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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재정안정대책 권위적 관료주의 강화

건보 재정안정대책 권위적 관료주의 강화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1.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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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 재정안정대책 권위적 관료주의 강화
건강보험 대토론회 법대 교수들 지적

6월 30일 한국일보사 12층 강당에서 열린 건강보험재정안정 종합대책과 재정건전화특별법안의 법률적 검토를 위한 '건강보험 재정대책 대토론회'에서 주제발표를 맡은 법대 교수들은 기획단계에서부터 잘못된 까닭에 권위적 관료주의를 더욱 강화하는 방법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의료생활세계를 초토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좌장을 맡은 문태준 한국사회복지협의회장(전 보건사회부장관)은 "정부의 종합대책안은 원인에 대한 분석 없이 재정 절감방안만 나열하고 있다. 이는 진단은 하지 않고 치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혹평했다.
본지는 이날 대토론회에서 큰 관심을 모았던 정부 종합대책안과 특별법에 대한 법대 교수들의 전문적인 분석과 평가를 상세히 소개한다.
 
이상돈 교수(고려대 법대)는 법은 경제적으로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자원배분의 합리성을 도모하며(경제적 효율성), 사회통합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정치적 합리성), 삶의 세계에 전승되어 온 규범의 재생산 구조 위에서 광범위한 합의를 창출할 수 있을 때(도덕적 정당성)에 비로소 합리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종합대책안의 기획에 따라 작성된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 특별법, 의료법 및 약사법의 개정안 등은 이런 의미한 합리성과 도덕적 정당성을 기약해 주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종합대책은 사회보장적 의료체계의 기능화(재정위기 극복)를 위해 의료체계의 개혁을 하나의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으로 기획했으며(기획의 오류), 의료체계의 사회공학적 기획을 추진하기 위해 기존의 의료체계에 각인된 권위적 관료주의를 다시 강화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했다(방법의 오류) 권위주의적 관료주의와 의료체계의 사회공학적 기획이 결합될수록 의료영역(의료생활세계)의 병리화는 더 악화(결과의 오류)된다고 이 교수는 우려했다.

