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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사라지는 의사 보건소장(상)

[기획] 사라지는 의사 보건소장(상)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08.07.0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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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보건소 251곳 중 의사 보건소장 122명 불과
인사권자인 지방자치단체장 의지가 '관건'

의사 보건소장을 찾기 힘든 시대가 왔다. '그래도 대도시 보건소장은 의사가 아니냐'고 반문할 독자가 있겠지만, 현재 인천광역시 보건소 10곳 중 8곳의 소장은 의사가 아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현재 전국 보건소 251곳 가운데 의사 보건소장은 122명(48.6%)으로 절반이 채 안 된다. 부산은 16곳 중 13곳이 의사다. 대구는 8곳 중 7곳, 광주·대전·울산은 각각 5곳 중 4곳이 의사다. 도의 경우 더 심각하다. 전라남도는 22곳 중 4곳, 강원도는 18곳 중 2곳만이 의사다. 제주도는 4곳 어디에도 의사가 없었다. 서울만 유일하게 25개 보건소장 모두 의사다.

이러한 가운데 한 의사가 보건직 공무원을 보건소장에 임명한 대전광역시 중구청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각하 판결이 나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안겨 주고 있다. '대전 중구보건소장 사건'은 오늘날 보건소장 임용에서 의사가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다.

지역 의사들에게 지원 기회도 안 줘

신경과 전문의이자 대전 소재 한 병원의 과장인 J씨는 2007년 12월 대전 중구의사회로부터 보건소장 희망자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다. 보건소장직이 공석이 되자 중구의사회장이 중구청장에게 의사를 우선적으로 임용토록 한 지역보건법시행령(제11조 제1항)을 근거로 의사 선임을 건의하자, 구청장이 적절한 회원을 추천해달라고 다시 요청한 것이다. 이전에 2년간 보건소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J과장은 보건소장 임용 희망의사를 밝혔고, 중구의사회는 J과장을 포함해 총 6명의 명단을 중구청장에게 통보했다.

그러나 중구청장은 의사회가 추천한 의사 희망자들을 모두 배제한 채 내부 공무원을 임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이에 J과장은 올해 1월 16일 중구청장에게 보건소장 임용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중구청장은 "자격증소지자 특별임용시험에 관한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대전시 인사위원회에 문의하라는 설명과 함께 신청서를 반려해버렸다.

중구청장은 이어 보건소장(4급)에 승진시킬 대상을 물색했다. 중구보건소 내부에도 의사면허를 소지한  의무직렬 5급 공무원이 3명이나 있었으나, 이들은 모두 지방공무원임용령(제33조 제1항)에 따른 승진최저연수(5년)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외시켰다. 결국 중구청장은 의사를 임용하기 '곤란한 경우' 보건의무직군 공무원을 보건소장에 임용할 수 있다는 지역보건법시행령 제11조 제1항 단서 규정을 근거로 2월 1일 지방보건사무관 K씨를 서기관으로 승진시켜 보건소장에 임용했다.

이에 J과장은 3월 5일 대전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으나, 재판부는 6월 11일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소송 제기할 자격 없어 각하 

이번 소송에서 원고로 참여한 J과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의사를 임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한 단서조항을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여러가지 불이익을 감수하고 돈키호테처럼 나섰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고등법원 항소 여부에 대해선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며 "그나마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던 것도 대전 중구의사회가 있었기 때문인데, 중구의사회는 항소를 안 하기로 결정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대전시의사회 관계자는 "소송 제기 전부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의사회 고문변호사에게도 상담을 받아봤는데, 재판에서 승소하는 게 어렵고 헌법소원도 힘들다는 반응이었다"고 전했다.

본지가 대전지법의 판결문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지방자치단체의 관행과 재판부의 판단은 의료계의 상식과 동떨어져 있었다. 판결 요지는 원고인 J과장이 구청장의 보건소장 선임 때문에 직접 피해 입은 게 없으므로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것.

