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7 13:15 (토)
의협 100년의 발자취<3>

의협 100년의 발자취<3>

  • 김은아 기자 eak@kma.org
  • 승인 2008.08.20 10:17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립운동에서 의권쟁취까지…역사의 중심에 서서

100년 이끌어 온 역대 수장은 누구?

대한의사협회 100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을 꼽는다면 단연 협회를 책임졌던 '수장'이 아닐까.

질곡의 세월 속에서 의료계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했던 의협 회장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여기에서는 그들의 공과 를 하나하나 나열하기 보다 의협의 역사에서 회장이란 직책의 역할과 의미, 그리고 그 소임을 다했던 인물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이러한 과정은 협회 역사의 흐름을 색다른 시각에서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최초의 의사 단체 회장은 군의관

지금으로부터 100여년전인 1908년 11월 6일. 한성 안팎의 의사 10여명이 현재 대한의사협회의 모체인 '한국의사연구회'를 발기했다. 11월 15일(의협 창립기념일) 첫 번째 총회에서 추대된 최초의 회장은 김익남, 당시 육군군의관이었다.

한의학을 배우던 김 회장은 1894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혜의학교를 졸업한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군부의무국 위생과장까지 역임하다 1910년 8월 한일합방으로 의사연구회가 해산당한 뒤 1911년 북만주로 망명했다. 김 회장은 일제의 침략 정책에 맞서 구국결사조직체를 조직한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의사 독립 운동의 산증인인 셈이다.

한편 한국의사연구회를 이어 설립된 조선의사협회는 박계양 회장과 이갑수 회장이 9년여동안을 이끌었으며, 광복 후 개원의를 중심으로 한 '건국의사회'는 이용설 위원장이, 의학교수를 중심으로 한 '조선의학연구회'는 윤일선 위원장이 각각 수장에 올랐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의사협회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조선의학협회'의 초대 회장은 누구일까?

2·3·7대를 제외하고 1대에서 10대까지 모두 7년 동안 회장으로 재임했던 심호섭 회장이다. 심 회장은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경의전과 세브란스의전 교수를 역임하다, 광복 후 경성의학전문대학교와 서울의과대학장을 역임했다. 6·25 혼란기 때는 피난지에서 열린 총회에서 회원들로부터 재신임을 받기도 했다.

의협 실세…회장 아닌 '이사장'?

광복 이후 초창기에는 회장 외에도 '이사장'이 따로 있었다. 지금의 학회 집행부 구성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는데, 당시엔 이사장이 아니라 회장이 실무를 맡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1961년 9월 2일 재건총회에서 정관이 개정되면서부터 회장은 실권을 내려놓고 상징적인 인물로 탈바꿈한다. 1961년은 5·16 군사 쿠데타로 사회단체가 일시적이나마 해체됐다가 재조직되는 시기로, 대한의학협회는 사단법인 재등록을 시도했다가 인가를 얻지 못하자 구임원진이 물러나고 김두종 회장과 손금성 이사장을 새롭게 선출했다. 임원 임기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그러나 해가 지나면서 이러한 회무관행은 회장과 이사장 사이의 불화를 초래했고, 17대 박병주 회장이 이사장과의 석연치 못한 관계를 이유로 임기를 불과 3개월 앞둔 시점에서 사표를 제출하면서 회장 중심제로 정관을 개정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결국 1966년 1월 17일 임시대의원총회에서 회장중심제를 골자로 하는 정관 개정안이 확정되면서 이사장 중심체제는 4년 4개월만에 막을 내린다.

회장의 임기가 3년제로 정착된 것은 유신 이후 공공기관 장의 임기가 6년제로 연장됨에 따라 1974년 4월 26일 대의원총회가 집행부의 임기 연장 의견을 받아들이면서부터다.

길면 9년…짧으면 한 달

다사다난했던 한국 근현대사만큼이나 의협 역시 짧지 않은 굴곡의 세월을 보냈다. 100년의 시간 동안 모두 21명의 회장(현 주수호 회장 포함)이 의협을 진두지휘해왔는데, 이 가운데 자의든 타의든 임기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회장이 11명이나 된다.

하지만 역대 회장 가운데 '최장수 회장'으로 주목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최초로 3선에 성공하며 1979~1988년까지 9년동안 24·25·26대 회장을 지낸 문태준 회장이다.

당시 4선의원으로 여당인 공화당에서 당무위원·경북도위원장·국회운영위원장·국제의원연맹 단장 등을 맡으며 정계에서 잔뼈가 굵었던 문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시마오회장·세계의사회장에 피선되는 등 의협의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는 한편 회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23대 보건사회부장관으로 기용돼 의협의 황금기를 열었다.

문 회장이 '최장수 회장'의 영예를 안았다면, '최단기 회장'의 불명예를 얻은 회장도 있었다.

역대 의협 회장 중 가장 짧은 재임기간을 기록한 제12대 윤치왕 회장(1960년 10월 8일∼1960년 11월 13일)은 취임한 지 35일만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윤 회장의 능력 보다는 외부 요인 탓이 컸는데, 비록 관훈동 회관의 화재 소실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다음 집행부에서 이사장으로 재선출돼 명예를 회복했다.

3전 4기, 직선제에 얽힌 사연

의협 회장이 처음부터 회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됐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대의민주주의의 꽃으로 꼽히는 '선거'가 회장 선출 방식으로 자리잡았지만, 과거 의협 회장은 명예직으로서 총회 석상에서 만장일치로 추대됐다.

회원들이 1인 1표를 던져 회장을 뽑기 시작한 것은 불과 7년 전의 일이다. 의약분업 투쟁 당시 의료계의 내홍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안된 직선제는 네 차례의 임시총회를 거친 끝에 통과되는 진통을 겪었다. 이렇게 해서 2001년 10월 19일 의협 역사상 처음으로 32대 신상진 회장이 직선제를 통해 선출된 이래 지금까지 4명의 직선제 회장이 나왔다.

요즘 회장 선거철이 되면 후보 난립으로 의료계의 단결을 해친다는 '직선제 회의론'이 나오기도 하는데, 비슷한 목소리가 과거에도 있었다. 1966년 4월 대의원 간선제가 도입된 이후 1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될 정도로 후보 간 치열한 접전이 계속되자, 당시 원로들이 과열 분위기를 자제하자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