이 교수는 정부의 종합대책은 개혁을 오직 재정정책적 차원에 국한시킴으로써 동시에 현행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가치문제들을 철저히 외면해 버리고, 재정의 유.출입을 조절하는 밸브의 조작을 맡는 중심기구를 형성하려는 사회공학적 기획으로 규정했다. 이 중심기구가 복지부장관 아래에 설치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의료체계의 의사소통적 자율성을 현재보다 위축시키며, 사회공학적 실현을 규제, 통제 및 처벌의 수단을 통해 직접 조정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권위적 관료주의가 확장됐다고 바라봤다. 진찰료와 처방료의 통합 등 최근의 조치 또한 현행 국민건강보험법에 보장된 수가계약이라는 의사소통적 과정이 아닌 복지부장관의 일방적 결정에 의해 이뤄진 점에서 자율성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라는 중앙관제센터에서 기획, 결정되는 바를 의료체계의 개별적 구성부문에 직접적으로, 그것도 규제, 통제, 처벌의 수단에 의해 집행,관철하고자한 점은 직접 조종과 관료적 통제에 다름 아니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종합대책안의 사회공학적 기획이 많은 경우 법체계에 전승된 법이념이나 법가치 또는 개별법분과의 이성원칙(법원칙)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환자 수에 따른 진찰료, 조제료의 차등화는 요양기관이 공공의료보험의 가입자(국민)에게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실질적 차등화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헌법상 평등원칙에 반한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증의 전자카드화는 개인정보에 대한 지배결정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고, 허위,부당청구의 형사처벌 가능성의 인정은 형법상 명확성원칙을 훼손할 위험이 높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특히 의료생활세계의 초토화를 가져올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의료체계의 포괄적 개혁을 통해 의료재정의 전체적 규모를 키우지 않은 채 이뤄지는 주사제 처방^조제료 삭제, 포괄수가제 확대, 진찰료와 처방료 통합은 의료기관의 재정부담을 가중시켜 탈,불법적인 진료행태를 조장하거나 현행 사회보장적 건강보험체계하에서 관료주의적으로 행해지는 진료행위의 규격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저가약 대체조제의 인센티브제, 생물학적 동등성시험 확대, 성분명 처방 등은 의사와 환자 사이에 펼쳐지는 치료적 대화의 궤도에서 조제와 투약을 이탈시킨다는 점에서 의사와 환자가 만나는 사회적 공간(의료생활세계)을 왜곡시킨다고 우려했다. 허위,부당청구 등을 의료인의 결격사유나 면허취소,정지 사유로 삼는 것에 대해 이 교수는 의료인격 개념을 더 이상 '의사가 환자와의 치료적 대화를 전개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역량을 관리하는 제도'가 아니라 보험재정 위기극복이라는 정책목표의 도구로 기능화시킴으로써 의료생활세계의 초토화를 향해 줄달음질 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책대안으로 이 교수는 이론적으로 타당하지 않고, 실천적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많은 의료체계의 사회보장적 기획을 포기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또 의료부문에 대한 규제,통제,처벌 등의 방법으로 펼쳐지는 권위적 관료주의의 폐해를 지양하고, 의료체계들이 대화지향적인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의해 형성,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약분업제도는 의사와 환자의 치료적 대화를 왜곡하는 제도로 운영돼서는 안되며, 국민에게 의약일체와 의약분업 서비스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되 의,약계가 자율적으로 각자의 직능 정체성의 역사적 변화를 도모하면서 완전한 의약분업을 이룩하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 즉 자율적 의약분업을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지태 교수(고려대 법대,행정법)는 '국민건강보험 재정건전화 특별법안의 몇가지 법적 문제점'을 통해 재정건전화 방안은 재정파탄의 원인에 대한 체계적 분석을 거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너무 빨리 해결책만 제시한 정치적 방법을 취하고 있다고 평했다. 의료당사자에게 새로운 제약을 가하고, 국민의 세금이 또 다시 투입되고, 특정 사업자에게 막대한 재정부담을 요구하면서, 문제점 및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부분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면 이러한 법안 자체가 공감대를 얻기에는 적지 않은 무리수가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특히 행정입법으로서 고시는 행정규칙의 한 유형에 해당하므로 고시에 의해 원칙적으로 시민의 권리나 의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의 행정입법에서의 문제점은 법률의 위임 하에 고시를 제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이러한 고시에 의해 시민의 권리나 의무에 관한 사항을 규율하는 점이라며 '신문고시'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유 교수는 행정편의를 위해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행정입법제정을 남발해 왔으며, 이로 인하여 판례를 통해 그 법적 성질을 해결하는 이상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유 교수는 이 특별법안의 주요 특징 중 하나가 많은 고시 유형을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행정편의적 입법이라고 꼬집었다. 유 교수는 특히 전자건강보험증 수록사항 및 비밀보호, 대행청구의 방법 및 절차, 특수의료장비의 설치인정기준, 심의위원회 운영에 필요한 사항이나 조사확인시 보고에 필요한 사항을 복지부장관이 임의로 정하도록 한 점 등을 고시 남발의 대표적 사례로 지적했다. 유 교수는 건강보험 재정문제는 이해관계 집단들의 주장과 타협에 의해서 해결되어서는 안되며,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대안에 의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의약분업 사태에서도 보았듯 최종적인 해결안에서 의료수요자인 국민적 관심은 거의 반영되지 못했다며 건강보험 재정 건전화 과정에서도 국민들의 이해관계는 제대로 반영되지 못할 뿐 아니라 전자건강보험증 제도 도입이나 특수의료장비 설치제한 등 오히려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어설픈 시민대표성을 강조하는 시민단체의 무책임한 의약분업의 강조나 재정적자의 위험성을 경시한 정치권의 밀어붙이기가 결국 오늘날 건강보험 재정부실의 한 요인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는 재원조달논의에서 또 다시 실험을 하게 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며 이번 법안의 문제점을 국민들의 시각에서 재검토하여 논의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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