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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도 A/S를 부탁해요

암환자도 A/S를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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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1.0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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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수(중앙일보 기자)

#1. 선배 A의 남편이 얼마 전 대장암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다. 혈변을 보고 걱정이 돼 병원을 찾은 결과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암이 상당히 진행됐지만 다행히 전이는 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의사는 "생활리듬이 너무 달라지는 것도 좋지 않다"며 "웬만하면 곧 업무에 복귀하라"고 그에게 권하더란다. 하지만 기자인 그는 취재활동과 항암치료를 병행하긴 힘들다며 아예 휴직을 했다. 일주일에 2, 3일씩 몇 달간 입·퇴원을 반복해야 할 텐데, 주위 사람들의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게 싫었던 것이다.

두 아이를 둔 40대 중년의 가장으로서 그가 받은 정신적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현재 적어도 겉으로는 평상심을 회복한 듯 보이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갑자기 늘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A는 걱정했다.

 

#2. 선배 B는 다행히 건강검진을 하다가 초기에 자궁암을 발견한 경우였다.
어느 새 B가 수술을 받은 지 5년 이상 지났다. 지금 별다른 문제는 없으니 그는 자궁암 '생존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게다. B는 수술 후 곧장 업무에 복귀했고, 바쁜 일상으로 돌아왔다.

완벽주의자인 그는 혹시 암 병력 때문에 일에 소홀해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항암 치료를 받거나 몸 컨디션이 좀 안 좋을 때도 티를 안 내려고 항상 안간힘을 쓰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얼마 전 한 모임에서 B를 만났더니 한동안 입에도 대지 않던 술을 다시 마시고 있었다. 

B의 심리에 무슨 변화가 생겼을 가능성도 있지만, 회사에서 나름대로 고참 직위를 갖게 된 그로서는 아무리 여성이라 해도 그동안 각종 술자리를 피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5년이란 세월이 주위 사람들은 물론 B 자신도 경계심을 늦추게 했을 것이다.

 

얼마 전 암 통계가 발표됐다.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가정했을 때 암에 걸릴 확률은 남성의 경우 3명 중 한 명, 여성도 4명 중 한 명 꼴이라고 한다. 가족 중 한 명은 암환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다행히 치료율도 높아져 암환자 2명 중 1명은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B와 같은 암 생존자들을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진행형인 암환자에 대해서는 당장 죽을 사람인 것처럼 지나칠 정도로 배려하다가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그 사람이 암에 걸린 적이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은 듯 담배나 술을 강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래서 암과의 투쟁에 성공한 환자들도 사회로 복귀한 직후엔 "일을 정상적으로 하기 힘들 것"이라는 편견과 싸우느라, 또 시간이 흐른 뒤엔 암 생존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또다시 암이나 다른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사람들의 태도 때문에 힘들어한다.

사실 정부나 의료계도 그동안 암 치료율을 높이는 데만 급급해 환자들의 치료 후의 삶에 대해선 거의 눈을 감고 있었다. 암 발병 당시엔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의지나 끈끈한 가족애로 웬만한 갈등도 견디던 환자 당사자나 그 가족들이 치료 후 더 관계가 악화되는 경우도 많다.

"그나마 당신은 암을 치료하고 살아남았지 않느냐"고 하기엔 그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후유증이 가장 잘 드러나는 유방암 환자에 대해서는 수술 시 가슴 성형을 병행하는 방법 등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자궁이나 장기의 상실로 인한 우울증 등 크고 작은 정신적 상처를 보듬어주고 사회복귀를 도와줄 상담프로그램 등이 절실하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의 암교육센터를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나름대로 암환자들의 스트레스 관리와 자신감 회복, 가족 간 대화 등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일정을 갖추고 있었다. 국립암센터에조차 이런 프로그램이 아직 상설화돼 있지 못한 실정을 생각하면 과감한 시도다.

정부나 의료계가 치료를 마친 암환자에게도 어떤 애프터서비스를 해줘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newsla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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