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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그들을 기억하자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그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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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29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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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섭(조선일보 논설위원)

얼마전 신문에 서울 은평구청에서 6·25전쟁 중 전사한 윌리엄 쇼 대위 추모공원을 만든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1921년 평양에 온 선교사 부부의 외아들로 태어난 쇼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뒤 해군에 입대해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했다. 제대 후 우리나라에 돌아와 진해의 해군사관학교에서 민간인 교관으로 일하다가 하버드 대학원에 진학했다. 미국에서 6·25가 터졌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처와 두 아들을 미국의 처가에 맡기고 자진 입대했다. 그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해군사관학교 교관이던 동료 한국 해군 장교를 만나 "내 조국에 전쟁이 났는데 어떻게 마음 편하게 공부하겠어요. 내 조국에 평화가 온 뒤에 공부해도 늦지 않아요"라고 했다. 그는 며칠뒤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유창한 한국말로 인민군들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방송을 하러 나섰다가 인민군 매복조의 총을 맞고 사망했다.

만일 미국에서 전쟁이 터졌다면 우리가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미국을 조국으로 생각하고 미국을 위해 참전하러 갈 수 있을까. 6·25전쟁 중에도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기피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오죽하면 죽어가면서도 '백, 백?'한다고 했을까. 정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추모공원을 만들어 준다고 하니 우리가 그에게 진 빚을 일부라도 갚게 된 것이다.

우리 근대사에는 한국을 조국으로 여기며 한국인보다 더 한국을 사랑했던 이들이 많이 발견된다. 선교사로 왔던 의사들 중에서도 그런 이들이 많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블랙마운틴에서 만났던 고 크레인 박사. 지금은 회충·요충 같은 말도 잘 쓰지 않지만 기생충이 흔하던 시절에 그는 기생충 퇴치에 앞장섰다. 9살짜리 어린 소녀 배에서 회충이 무려 1063마리나 나온 사실이 그를 통해 타임지에 소개된 이후 그는 기생충 퇴치 운동의 전사가 됐다.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에서 의대를 마친뒤 한국으로 되돌아 온 그는 2대에 걸쳐 한국에 봉사했다. 전주예수병원장으로 오래 근무한 그는 박정희·케네디 대통령간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일제때 결핵 퇴치사업에 선구자적 업적을 남긴 셔우드 홀도 그런 의사이다. 의사 선교사로 한국에 온 부부의사 사이에 태어난 그는 이모처럼 따르며 함께 지냈던 우리나라 최초 여의사인 김점동이 결핵으로 숨지자 결핵퇴치를 그의 숙원사업으로 삼았다. 캐나다 토론토의대에 진학해 결핵을 전공해 1982년 해주에 결핵요양원을 만들고 1928년에는 크리스마스 실을 만들어 결핵퇴치 기금 조성에도 공헌했다. 그의 어머니 로제타 홀도 한국에서 43년간 있으면서 평양에 광혜의원, 인천에 인천부인의원을 세웠고 맹학교도 설립했다. 2대에 걸친 이들의 한국 사랑은 끝이 없어 이들은 양화진 외국인묘역에 묻혔다.

콜레라 퇴치에 앞장선 에비슨 박사도 마찬가지다. 토론토를 방문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권유로 의대교수직을 박차고 우리나라에 온 그는 1895년 콜레라가 유행하자 조선정부 방역책임자가 되었다. 그의 아들도 예방의학을 전공해 세브란스 병원에서 일했다. 일제때 한국에 온 선교사 1058명 중 의사가 263명으로 넷 중 하나였다. 이들의 노력으로 우리는 근대 의학 세례를 받아 질병퇴치에 나설 수 있었다. 이들이 헌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평균수명이 78세까지 올라가는 기적도 이뤄냈다. 그들이 선교 일환으로 의술을 이용했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없이 가난과 병마에서 시달리던 우리를 구해냈다. 양화진 외국인 묘역에 처음 묻힌 의사 알렌 박사처럼 우리는 그들의 이름과 함께 의학계에 끼친 업적을 하나하나 기억해야 한다. ds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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