행정소송도 다른 법률쟁송과 마찬가지로 요건 및 본안 판단 등 두 단계로 나뉘는데, 이번 소송은 처분의 위법성 여부를 따지는 본안까지 가지 못한 채 원고적격 미비로 각하됐다. 피고인 중구청장 측의 본안 전 항변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행정소송법(제12조)은 원고적격과 관련, 처분의 취소를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법률상 이익은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으로서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규나 관련 있는 법규에 의해 보호되는 개별적·직접적·구체적 이익이 있는 경우를 의미하며, 일반적·간접적·추상적 이익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러한 법리를 대전 중구보건소장 사건에 적용해 보면 중구청장의 보건소장 임용이 J과장의 법률상 이익을 직접적·구체적으로 침해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법원 "임용 공고 안하면 소송 못해"

왜 이런 결론이 나왔을까. 앞으로 이와 유사한 사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려면 명확한 해답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구청장이 보건소 외부의 의사를 임용하기 위해 특별제한임용시험을 실시한다는 공고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보건소 외부의 의사를 대상으로 임용 공고를 냈고 J과장이 이에 지원했다면 중구청장이 보건직 공무원을 보건소장으로 임용한 행위는 다른 측면에서 J과장의 임용신청에 대해 거부처분을 한 셈이므로 J과장은 직접적 이해관계를 갖게 되고, 원고적격을 획득하게 된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원고가 보건소장 임용과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법률상 이해관계를 가지게 되었다고 보려면 피고(구청장)의 요청에 의해 대전광역시 인사위원회에서 특별제한임용시험을 실시하기로 하였고, 나아가 시험공고가 난 후 거기에 응시해 원서를 제출한 단계에 이르렀을 정도의 관련성을 필요로 한다"고 판시했다.

이번 사건에서는 중구청장이 보건소 내부 공무원을 임용키로 결정했기 때문에 특별제한임용시험을 아예 공고조차 안 했다. 법원은 "의사 면허 소지자로서 단지 특별제한임용시험에 응시할 자격이 있는 것만으로는 일반적·추상적·간접적 이해관계에 불과해 법률상 이익을 침해받은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임용공고 생략은 입법 취지 무시한 것

그렇다면 중구청장이 보건소 외부의 의사들을 대상으로 특별제한임용시험을 실시하지 않았던 것은 문제가 없을까. 원칙적으로 의사를 보건소장에 임용해야 한다는 지역보건법시행령의 취지대로라면 보건소 내부에 의사공무원이 없다면 반드시 외부 의사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를 내야 하고, 만약 여기에 지원하는 의사가 없는 '곤란한 경우'라야 비로소 보건직 공무원을 보건소장에 임용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의료계의 일반적인 통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외부 의사에게 지원 기회를 부여하는 절차를 의무규정이 아닌 재량사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방공무원법 제26조는 공무원직에 결원이 생긴 때 임용권자는 신규임용·승진임용 등의 방법에 의해 보충한다고 규정하고, 제27조는 자격증소지자에 대한 제한경쟁특별임용을 할 수 있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지자체장들이 외부 의사를 제한경쟁임용시험을 통해 '신규임용'할지, 아니면 내부공무원을 '승진임용'할지의 문제는 자신의 인사권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다. 이 때문에 의사 우선임용 조항이 사문화되고 있는 것이다.

 

<대전 중구보건소장 사건일지>

2007. 11. 21. 대전 중구의사회, 구청장에게 의사 보건소장 임용 건의
      12. 26. 구청장, 중구의사회장에게 적절한 회원 추천 요청
2008.  1.  4. 중구의사회장, J과장 등 의사 6인 명단 구청장에게 통보
         16. 구청장, 의사 희망자 배제하고 내부공무원 승진 임용 방침    결정 의사 J과장, 구청장에게 보건소장 임용신청서 제출
         18. 구청장, 권한 없다는 이유로 J과장 임용신청서 반려
         28. 구청장, 내부 보건의무직군 공무원 대상 다면평가 실시
         30. 대전 중구 인사위원회 의결
       2.  1. 구청장, K지방보건사무관을 중구보건소장에 승진 임용
       3.  5. J과장, 구청장 상대로 행정소송 제기
       6. 11. 대전지법, 원고 패소판결(각하)

의사 후보 추천 법적으로 무의미

일각에서는 보건소장 임용 문제는 의사회가 지자체장과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물론 지자체와의 긴밀한 협조는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 판결을 보면 여기에만 모든 것을 걸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재판부는 지자체장이 의사회로부터 후보를 추천 받은 행위에 대해 법적으로는 근거나 효력이 없다고 했다.

