 한의학은 현대의학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위용을 자랑하게 된 것일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간단하게 역사를 살펴보면서 의료계의 자성을 이끌어 보고자한다.

일본제국주의 시대에는 오로지 현대의학만을 인정해서 의사면허만 있었을 뿐이고 한의사 면허는 그 자체가 없었지만, 6·25 전쟁을 거치면서 부산 피난 국회에서 한의사(漢醫師) 면허가 부활되었다.

그 후 한의학은 치료의학의 측면보다는 보약 위주의 비급여 시장에서 집안 어른들의 막연한 신뢰를 바탕으로 자리를 잡았을 뿐,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치료의 궁극적인 책임과 권한을 의사에게 두고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객관적 통계로만 보더라도 각종 최상급 유기농 음식에 당대 최고의 한의사를 어의(御醫)로 둔 조선 시대 임금님들의 평균 연령이 불과 44세에 불과한데, 현대의학은 도입 100년 만에 전국민 평균 연령을 80세로 연장시켜 놓지 않았는가?

한의학(漢醫學)이 한의학(韓醫學)으로 명칭을 바꾸고, 한약 분쟁을 거치면서 한약에 대한 독점적 지위가 상실되기 시작했고, 이 일을 계기로 한의사들은 보약으로 자신들의 영역이 축소되는 것에 위기감을 가진 것 같다. 그 후 한의사들은 적극적으로 치료의학으로의 전환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고, 치료의학으로의 전환을 위해서 현대의학을 배우고 익혀 자신들의 영역으로 포함시키기 시작했다.

또한 한의사가 되겠다는 학생들은 현대적 교육을 받은 과학적인 사고를 가지는 학생들이기에 한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가지는 한계를 수용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많았을 것이고, 결국 젊은 한의사들은 자신들의 장점을 잘 이용할 수 있는 현대의학의 방법론을 차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한방계 자체에서도 전통적 방법론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서 반발하는 일부가 있었지만, 대세는 전래의학의 틀에서 벗어나더라도 적극적으로 현대의학의 장점을 수용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2001년부터 배출되기 시작한 소위 '한방 전문의 제도'를 살펴보면 한의학적 관점에서 근거가 없는 '한방 재활의학과'라는 학문을 자신들의 영역에 편입시킨 것만 보아도 한방계의 학문적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국 한의학(韓醫學)이라는 근본이 상실되고 한의술(韓醫術)만이 남는 게 되는 것은 필연적 결과이다.

환자 진료에 있어서 거의 100%에 가깝게 현대의학의 용어로 그 병이 왜 왔는지를 설명하고, 어떻게 치료할 지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거론되는 치료 방법 중 상당수가 현대의학의 학문적 성과에서 차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한의학이 상실되고 한의술만 남은 한방계의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전래의학의 대표자인 한의술이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먼저 전래의학의 틀을 깨고 현대의학을 근본으로 삼아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꼽을 수 있겠다.

즉, 한의원이나 한방병원에서 엑스레이나 MRI를 찍고 각종 임상 병리적 검사를 통해서 현대의학적 분석을 한의사가 설명할 수 있으며, 각종 약을 한약과 동시에 복용할 수 있기에 국민들은 한의사가 원래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현대의학의 성과에 대한 믿음은 한방에 대한 믿음으로 연장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료계는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로 대변되는 국민적 정서를 꼽을 수 있겠다. 1980년대 이후 한국 국민들은 국산에 대해서 열광하기 시작했고, 우리 것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의료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한약분쟁 이후 보건복지부에 설치된 한방정책관실은 3급 고위직으로 매우 높은 위상을 자랑하고 있고, 의료계로서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뛰어난 활약상을 보이고 있다.

왜 한의사가 의사처럼 되려고 하는 지, 그리고 왜 그럴 수밖에 없는 지에 대해서 역사적 흐름을 고찰해보면서 의사들의 무책임함과 무능력함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의료법은 분명히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를 구분하고 있고, 그 두 면허의 영역이 서로 다르다고 단정하고 있다.

물론 의료행위의 정의에 대해서조차 애매모호한 면이 있지만, 우리 의사들은 자신의 성과를 한방에서 무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무관심했고, 지금도 한방계를 위해서 일하고 있는 의사가 한둘이 아니다. 이제라도 의료계가 해야 할 것은 현대의학의 성과를 단호하게 지켜냄으로써 국민 건강에 기여하거나, 전래의학의 학문적 바탕이 소실되고 현대의학에 한의술만 접목시킨 것에 불과한 한방계를 포용하거나 하는 두 가지 해법밖에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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