지방공무원법(제32조)과 지방공무원임용령(제42조의2)에 따르면 자격증소지자의 특별임용시험은 임용권자의 요구에 의해 시·도 인사위원회가 실시하게 돼 있다. 외부 의사를 임용하기 위한 특별제한임용시험에 대해서는 구청장이 실시를 요구할 수 있을 뿐이며, 이후 공고와 시험 실시 및 합격자 확정 등 일련의 절차에 대한 권한은 시 인사위원회가 행사하게 된다. 즉 지자체장이 내부공무원 중에서 보건소장을 임용할 경우 최종 선발권한을 갖지만, 외부 의사를 대상으로 신규임용하기로 결정한 순간 선발권이 시·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J과장이 중구청장에게 보건소장 임용신청서를 제출했을 때 이를 반려하면서 대전시 인사위에 문의하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내부 공무원을 임용키로 방침을 정한 중구청장 자신이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시 인사위에서 보건소장 인사를 관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그렇게 떠넘긴 것은 의사 지원자를 우롱한 처사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J과장은 구청장이 의사회로부터 임용 희망자 명단을 받은 데 대해 "처음부터 형식적인 시간끌기였다"며 "지능플레이를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 "피고(중구청장)는 신규임용에 대한 신청을 접수할 권한이 아예 없고, 시험을 실시하거나 합격자를 결정한 후 보건소장으로 임용할 아무런 법적 근거 및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인사권이 없는 무자격자의 행위이므로 앞으로 일정한 행정처분을 하겠다는 구체적 약속(확약)으로 볼 수 없고, 보호할 신뢰도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결국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 문제"

이번 사건에서 보건직 공무원이 보건소장에 임용됐기 때문에 대전 중구보건소에는 의사공무원이 없었던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사 면허를 소지한 5급 지방의무직공무원이 3명이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보건소장 임용 논의에서 배제됐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보건소장직은 관할 지역 인구수에 따라 4급이나 5급 공무원을 임용하게 되어 있는데, 대전 중구보건소장의 경우 4급 보직이다. 중구청장은 이들 의사 공무원들이 근무한 지 5년이 채 안 되어 지방공무원임용령에 따른 승진소요최저연수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판결문에서 사실관계로만 적시했을 뿐 이렇다할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중구보건소 직원 상당수는 새 보건소장에 의사 공무원 중 근무경력이 가장 오래된 G사무관이 선임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지난 2003년 4월부터 보건소에 근무해온 G사무관은 이번 보건소장 임용 시점인 올해 2월 거의 5년에 달하는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G사무관은 "지방의무사무관으로서 정규공무원이기 때문에 최저승진소요기간 5년 등 기본적으로 공무원 관련 조항의 적용을 받게 된다"며 "의사 면허는 이와는 별도의 라이센스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반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승진소요기간을 의사에게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보건소장에 우선적으로 임용되기 위한 요건은 의사 면허 소지 여부, 단 한 가지다. 중구청장의 해석대로라면 같은 의사 면허 소지자라도 공직 경력이 없는 의사는 4급 보건소장에 선임될 수 있는 반면 보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5년이 안 된 의사는 임용될 수 없다는 모순에 빠진다. 또한 후자의 경우 공무원직에서 사퇴하면 다시 4급 보건소장이 될 조건을 갖추게 되는 엉뚱한 결론이 도출된다.

만약 5급 의사 공무원에게도 5년 근무경력 적용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에서 G사무관의 경력은 5년에서 겨우 2~3개월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행정절차면에서 보건소장 임용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기자가 한 광역자치단체 보건위생과 관계자에게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한 후 '의무직사무관을 일단 한시적으로 임용한 뒤 최저승진소요기간을 충족하면 서기관으로 승진 발령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자 "직무대리로 임명할 수도 있고 임용을 조금 늦출 수도 있고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며 "결국 인사권자인 지자체장의 의지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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